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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주 Apr 09. 2024

파이팅

임신 6주 차라면서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파이팅" 이란 대사를 좋아한다. 전혀 힘이 되어줄 수 없을 것 같은 여린 몸에서 수없이 망설이다가 터져 나온 그 소리에는 어딘가 슬픔이 있었다. 작은 소리만큼 나약하지만, 그래서 더 여운이 긴 응원이었다. 그 대사가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아마 그 응원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아내는 의사나 인터넷의 무수한 글들이 '임산부는 절대 하지 마세요'하는 일을 벌써 여러 번 저질렀다.


5주 차에는 약을 먹었다. 6주 차에는 엑스레이를 찍었다. 혹시 모르는 분들은 기억하시길. 임산부에게 약은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은 것, 엑스레이는 절대 금지사항이다. 방사선이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12주 차 이전의 초기 임산부의 경우에는 말이다.


우리는 선택지가 있었다. 아내가 폐, 갈비뼈 주위가 심각하게 아파서 응급실을 찾았을 때, 의사가 먼저 말했다. "아시겠지만, 임산부에게 해드릴 수 있는 처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점점 더 상태가 안 좋아졌다. 숨을 쉬기도 힘들어했다. 응급실의 초진 간호사가 내뱉었던 '기흉'이나 '폐렴'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사실 의사는 선택지를 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선택지를 떠올렸다.

1)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퇴원한다. 2) 검사를 요청한다.


아마 대부분의 산모와 보호자는 1)을 선택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의료진에게 2)를 요청했을 때 그들은 주저하고 놀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산모는 태아를 위해 무조건 참고, 피해야 하는 걸까? 정말?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안전한 선택을 하자'라는 판단 기준이, 사실은 산모와 태아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게으른' 판단 기준이진 않았을까.


우리의 경험으로 보자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임산부에게 약은 절대 금기는 아니다. 물론 산부인과 의사(가능하다면 주치의)와 약사의 처방 아래서 말이다. 엑스레이도 그렇다. 엑스레이 검사 부위가 자궁이 위치한 배 아래쪽이 아니라면, 실드를 배에 두르고 검사를 하면 된다. 방사선은 실드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태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산모의 엑스레이 검사는 사실, '절대 불가'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2)를 선택했고, 검사를 마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진단과 함께 편안해진 몸과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사실 우리의 선택은 '태아'만을 생각한 결정이 아니었다. 태아보다는 산모를 우선한 선택이었다. 산모가 건강해야 태아가 건강할 수 있으니까.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극히 드문) 여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모의 건강을 후 순위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로나에게는 미안했다. 엄마가 있어야 로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다가도 말이다. 부디 강인하게 버텨주길. 우리도 최선을 다할 테니. 우리가 외친 파이팅이 너무 버겁진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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