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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Apr 01. 2024

VVIP (3)

대사관의 "귀하신 분들"


누가 오는데 그러세요?


- 아니, 누가 오는데 그러세요?
- 아주 중요한 분들이 오셔서...
- 어떤 중요한 분들인데요?


뭐, 대통령이라도 오니? 그래도 안 가~

이 분위기에 절절매면서도 답을 꺼렸다.

그럼 끊던가..... 하.......

- 아주 귀한 분들이 오셔서 그렇습니다.
VVIP 이세요....


나도 귀한데? 내 앞에 앉은 사람도 귀하고.

세상사람 다 귀한데 뭔 귀한 분들이 오시..

- 그러니까 그분들이 대체 누구시길래
이렇게까지 하시냐고요.


내 말투는 마치 '야, 대체 누가 오는데 나한테

이렇게까지 전화해서 뭐 하자는 거니' 같았고

이제 가면이든 거품이든 간 볼 처지가 아니니

대놓고 조르던 대사관 직원은 결국 실토했다.



국회의원 분들이십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안한데 지금도 웃고 있음. 이 생각만 하면

미안한데 너무 웃김 미안 정말 미안합니다)


기대 안 했는데 묘~하게 실망했다.

아쉽게도 국회의원은 나에게 VVIP가 아니었다.

몇 명인지도 들었지만 중요치 않아 곧 까먹었다.


음.. 나에게 사람은 VVIP가 될 수 없는 것 같고,

VIP라면 적어도 Krystian Zimmerman정도?

(소리와 음악 전부 나에게 압도적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침메르만이 오신다면 가이드를 몸소
공부하여 예행연습 5번 하고 갈 생각이 있..지는
않고 멀리서만 보고 싶겠지만 아무튼


국회의원 여러 명이라니 더 안 끌리고

이렇게까지 나를 데려가려는 노력을

이제는 좋게만 봐줄 수 없어 거절했다.


단호하게.

칼 같이.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사실 난 어릴 때부터 정치인을 꺼려했다.
의사 검사 변호사 정치인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나, 그 분야에 있다면
내 두뇌구조와 매우 대조적이라 아마 서로
깊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을지도.
(지금 그만큼은 아니나! 성향차이는 사실)


하지만 이 과정 중 내가 보낸 후배가 있었고

나만 혹은 후배만 믿다 발등에 불 떨어지듯

당장 내일 가이드가 필요한 직원의 입장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으므로

- 그럼 제가 다른 사람 소개해 드릴게요.
- 아....


솔직히 한편 일부러 더 그 사람을 골랐다.

여러모로 적합한 인물이었다.


정말, 정말 미안하지만.. 그녀의 쌍꺼풀 수술

후유증이 아직 풀리지 않아 개인적으로 얼굴

오래 마주하기는 아직 조금 부담스러웠..으나

믿음 좋고 성격 좋고 언어 능력은 최고치였다.


그녀가 간다면 서로가 100% 안전..할 것이니

난감 상황 발생률 zero에 수퍼 토박이 급이라

가이드는 뭐 식은 죽 먹기, 페이 좋지, 일 쉽지,

그녀에게 착 맞는 알바였다.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연락해 성사되었다.

가이드의 상대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이며,

혹시라도 밥은 먹지 말고 오라고 조언했다.


윈윈. 나랑 그녀의 윈윈.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치 복수 같았다.

복수는 내 성향에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다.


예행연습에 참여했던 내 후배를 자르면, 바로

다음 날이고 이미 밤이라 알아볼 겨를도 없어

내가 와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는지 모르나

대사관 직원은 결국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생애 유일하게 거절한 한식당의 기회였........



마주 앉아 지켜보던 온유한 성품의 친구가

처음으로, 자기도 화나려 한다고 말해왔다.


- 그런데 내 연락처는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 누나 대사관에 재외국민 등록 안 했어요?
- 안 했어. 확실히 안 한 게, 그거 볼 때마다
나도 할까? 하면서 결국 한 번도 안 했거든.
- 그럼 어떻게 안 거지..
- 내 말이. 내가 학교 집 교회 밖에 안 가는데.
혹시 코트라인가? 근데 코트라 알바도 두 번
밖에 안 했고, 거기에 대사관 사람 없었잖아.
- 그러니까요.
- 아 소름 돋아.
- 대사관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 없어. 아~주 옛날에 나 10대 때에는 많았는데
지금 한국 대사관 쪽 하나도 몰라. 간 적도 없고.
오히려 미국이랑 영국 대사관 사람들을 알지..;;


머릿속에, 억울할지도 모르는 코트라 관계자

두 명의 얼굴이 지나갔다. 혹 뭐라고 말이라도

한 건가. 근데 내가 그 정도 얼굴은 아닌데....


답은 어차피 미스터리였고

그날 우리의 대화는 '대사관'으로 마무리 됐다.



- 그때 가이드 잘했어??
- 네 언니~ 잘했어요~
- 돈도 잘 받았고?
- 네 언니 감사해요~~~


나의 예상대로 그녀는 가이드를 잘해냈고

대사관 직원은... 모르겠다. 혼났을까????


그 뒤 종종 그런 생각. 보통인 나한테도
이런 일이 있다면, 진짜 예쁜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고생(?)할까.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심히 고운 남녀를 보면 우려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생이 받아오는 선물을
구경하고 먹어왔다. 잘생기면 주변에서 가만
두질 않는다. 심지어 이웃까지 우리 아빠에게
찾아와서 기획사 연결시켜 주겠다고 설득하다
실패했다. 예고시절 대형기획사 매니저가 오래
쫓아다니기도 했다던데 끝까지 칼거절했다고.
오래전 LG폰 인터넷 전용 CF도, 지인이 하도
얘기해 한 번 갔다 정말 뽑혀서 어색하게 찍고
왔다고.(화면발 안 받음) 그 후 쳐다도 안 봄.

어쩌면 동생을 위한 내 기도의 응답일 수도.
연예인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 ㅎㅎ

음악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소년 관련 음란물
소지 및 범죄 의혹이 있던 음악가 Pletnev가,
청년 Lozakovich를 스위스에서 자꾸 만나서
챙기고 반주해 주면 걱정이 되는 그런 마음...
<지켜줬으면. 아, 이 사람들 지켜줬으면...>
원래 있던 오지랖이 한층 더 생겼을는지도.




대사관에서 부른 대로 내가 갔다 한들

일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좀 봐주고 가줬어도 나쁘지 않았을 수도.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 별로였고,

돌아가도 내 선택은 거절이었을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후배를 보내지도 않았겠지.


한국 대사관에서도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대사관.
국민을 VIP로 생각한다면
국회의원은 VVIP로 모시는 것일까?
국민이 VVIP가 되는 그런 날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울까?
 
마침 모스크바에 다녀왔고
거기에다 곧 국회의원 선거인지라
잊고 있던 해프닝이 묘하게 떠올랐다.
 
그날 이후로 나에게 대사관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 목록에서 내려왔다.
 
그래도 지금 러시아에 잡힌 한국인은
대사관에서 많이 힘써주었으면 하는 마음.


내가 좋아하던 모스크바의 대한민국 대사관 예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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