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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Apr 01. 2024

VVIP (2)

설마설마했는데...

그날은 다른학교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다.

"내 인생의 친구 할래?"라고 먼저 물어볼 정도로

온유하고 나이답지 않게 철든 것 같은 어린 친구.


찬 모스크바의 밤공기 가운데 유난히 아늑하고

따뜻함이 온 인테리어부터 분위기까지 감싸안는

이 Хлеб Насущный 카페에서 만났다.


in Le Pain Quotidien in Moscow

오래된 사진인데 아직도 쉽게 찾을 수 있다니.

바로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조용히 담소를 나누던

모스크바의 차갑고 짙은 밤, 진동이 울려왔다.

저장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알 수 있는 번호였다.

- 엇...
- 왜 그래요?
- 아니, 이거..
- ??
- 대사관인데...
- 대사관이요???
- 아, 받기 싫은데. 왜 이 밤에 전화를..

사실 아까 복도에서 그 후배와 마주쳤다.

불과 며칠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

- 그분이 나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것 같아.
나 잘렸어. 언니를 되게 원하시는 것 같던데.

완벽히 당황했다. 매우 크게 당혹스러웠다.

못 믿을만한 기관도 아닌 무려 주한 대사관에서

어른 단체 관광객 가이드 알바를 맡기는 것이니

그래도 믿고 후배를 보냈는데 잘라버렸다고?

너무 미안한 나머지 사과에 사과를 거듭했다.


그냥 언니가 가지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꺼낸

비수 같은 한 마디가 찌르듯 꽂혔다.

- 언니, 거기서 예쁜 사람 원하는 것 같아.
자꾸 사과하지 마. 언니 잘못도 아닌데 뭘.


하...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외모라면 예쁘기로 유명한(?) 애는 따로 있는데
왜.. 하다 나만의 답을 찾았다. 그애는 가족이 여기
있어 테두리도 있고 S전자 회장 생전 방문시에도
엄청 칭찬 받았댔지. 급이 안 맞아 못 시키나보다.


이제 나도 기분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조용한 화..)

명확한 이유 없이 후배에게 일방적 캔슬을 통보한 점.

예행연습 페이는 받았지만 실전은 취소됐고 무려

이 일로 마음이 상해, 관계마저 조심스럽지 않은가.




안녕하세요, 여기 대사관입니다.



반갑지 않았다.

한시간만 더 늦었다면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안 친한데 밤에 전화하는 사람도

싫은데 더구나 공공기관이니 선을 넘은 느낌이다.


대사관 측은, 친구분이 맡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며 나에게 맡아달라고 다시 부탁해왔다.


오늘은 일요일 밤, 가이드는 내일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사람은 만나보더니 자르고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나에게 다시 전화해

맡아달라고 조른다...?


와.. 이제 나는 속으로 열을 받기 시작했다.

(이상주의자라 일상에서 열 쉽게 안 받음...)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 했는데 이제 안 되겠다.

한 번 정하면 나는 매우 단호하고 냉정해진다.


- 저는 안 돼요.
-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 정말 안 돼요. 준비도 안 했고.
- 그냥 오셔도 됩니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 아니, 제 후배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 아.. 좀.. 그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저도 안 돼니 다른 분 찾아보셔야겠네요.
- 당장 내일이라 사람을 구할 수가...
- 그럼 제 후배를 시키시면 되잖아요.
- 그분은 안 되고.. OO씨가 해주시면...


친구를 앞에 두고 대사관과 실랑이를 벌이자니

아무래도 빨리 끝내야겠는데,  직원도 얼마나

곤란한 것인지 이제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안 궁금해서 안 묻던 그 질문.

이제는 궁금했다.



누가 오는데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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