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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Apr 22. 2022

퇴사 이야기 - 퇴사가 운명이었던 남자

요즘 퇴사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 또는 '회사를 더 이상 다니지 않을 이유'의 조각들을 찾거나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나가고 있다. 퇴사하기로 굳게 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생에 갈대였나' 싶을 정도로 매 순간 바뀌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필사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퇴사할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기억의 파편이 떠올랐다(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수록 운명론자가 된다고 했던가).


때는 바야흐로 내가 신입사원이었던 2011년. 신입사원 교육에서 조를 짜서 '10년 뒤의 우리 모습'을 그려보는 자리가 있었다. 우리 조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동기. 나랑 5살 차이가 나서 그때는 한두 해 선배들보다 더 어른스럽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느지막이 취업한 만큼 세상에 대해 더 많은 지혜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어렸던 30대 초반의 동기 형이 나를 보고 말했다.


"얘는 10년 뒤에는 회사에 없을 것 같아."


내가 물었다.


"그럼 나가서 뭐 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나도 모르지. 근데 그냥 없을 것 같아."


그 형의 말에 다른 조원들이 크고 작게 동의했다. 그래. 얘는 회사에 없을 것 같아 하면서. 


같은 해. 내가 꽤나 좋아하고 따랐던 당시 내 팀장. 그 팀장은 다른 부서와의 회식자리에서 나를 이렇게 소개하곤 했다.


"얘 잘 보세요. 나중에 사장이 되어 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매우 부담스러운 말이었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그다지 부담스러웠던 기억은 없다. 술자리에서 워낙 장난스럽게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냥 농담스럽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사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팀장이 날 좋게 봐주는 건 확실히 느꼈다.


그로부터 10여 년도 지난 지금. 이미 회사를 나갔을 거라고 했던 동기들의 예측도, 내가 사장이 될 거라고 했던 팀장의 예측도 모두 틀렸다. 대신 12년 뒤에 퇴사를 하기로 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동기들이 예측의 판정승.


퇴사를 고민하고 다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나 자신을 '이 회사에 맞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라거나 생각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등. 내가 다른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으니 일단 지금의 회사에서 어떤 평균적인 인간상이 있다면 나는 그 평균을 벗어나 거의 극단에 가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 생활에서도 그런 것들이 확연히 드러났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짜 잘해주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인사도 안 할 만큼 피해 다녔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만큼 적도 많았다.


리더들이 나를 많이 좋아해 줬지만 나에게 좋은 평가를 주진 못 했다.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인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과 기록에 남는 고과를 좋게 받는 건 별개였다. 나는 통상적으로 '좋은 고과를 받을만한 회사원'은 아니었다. 


종합해 보면 나는 좋은 고과를 받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좋든 싫든 어느 정도 고과를 신경 써서 일을 하고 사람을 대하는데 나는 전혀 고과 자체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신입사원 때 동기들과 팀장의 나에 대한 평가가 그런 '나의 다름' 또는 '회사와는 맞지 않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결과를 붙여준 것 같아(신입사원에겐 퇴사가 더 좋고 팀장에게는 사장이 더 좋음) 그래도 내 능력을 높게 봐준 게 고마울 뿐이다. 


신입사원 동기들의 예언은 조금 늦게 실현시켜줬지만, 팀장의 예언은 훨씬 빨리 실현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퇴사하면 일단 1인 사업가가 될 거 같으니까 말이다*.


(*) '당장 취업할 생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벌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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