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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Sep 07. 2023

 [쓰기의 바람 2] 좋아하는 것을 쓴다

열렬한 마음이 계속 쓰게 한다

태어난 계절과 좋아하는 계절은 관계가 있을까? 춘분 다음날 태어난 나는 극단적인 계절, 그러니까 여름과 겨울을 매우 싫어하며 자랐다. 여름은 숨이 막히도록 덥고 끈적이는 데다, 다른 존재의 덩어리마저도 부담스럽게 하니까. 겨울은 한기에 온 몸이 얼어붙고 바람은 할퀴려 들고 빛은 부족하니까. 내가 그러니 모두들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을 만나고 깜짝 놀랐다. 여름이라는 소재로 한 권의 책이 나올 수가 있다고? 여름을 좋아할 수가 있다고? 목차에는 그가 좋아하는 여름 식구들이 적혀 있었다. 초당옥수수, 만원에 네 캔 맥주(이제는 만원이 아니지만), 수영, 샤인머스캣, 혼술, 옥천 냉면, 덩굴장미, 레몬 소주, 여름 휴가 ......




여름에도 좋은 게 많구나


옥수수를 별로 안 좋아한다. 초당옥수수는 더 별로다. 수영? 못한다. 나이 마흔 먹어서야 물에 머리 담그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샤인머스캣을 비롯한 포도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어라, 그거 빼고는 좋아하는 것들도 꽤 많다. 네 캔 맥주에 혼술이라면 나도 지지 않지. 옥천냉면은 몰라도 집 근처 평양냉면 집은 인정이지. 휴가는 뭐니뭐니해도 결국 여름방학에 떠나는 휴가지.


여름에 좋은 게 이렇게 많았나? 여름하면 또 뭐가 있지? 어릴 때 엄마가 타주던 미숫가루! 요즘 아이들의 여름 디저트는 빙수로 바뀌었지만 우리 땐 미숫가루가 최고였다. 맹물 대신 우유에 가루를 타서 꿀 살짝 넣고 얼음 동동 띄우면! 한낮 부석사 주차장에서 온 입에 끈적끈적한 과즙 묻혀가며 먹은 백도는 어찌나 달콤했던지. 매미 잡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이들이 아직도 매미 잡는 거 보면, 애들 노는 거 다 비슷하다 싶다.


나도 여름에 좋아하는 게 이렇게 많았구나. 얽힌 기억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여름은 덥고 짜증나서 싫어, 봄과 가을만 좋아- 틀을 단단하게 고정해놓은 채,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닫고 살았나 싶었다. 여전히 여름 더위는 괴롭지만(서울의 무더위는 해가 갈수록 광폭해진다), 여름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건 누군가의 열렬한 마음 때문이었다.


사진 출처 unsplash


사랑하는 것부터 써보자


좋아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좋으면 계속 본다. 계속 보면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게 보인다. 조금씩 다른 모양새라던가, 너무 사소해서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 변화가 눈에 띈다. 그게 재미있어서 또 본다.

그래서 좋아하면 말이 많아진다. 덕질하는 아이돌 얘기할 때 10대들의 눈은 반짝인다. (덕질은 60대의 눈도 반짝이게 한다.) 서예가 취미인 아빠는 이제 건배사도 한시를 인용해 한다. 중드에 빠진 친구는 중국어를 배우고, 로판을 좋아하는 40대 아줌마들끼리 자기가 본 최고의 로판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좋아하면 기준이 생기고, 기준에 따라 더 좋은 것을 발굴할 수 있고, 보는 눈이 더 섬세해진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을 쓰는 건 유리하다. 들려주고 싶은 말이 넘쳐나니까. 특히 처음 글을 쓸 때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주제를 고르는 게 좋다. 쓰기 자체의 힘듦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 글쓰기가 조금 더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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