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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Oct 18. 2024

본능과 애착

거스를 수 있을까

 혼의 이야기이다. 대부분 영적이지 않다.

알지도 못하면서 뭘 좋아한다는 거지?


고등학생 시절, 잠시 한국에 들어온 여름방학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 아마 튀었을 것이다.

나만 새로운 인물이라. 당시엔 의식 못했지만.


누군가가 "나 너 좋아!" 외쳤는데 ㄱ무시했다.

왜 그랬냐고? 걔가 왜 그랬는지부터 물어봐야..


일단 당시 모스크바좋아하던 친구가 있어

누가 비집고 들어올 틈 같은 건 아마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생각은 이것이었다.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좋아한다는 거지?!'


사람들 앞에 망신당한 기분이 들었다면 믿을까?

심지어 일종의 '흑역사'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드라마에서 극혐하는 장면이 공개고백이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왜 난 그게 싫을까.

공개고백이 싫었던 걸까 그 대상이 싫었던 걸까.



왜 나이차이 많은 여자여야 한다는 거지?


거듭 거절하는데도 지인이 남자를 소개하려 했다.

부모님 직장이 각각 국제기구와 대기업 임원이며

남자는 영국 살다 온, 여유 있는 유학생이었다.


나는 대학원 졸업한 지도 오래고, 부모님이 그런

분들도 아니며, 잠시 들렀을 뿐인데 왜 만나보냐

라는 입장 먹히지 않았다. 마음대로 내 사진을

보냈대서 불쾌했고. 내게도 보여주길래 내 타입

어차피 아니다 하자, 집안과 성격도 좋고 종교도

바꿔 교회 다닐 거고 진지하게 만날 생각이라는

 만나보지도 않냐 하여 후배를 소개하겠다 했다.


- A는 안 돼. 연상이 좋대. 연하는 안 만난대.

- 그럼 B를 소개해 드릴게요. B는 연상이에요.

- B가 몇 살인데?

- 4살 연상이네요. 좀 많은가..?

- 안 돼, 걔는 나이 차가 아주 많은 여자를 원해.

- 네?!

- 조금 연상 말고, 나이가 훨씬 많은 연상이 좋대.

- 이상한데요... 나이 차이 아주 많이 나는 여자를

 원한다니 정말 이상하게 들려요. 저는 안 만나요.


그녀는 수를 썼다. 내가 그 집에 있던 시간, 남자를

부른 것이다. 불시에 들이닥친 채 내게 인사하길래

고개를 까닥하고 즉시 가방 챙겨 집을 나와버렸다.


차라리 외모가 마음에 든다는 단순 이유였더라면

그렇게까지 정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녀

아니라가끔씩 매니아는 있어왔으니까. 그러나

남자로 안 보이는 사람의 조건을 보고 몇 번쯤

만나보는 것은 서로에게 할 짓이 아니라 여겼다.

진실되지 못한 관계를 유난히 견디지 못하기에.

내가 혹 어리석었고 틀렸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깨달은 거야?


너무 늦어 민망하나 최근에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전혀 모르면서' 좋아하잖아.


무심코 본 창현인지 장완이인지 모를 중국 배우의

섬세한 표정 이토록 큰 타격감 받기는 처음이라

절대 다시 말자고 다짐했지만 한편 한심했다.

게다가 저 사진 한 장은 저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감성적이다. 감성이 평균치를 크게 웃돈다.

천국과 지옥을 1초 만에 오갈 수 있는 성향 덕에

일상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음악 분야에서만

압도적으로 이로울 뿐 그 외의 것들은 늘 마음과

감정이 나를 끈질기게 방해했, 자주 어려웠다.



안 본 눈 삽니다


이 기복을 때려잡기 위해 매일 감사를 시작했고

10년이 넘어가자 근육이 되어 효과만점이지만,

그렇다고 타고난 기질이 사라질 리는 없다는 뜻.

나 같은 사람은 호감 가는 상대를 안 만나는 편

좋다. 모 아니면 도의 성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문장이 다르게 와닿는 

배우의 내면 연기가 나를 심히 흔들었기 때문에

이 마음이 싫어, 차라리 안 본 눈을 원하는 것이다.


연기에 감탄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듣자 마음이 더

동하지 않았나. 나를 멀리서 봤거나 사진만 거나

피아노 치는 모습 따위 보고 좋아한 들과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매력적인 만큼 위험수위가 높은 계통


예술계통 이성이 유난히 설득력 있으나 불리한 건

연주자는 음악을 연주하고 연기자는 연기를 하니

그 음악이나 연기가 함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내가 반한 게 음악인지, 저 사람인지, 헷갈리는 것.


엄청난 팬덤을 가진 이들은 대개 예술계통에 있다.

정치인이나 의사 팬보다는 연예인 팬이 훨씬 많다.


옛날, 목 상태가 괜찮았을 때 종종 한인 교회에서

노래를 즐겨했는데 그냥 불러보던 내 자작곡 중에

"나를 안아주세요"라는 가사가 나오자, 듣고 있던

한 오빠가 갑자기 "아! 정말 확 안아주고 싶어~!"

라고 외쳐 다 같이 빵 터진 적이 있다. 그 오빠에게

설득력 있던 것은 내가 아니라 그 노래였다고 본다.

노래가 좋았던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봐도 되고.

그 노래를 듣기 5분 전까지는 누군가를 안는 것에

대해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에 열 표를 걸겠다.


문화예술 계통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는다.

물론 음악과 나를 뗄 수 없듯, 진짜 배우 장완이와

연기를 뗄 수 없다 생각하지만, 문제는, 헷갈린다.



모를수록 높아질 이상형의 확률


한때 L군과 결혼하고 싶다고 하던 후배가 있었다.

후배는 L을 만난 적 없는 완벽한 팬이었는데 L이

이후에 나와 잠시 대화하는 것을 실제로 목격 후

내심 충격을 받은 듯했다. 환상이 약간 깨진 걸까.


나는 무대에 거의 서지 않았지만 늘 무대에 서는

친구들 옆에서 그 앞과 뒤를 명확히 인식해 왔고

나름 알려진 인물의 소문이라도 돌까 봐, 나에게

일어나는 '내 얘기'조차 거의 할 수 없이 지내서,

미묘하게도 연예인들에게 늘 측은지심이 있었다.

나도 이런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을까 하는 심정.

그래서인지 언젠가 사석에 꽤나 유명한 연예인이

동석한 한 시간동안 나에게 환상이란 전혀 없었고

언젠가 공항에서 한 자리 건너 내 옆에 누구나 알

유명 배우가 앉았을 때에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나를 이상형이라고 하던 애들 역시, 서로 모를 때

지나가다 멀리서 보고 전해온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가 맞닥뜨렸던 두 명의 이상형도 보자마자였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팬이란, 상대를 제대로 안 

없는데(혹은 안 적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구나.


커다란 호감의 시작은 고작 사진 한 장일 수 있고

환상이든 만남이든 그 후에 뱡향을 잡아가는 건가.


뭣도 모르고 오만하게

'전혀 모르면서 대체 뭐가 좋다는 거야'라고

무시했던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ㅆㄴ'이었을까.



타고난 취향


뒤늦게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 중 몇 가지

본능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요소가 있었다.


목소리만 취향 있는 줄 알았는데 손을 본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꼭 손도 마음에 들었다.

손이 궁금했고, 손이 예쁘면 왠지 더 설레고

그간 꾸준히 친구들과 손발사진도 찍어왔다.

- 네 아빠도 손을 보더라.

- 정말이야?!

- 응, 처음 만났을 때 손이 예쁘다, 그러더라고.

- 말도 안 돼.. 설마 이런 것까지 똑같다고? ㅋㅋ

여자보다 심하게 예쁜 남자 손의 좋은 예

- 아, 하나 더 있는데, 나는 남자가 OO색 옷 입으면,

 물론 마음에 드는 사람이 그 색을 입으면 달라 보여.

 마음이 막 가... 장난 아니야. 왜 그러지....?!

- 엄마가 몇십 년 동안 그 색만 입었잖니.

- 엇! 잠깐..ㅋㅋㅋㅋ 진짜네!!!!! 충격이야..!

- 엄마 옷장 열면 전부 그 색 옷 밖에 없었지..

- 어머 웬일이야.. 정말 그 영향인 건가??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엄마 입던  찾는 ?!?!

- 그게 원래 멋쟁이들이 입는 거고, 기본이잖아.

- 그건 그런데, 남자가 입었을 때만 그런 것 같아. 

 다른 색은 전혀  그런데... 이상해~ ㅋㅋ



본능이다


진한 갈색머리 (외국인한정 ㅋㅋ)

마음에 드는 목소리의 톤이라든가

등이 파인 옷을 좋아한다든가 하는

그것은 모두 본능의 추구함이었다.

한옥과 경복궁을 사랑하는 것까지.



등이 파인 옷


나는 등이 파인 옷을 야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니까. 아무래도 남자와 생각이 다르겠지.


다른 여자가 등 파인 드레스를 입어도 예쁘고

(개인적인 기준치가 있음) 그런 의상을 보면

예쁘다, 좋다, 생각 밖에 들지 않으니 말이다.

- 등이 예쁘네

- 등이요? 등은 다 똑같이 생긴 거 아닌가요

 (돌아보니 발도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했음)

  제가 등 파인 옷을 좋아해요!

- 내 친구 중에 등만 보는 애가 있어

- 네? 등을 본다고요? 왜요?? 뭐지, 희한한데..

- 어, 좀 희한하지ㅎㅎ 근데 걔는 등이 중요하대.


황당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내가 등 파인 옷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니까, 본능이다.


하지만 인간이 본능대로만 살  없는 법 아니던가.

남자 눈에는 그렇지 않다는 조언(?)듣고 난 뒤에

할 수 없이(ㅋㅋ) 등 파인 옷을 아마 거의 포기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유럽은 가슴이 파인 옷은 그다지

야하게 생각지 않고 짧은 치마를 야하게 본다더라.

한국은 치마보다 파인 상의를 야하게 받아들이고.



잘해주는 사람보다 냉정한 사람


- 아마 나한테 그런 게 있기는 해.

- 어떤 게?

- 나한테 항상 친절하게 잘해주는 사람들보다

 너처럼 좀 엄격하고 차갑게 대할 때가 있는데도

 .. 그런 사람한테 좀 더 끌리는 게 있는 것 같아.


이 얘기를 언젠가 듣고 처음으로 상대가 불쌍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더 친절히 대해줄 순 없었다.

본능적으로 친절한지 불친절한지는 자신도 모르나

대개의 경우 내가 하는 것에 비해 유독 그 상대에게

매우 친절하기 어려웠다. 이는 상대에게 본능적으로

상응하며 반응하는 것임을 오랜 시간 후에 깨달았고

누구한테보다 '날 것'으로 대하는 자신을 보았다.

유독 더 가깝게 느끼지만 날 것은 위험한 법이다.



노력없이 탑재된 애착


나는 본능적으로 옷가방보다 신발을 좋아하고,

바이올린보다는 첼로, 오보에보다는 클라리넷,

하프시코드보다 오르간, 모든 악기 중 피아노,

베토벤보다 모차르트, 슈만보다는 슈베르트,

돈보다 명예, 양식보다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


나의 혼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같은

어쩜 야만적일 정도로 날 것의 음악을 좋아하나

나의 영은 바흐의 음악을 동경하며 연모한다.


혼과 영은 조금 다르다. 뗄 수 없지만 다르다.

하나님은 혼(soul)이 아니라 영(Spirit)이시다.

마귀도 혼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다. 우리들은

살아있을 때 혼과 영과 육을 모두 지니고 있다.


애착은 노력하지 않아도 나에게 붙어 있으며

떼어내려면 오히려 힘을 써 노력해야만 한다.


내 본능과 애착은 모두 나의 혼으로부터 왔다.

그것은 때론 도둑맞은 고가의 선글라스였거나

엄마가 준 반지, L이 준 브로치, 내가 쓴 일기들,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화려한 색채와 강한 리듬,

바닥까지 차갑게 울리는 명료한 피아노의 소리

따위였고, 그것들을 버리는 연습이 내 삶이었다.



십자가


하나님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면 다 거둬 가.


한 때 그리 믿을 수 밖에 없을만큼 모든 상황이

연속적으로 그렇게만 일어나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특별히 좋아하면 안 돼.


사람만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도 그랬다.

그게 무엇이든, 특별히 애착하면 잃게 되었다.


나중엔 집까지 잃어버리면서 그 많던 소지품이

한 번에 사라졌을 때, 남의 집이 된 나의 집에서

내가 유일하게 품에 안고 나오던 나의 물건이란

십자가 세 개 였다.


냉장고에 붙여둔 미니 자석 십자가 한 개,

침대 머리맡에 걸어둔 나무 십자가 한 개,

피아노 옆에 있던 선물 받은 십자가 한 개.


그 때 그 십자가 세 개를 품에 안고 나오면서

깨달았던 사실을,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다.


아, 누가 내 것을 훔쳐가도,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 해도,

십자가는 못 훔쳐 가는구나.

예수님은 못 뺏어 가는구나.


사람도, 물건도, 시간도, 건강도 다 잃던 그 때

나에게 그대로 여전히 남은 것은 예수뿐이었다.



마지막 열매 - 절제


'성령의 열매'는 성경에서 나름 유명한 목록인데

알고 보면 나는 그런 것을 잘 외우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맨 마지막 열매가 절제라는 것은 기억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Gal.5:22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본능과 애착에 매력을 느껴

스멀스멀 매일 올라오는 죄성들과 마주해 가는데

내 혼에게는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입장은 다르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Gal.5:24


때론 나를 상당히 불편하게 하는 것이 참 복음이라

생각한다. 물론 상태가 좋을 때엔 편하기도 하지만

본성의 자아에게는 반드시 불편한 것이 '복음'이다.


술담배를 좋아하는데 하지 말라고 한다면 불편하고

영화를 좋아하는데 보지 말라고 해도 불편할 것이다.

나의 경우 음악을 가려 듣는 절제를 하기도 하고,

많은 것들에 대하여 합리화 한 채 외면하기도 한다.


차라리 모르면 몰라서 그랬다는 말이라도 할 텐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 어려운 점도 있을 터.


내 혼은 성경을 매일 읽고 싶어하지는 않으며

내 영은 성경을 대단히 갈구하며 갈망한다.


내 혼이 원하는 것과 영이 원하는 것이 같을 때

갈등 없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허락되는 것이다.


어릴 때에는 기도제목을 쓰는 곳에 빠지지 않고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 이라

썼던 것을 얼마 전 기억하게 되었는데, 현재 나는

[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 사는 것이 분명했다.


아, 옛날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쩜 절반은 스트레스 풀기 대용 일기라도 되듯

쓸모없다 느끼는 것을 두서없이 적어내려갔으나

이런 삶에조차 나에게는 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의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들을 죽이라. 그것들은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 Col.3:2, 5


애정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무절제한 애정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음악이든 그 어떤 것이든 실은 ''에 해당하며

다른 말로 '우상숭배'라고 성경에 명시돼 있다.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넘어가자.

그러나 하나님을 만났거나, 만났다고 믿는다면

입장이 많이 다르다. 아주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나님보다 내가 마음을 더 두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우상이며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매일 나에게 배신을 당하고 견디신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알지만 여전히 모르고 있고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싶은 날들도 없지않다.


나에게 있던 모든 일들과 지금 겪는 모든 일,

그리고 앞으로 겪을 모든 일들은 누구 말처럼

하나님을 알아가는 원천(source)인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같고

내가 바라는 것과 하나님이 바라는 게 같기를

과부와 고아를 사랑하며 돌보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에게 입히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갖힌 자를 자유케하는 도구가 되기를


당신이 나를 그토록 기다리고 사랑해온 것처럼

나도 당신을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길 기도한다.


당신의 고귀함과 순결한 나에 대한 그 사랑

내 안에서 헛된 것으로 치부되지 않길 소원한다.



나는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기도하지 아니하며 다만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시라고 기도하나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내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오니 이것은 그들도 진리를 통해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들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도 위해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나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 안에서 완전해지게 하려 함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 John 17: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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