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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Aug 03. 2024

자아의 죽음

오랜 갈등으로부터의 U턴

이 꿈은 내용을 도저히 적어낼 수 없다.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뿐더러, 당일에도 '알아들은 것' 뿐
설명이 가능하진 않았다. 결과만 적는다.


꿈을 통해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오늘 마귀가 아버지를 통해  공격하겠구나'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음의 준비도 안 된 나에게 아버지가



얘기 좀 하자


벌써? 벌써라고..?

아직 아무 일 없는데 지금이라고?


간을 벌어야 했다.


꿈에서 파악된 강도(level)매우 강했다.

센 게 온다...


만일 마귀가, 꿈에서만큼 생각을 장악했다

어떤 대답을 하든 반드시 문제가 될 것이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머리만 얼른 감고 올게요."


욕실에서 물을 튼 채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며 엎드렸다.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가는 물줄기가 내 등 뒤로 쏟아져 튕기고 있었다.


'저 좀 도와주세요.  못 합니다. 제발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아무 말도 안 할 수 있게, 전부 ''만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 힘으로는 못 하니, 꼭

 도와주셔야 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몰래 기도하고 나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무엇이 올 지.


감사하게 내용이 일절 기억나지 않는다. 은혜다.

심경아주 잘 기억한다. 목표는 오직 "예'였다.

모든 말씀"네, 예, 알겠습니다" 외에 없었다.


나는 원래 옳은 말에만 "예"를 하는 사람이었으나

그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든 말에 "예"를 했다.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적에 가까웠다.


그래 좋게 말씀하실 리 없었다. 마귀가 있으니.

본인은 모르셨겠지만...


아무리 공손히 오직 "예, 알겠습니다"  해도

소용없는 듯, 언성은 점점 높아져  흥분하여

퍼붓는 와중에 여전히 "네", "예"라고만 답하자

아버지에게는 점 할 말이 바닥나고 있었다.


평소라면 "너도 할 말 있으면 해 봐라" 하실 텐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목적은 ''였고,

그 때 아버지를 휘두른 것은 악한 영이었으니...


불과 조금 전에 꿈에서 미리 보고 나온 나로서는

아버지의 고함이나 역정, 훈계까지도 그 내용이

중요하지 않았기에, 틀렸건 맞았건 아니 건간에,

그저 '이 상황' - '마귀의 계획'을 무산시키려면

오직 이 방법뿐이라는  하나로 견디고 견뎠다.


미리 보았다고 하여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안간힘을 다해 참았다. 하나님이 돕고 계셨다.


누군가에게 모든 상황에서 "네"는 어쩜 쉽겠지만

나에게 그곳에서의 "네"는 나를 죽이는 것이었다.


나는 죽어야 했다. 죽어야만 하였다.

자아가 짓밟혀 으스러져, 가루가 되어야 했다.


나라고 매일 의로울 리 없으나 적어도 그 날

공격의 대상이 나였다. 마귀단골 목표물.

동시에 이 일은 나에 대한 test이기도 했다.



죽을 수 있는가


죽을 수 있는가? 자아를 십자가에 달 수 있는가?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 수 있는가?

맞는 일에만 "네"가 아닌, 아닌 것, 억울한 것에도

"알겠습니다" 하고 자신을 철저히 낮출 수 있는가?


상대 옳고 그르기 이전에,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녕  복종시킬 수 있는가?


그것이 내가 거쳐간 '테스트'임을 인정하게 됐다.

(이런 테스트의 시기와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종료


아버지는 고래고래 손가락질하며 말씀하시다

결국 나의 일관된 자세와 반응에, 일어나셨다.


그 모습은 딱,

'이게 아닌데, 한 판 제대로 뒤집어 놔야 하는데,

 이렇게 끝낼 게 아니었는데, 더는 할 수가 없네!'

마귀가 그러는 게 보여졌고, 그와중에 아버지는

견딜 수 없는 듯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셨다.


예전에 포기를 모르고 설득해 보거나 다투던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저 정도로 끝까지 화 내고

나가다니. 꿈처럼 센  맞았으나 거기서 멈췄다.

마귀에게 붙잡힌 아버지가 더 시달렸을 테지만..

꿈을 가족에게 이야기할만한 여유는 없었다.


너덜너덜했고, 비통했다.

소리 없는 눈물 범벅된 채 앉아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다음은 어떠했는지.


그날의 기억은 딱 거기에서부터 증발됐으나,

아마 엄마가 같이 울었거나 안아주었을 거다.



며칠 뒤


이틀인지 사흘인지 모르겠으나, 며칠 뒤 아버지는

나에게 "미안하다"라고 조용히 사과를 해오셨다.

마귀가  아버지에게서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영이 자주 마귀에게 휘둘리고 속는 것은

참 애석하고 가족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이 있으나

정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고 지내며,

그 일로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깨닫게 으므로 원망도  리 없다.


또한, 꿈 이야기를 숨김없이 적다 보니 이러하지만

그렇다고 평소의 아버지가 늘 이렇지 않을뿐더러

근원은 아버지가 아닌 마귀였다는 점을 되짚는다.



자아의 죽음


어머니가 종종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이 회개를

 해서 '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하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예수님에게 손가락질하고 침 뱉고

 모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보시면서도 하나님께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라고 하신 거란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다.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였고

마귀의 자녀였다고 성경이 증언한다.


그런데 원수의 자녀, 멸망할 하나님의 원수를 위해

본인이 대신 죗값을 치러 모욕과 죽임을 당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럴 수 있는가


예수가 나를 위해 모욕을 참고 견디었다면

나도 그를 위해 이런 순간을 참을 수 있는가.


원래 나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영역에조차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으니 할 수 있는가.


부모를 공경할만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셨으니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훈련을 나에게 거쳐가도록 도와주셨고,

절대 할 수 없다 여겼던 것을 그날 해내었다.


마귀가 우리 집을 통째로 뒤집으려 계획은

무산되었고, 나는 훨씬 큰 것을 얻게 되었다.




그날부터였다


정확히 '그날'부터였다.


내 자아를 처음으로 죽음에 내어주던 날.

'불가한 영역'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포기했던 날.


그날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 사이에서 평생토록,

'죽을 때까지 이럴 것'이라 여겨졌던 어떤 것이

사라졌다. 기적처럼 한 번에 뭔가 달라졌다기보다,

아버지와 나의 사이에서 농간을 부리던 악한 영의

술수가 힘을 많이 잃게 되었음을 확실히 보게 됐다.

그 뒤로 한 번도, 예전처럼 다투지는 않게 되었다.


상식이나 논리, 옳고 그름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이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 순종'과

'자아의 죽음, 그리고 내 안에 예수만 사시는 것',

북한 사람들처럼 예수를 믿음으로 처형되지 않고

일상에서 가끔 조금의 고난을 받는 훈련의 삶이

나에게 유익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상식적이지도 않다.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영으로 깨닫게 하시는 이가

나에게 먼저 꿈으로 보여주시며 항상 도와주셨다.




그러나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들을 피하라.
너도 알거니와 그것은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말아야 하며
모든 이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 혹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를 허락하사 진리를 인정하게 하시리니
이는 마귀의 뜻대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마귀의 올무에서부터 자신을 되찾게 하려 함이라.
1Timothy 2:23-26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Phillippians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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