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상 아니 상황상 좋아한다는 따위의 고백일 리 없기에 고백보다는 아무래도 '자백'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몇 달 만에 온 나에게 그 애는 뜸을 들였고 겹치는 악재에 미리 각오해야 할 것 같았다.
- 무슨 고백?
- 여자친구가 임신했어.
그간 살면서 거의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조르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무얼 사달라고 졸라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필요한 것을 부모님이 제공해 주신 덕분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훨씬 좋은 부모님을 둔 친구 중 뭔가 가지고 싶어 조르던 애들도 있었으니까.
8살 때 처음으로 정말 사고 싶던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걸 보고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는 조금 오래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인지를 물어보았는데 아이스크림 200개 가격이었다. 진심으로 가지고 싶었지만 마음을 접고 돌아와 아빠 차에 타고 집으로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 그 장난감 갖고 싶니? - 네..
절대로 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사주시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내가 봐도 너무 비쌌다.
하지만 처음으로 뭔가 갖고 싶어 해서였을까. 나의 한마디에 부모님은 장난감을 사 오셨다. 커다란 박스를 품에 안겨주셔서 깜짝 놀랐다. 어린 맘에 죄송함과 감사함이 겹쳐왔던 기억.
사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받게 되었고 그 뒤로도 무어든 사달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만큼 희생적인 부모님을 둔 딸이기도 하고 그만큼 소유에 대해 자제하는 편이기도 하다.
워낙 조른 적이 없다 보니, 조금 오래 쳐다만 봐도 엄마가 "저거 갖고 싶어? 마음에 드니?" 먼저 물어보는 그림이 된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아, 그렇긴 한데 너무 비싸. 그냥 가자." "엄마가 사 줄게." "아니야, 안 사. 그냥 가자" 늘 이런 식이었고, 엄마와 난 반반씩 이겼다.
평생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다가, 귀국 이후 한 번, 피아노는 사고 싶다고 말했고, 샀다. 피아노는 금액도, 무게도 매우 무거웠으나, 차, 집, 다른 것들 중 선택하래도 피아노를 택할 것이기에 구매를 후회한 적은 없었다.
조르지 않는 성격은 물건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곳에서 적용되었다. 특히, 누군가에게
내가 바라는 것을 두 번 이상 말해본 경우는
교회에 와보라는 말 외에는 하나도 없었다.
(가족 건강과 관련된 중요 권유를 제외하고)
반대로 나와 가장 친밀한 남녀 친구들은 꼭
잘 조르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희한하게
남자도, 여자 베프와도대화흐름이 같았다.
상대는 조르고, 나는 안 된다 말하곤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세 번 권한다 하는데
나는 보통 한 번만 권한다. 어쩌다 혹시나
한 번 더 권할 때 거절하면 바로 수긍한다.
흔히 먹는 것이 그랬다. "더 먹을래?" 할 때
괜찮다 하면 더 권하지 않는다. 괜찮다잖나.
만일 한 번 더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로> 안 먹겠다는 것 아닌가. 대체
왜 세 번이나 권해야 하나.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묻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됐다.
예의상 묻는 것도 진실되지 못하다 여겨져서
"언제 한 번 놀러 와"라는 말은, 꼭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되는 상대에 한해서만 그 말을 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종종, 이성에게 매달리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했다. 대단하게 보였고,
경우 따라 다르겠지만 용기 있다고 생각됐다.
나는 매우 감성적이다. 그러나 이성에게 있어
단 한 번도 매달린 적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것은 나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즉, 설령 상대를 목숨 걸만큼 좋아한다 해도
만일 상대가 돌아서야 한다면 잡지 않는 것이
내가 하는 선택인 것이다. 아무리 괴로워져도,
"가지 마" 따위 하지 않는다. "잘 가" 하겠지.
드라마에서 이런 남자들이 나오면, 난 싫었다.
왜냐고? 나 같으니까. 반대의 캐릭터에 끌렸다.
문제는 그런 인물은 알고 보면 이기적일 수도.
떼쓰고, 조르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얻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니던가.
성숙한 사람이 떼를 쓰거나 조르는 것 보았나.
(내가 성숙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성향이다)
나와 가장 만나려는 사람들은 왜 이 성향일까.
나는 왜 "저 애는 결혼하면 좋은 남편일 거야"
모두가 말할만큼 좋은 성품의 일본 남자애가
나에게 고백했을 때 전혀 설레지 않은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착하고 예뻤던 러시아 소년이
나를 그렇게 좋아해줬어도 왜 피해 다녔을까.
나는 왜 도산경과 같은 캐릭터가 싫은 것일까.
운명의 장난처럼, 심지어 가장 친밀하던 여자
베프조차잘 조르는 성향이었고 그 알파벳이
아버지와 일치했을 때 왠지 절망감을 느꼈다.
그렇다. 우리 아버지도 우리 엄마에게 졸랐다.
졸라서 결혼했다. 엄마는 결혼 생각도 없었고
언니도 시집을 안 갔는데, 순식간에 결혼해서
엄마를 짝사랑했던 남자가 예식장에서 울었다.
잘 조르는 성향이 본능적으로 내게 친밀감을
형성하지만, 절대로 내가 만나서는 안 되는,
가장 피해야 할 사람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문제는 상대들도 왜 나에게 끌리는가 일지도.
우리는, 아니 나는 그런 상대에게 솔직하지만
친절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자 베프를 만나고
깨닫게 되었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장상사>에서 인기 많은
'도산경'이 나올 때마다 빨리 감기로 넘기고는
'창현'의 섬세한 표정 연기에 감탄하고 있더라.
나 같은 사람은, 이성에 대해 절제력이 강하다.
목숨도 아깝지 않다 생각하던 상대가 나에게
"약혼한다"라고 말할 때 결혼식은 언제냐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물어보던 나 자신은,
바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잘 살기를 바라고, 잡지 않는 캐릭터 말이다.
남이 나에게 그런다면 '그 정도의 마음인 것'
이라고 생각할 거면서, 정작 나는 그렇지 않다.
질투와 본질적으로 거리가 멀다. 타고난 거다.
결혼 전 나에게 전화가 와도, 약혼녀에게 고이
돌려보내 줄 수 있는 캐릭터가 나는 싫었으나,
무서울 정도로 창현처럼 질투심에 칼을 손으로
쥐는 장면에 입을 떡벌리고 '우와'하는 것이다.
그런 질투를 나는 해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질투하기 전에 이미, 버릴 생각을 할 것이니까.
MBTI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지만 소름이 돋은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글귀 때문이었다.
[ 남과 경쟁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합니다 ]
그 경쟁은 남녀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며,
대화를 통해, 엄마를 닮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 엄마는 다른 게 아니라 남녀관계에서만.
나는 거의 모든 부분이라 단점 중 하나이다.
그래서 고든램지를 동경하는 것이 아니겠나.
"I am a super competitve person." 이라
표현하면서, 아주 작은 일에까지 그렇다,라고
말할 때 나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내가 나를 싫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히 아니다.
나 같은 캐릭터가 싫을 뿐. 사람은 원래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해낼 때 감탄하지 않나.
올림픽 선수들이 다 나와 비슷하다면 우리는
결코 경기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보며
동경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노력, 성과, 물론
그렇겠지만, 더 큰 이유는 난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대에, 내가 못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잘하던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가장 가까웠다.
하지만 사귈 생각이 없었고 잃고 싶지도 않아
가장 친한 사람친구로 합리화시켜둔 관계였다.
혹자는 나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라고 했으나
반은 맞았고, 반은 틀린, 사기이나 정직한 관계.
시간이 지나자 상대가 여자를 사귀기 시작했고
여자를 사귈 때마다 사진이든 뭐든 내게 보내면
무려 칭찬하거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초기에는 그 애도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으나, 언젠가의 사건 이후 딱 한 번 내가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 너, 내가 아직도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 아니, 이제는 안 좋아한다고 생각해. 절대..
내가 무섭도록 차갑게 대하던 밤의 대화였다.
그애는 나를 되돌리고 싶었고 나는 반대였다.
이제 내 마음이 완전히 변했다고 믿는 상대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것을 상대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 이후 그런 류의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으니
표면상 우리는 완벽한 친구였으나, 그렇다 해도
온전한 친구일 수 있을 리 없었다. 알고 있었다.
한국에 오래 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얼마 전
두 번째 여자친구가 생겼다. 온전하지 못했던
친구인 나는 마음이 더 차가워져 냉정해졌다.
조르지 않는 나는, 돌아보지도 않는 사람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이러함에도 정작
돌아보면 반은 맞고 반은 아니었나 보다.
발신자표시제한 전화가 평소처럼 걸려왔다.
나 너한테 고백할 거 있다
느낌상 좋아한다는 따위의 고백이 아니기에,
고백보다는 '자백'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오래전, 서로의 고백을 꿈꾼 적 있었다.
사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고백을 원했다.
소유가 아닌 표현 자체에 만족할 수 있다 여겼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좋아한다면 좋아한다고
그저 표현하는 것, 고백하는 것, 그걸 원했었지만
"꼭 말로 해야 알아..? 말 안 해도 다 알잖아.."
라는 말이라든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던 방식에
당시에는 일종의 한이 맺혀있는 느낌까지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일절 그런 종류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걸 모르던 상대가 나에게 고백할 게 있다니.
그 고백이 아닌 것을 알지만 단어가 부적절했고,
각오해야 할 것만 같았다.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임신했어
미성년자 소년과 한참 어른인 여자. 누가 봐도
성공한 이 소년을 잡기 위해 수를 쓴 것 같은데
마침 본인이 말끝을 흐렸다.
- 솔직히.. 일부러 나한테.. 그런 것 같기는 해..
소년에게는 처음이었고, 여자는 물론 아니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더 기분 나쁜 것은
그래놓고 여친보다 돌아온 나를 찾는 것이었다.
다시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나는 차가웠다.
- 네 여친하고 얘기해.
- 싫어.
- 여친한테 하라고, 나한테 걸지 말고.
-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 줄게.
- 됐어.
- 들어봐.
- 싫다고.
- 아, 좀 들어봐~
- 야, 내가 무슨 닭이냐?
- 뭐?
- 꿩 대신 닭이냐고.
- 그래! 꿩 대신 닭이다!
- 재밌는 얘기는 네 여친한테나 해 줘, 끊어.
계속 차갑게 대하며 전화를 끊으려 하던 내게
해온 말을 그저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었다.
- 요즈음 나를 무겁게 누르는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 가장 크고.. 가장 무거운 돌이..
- ..
- 바로 너야..
너라는 돌이 나를 제일 너무 심하게 눌러...
- 내가 무슨 돌이야? 여친한테 걸으라고.
- 꿩보다..! 네가 더 .. 나아..
- 참 나, 어이 없네 진짜.. 끊자.
냉정해졌다. 내가 정말 냉정해서인지, 혹은
냉정하지 못할까 봐 스스로 독하게 했던 건지
구별할 수는 없지만 자동적으로 그렇게 됐다.
- 너, 자꾸 나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면, ...
나 지금 확 자살해 버린다.
지금 생각하면 허탈한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당시엔 그럴 수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본인의 커리어에 굉장히 큰 사건이 일어났고
여기저기에서 그 일로 떠들어댔으며, 딱 그때
맞담배 피우던 女가 유혹했고, 내가 돌아왔고,
그 아이는 무려 내게 상냥함을 원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곧 전화가 끊겼는데 내가
걸어보니 폰에 돈 떨어졌다는 안내가 나왔다.
당시 그 나라 통신사는 전무후무한 갑이었다.
아무튼 상황상 상대는 그때 집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 번호로 통신사에 입금해야 통화가
재개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자정에 가까운
그 시간에 옷을 갈아입고, 돈을 들고나갔다.
하필 현금이 모자라 동네에 없는 ATM을 찾아
한적한 트램을 타고 지하철 역까지 가서 돈을
뽑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방법으로 상대
폰에 입금했고, 집으로 돌아가 전화를 걸었다.
- 어떻게 된 거야? 전화가 어떻게 다시 되지?!
- 내가 네 폰에 돈 넣었지.
솔직히 이 애가 그동안 나에게 전화할 때마다
나갔을 요금에 비하면 내가 넣어준 돈은 극히
조금에 불과할 것이지만, 작은 돈은 아니었다.
- 어떻게 넣었어? 이 시간에???
- 옷 갈아입고, 메트로까지 가서 ATM에서
돈 뽑아서 네 번호에 넣고 방금 집에 왔어.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 애는 이미 그것 하나로도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나도 다독이기로 했고..
'자살'이라는 단어만 말 안 했어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타이밍 절묘하게 끊긴 바람에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달까.
나중에 다른 이의 입에서 불현듯 나온 말이지만
'그 애는 너와 달라서 자살도 정말 할 수 있는 애'
라는 말과, "나 자살했었어"라고 오랜 세월 뒤 또
마주쳤을 때 내게 손목시계를 찬 팔을 보여주던
그날을 생각하면, 그때 받아준 건 잘한 일이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무겁다는 나에게 전화한
상대를 만일 계속 무시하고 외면했다면, 그래서
나쁜 일이 실행됐다면 감당할 자신 없었으니까.
그보다, 그 아이와 함께 할 자신은 더욱 없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당시 난 집을 통째로 도둑맞아 소지품의 90%를
잃고 갈 데가 없어 친구 집에 임시로 얹혀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급히 돈을 넣고 들어온
내 발걸음과, 예전처럼 다시금 그 애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고 결국 위로해준 나. 하루가 지나고
수북이 쌓인 낙엽들을 밟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다시 한 걸음 딛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나한테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 어떻게 걔가 나한테.
다른 여자 임신을 시켜놓고 나에게만 이야기하고,
심지어 그러고 나서도 나한테 계속 전화를 걸면서
예전처럼 지내려 하고, 그동안 그렇게 말한 적도
없는데 보고 싶다 하고, 위로까지 받으려 하다니.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게 위로를 얻으려 하다니.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너무한 것 아닌가..
원망이 아니라 정말 신기하고 궁금한 심정이었다.
물론 표면상 친구였으니 위로가 가능할 법 하고,
비밀을 지켜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겠으나,
본인은 알지 않나. 위로는 내가 받을 상황인 것을.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하나님이 훅 치고 들어왔다.
너도 나한테 그랬잖아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더 놀랐다.
와.. 인정. 신선하고 세게 얻어맞은 느낌으로,
정말이네. 나도 내가 잘못해 놓고, 엉망이면
그때마다 하나님께 위로를 구했네. 뻔뻔하게..
'그러면'
발을 내딛으며 이제 하나님에게 여쭤보았다.
'저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낙엽을 다 밟기 전 기이할 정도로 궁금해져 왔다.
'걔는 그렇다 치고, 저는 어떻게 이러냐고요?'
화도 안 나고, 원망도 안 되고, 마음은 안 좋지만
걔를 미워하는 마음이 도무지 전혀 들지도 않고,
사이 나쁠 때도 누가 흉보면 대변인이 되어 있고,
전화 오면 받아주고, 얘기하면 들어주고, 어떻게
그 애를 보호할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하는 나는 뭐지? 뭐 하는 거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어떻게 이런 거지?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답이 들려왔다.
아주 똑똑히 들려왔다. 지금도 생생하다.
네가 그렇게 해 달라고 그랬잖아
그 음성은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
소리이지만 소리가 아니기도 하고
이렇다 저렇다라고 말할 수 없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더는 답이 필요 없었다. 이해가 되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웃음이 나와버렸다.
나는 잊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기억하고 있었다.
노란 종이에 적었던 기도글을.
수 년 전 초창기에 쓴 어린 소녀의 기도문을
하나님은 한 줄 한 마디 다 기억하고 계셨다.
하나님, 제가 이 아이를 제 사랑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도록 도와주세요.
그것이 그 아이를 향한 나의 기도였다.
나는 그 아이가 내 것이 아님을 알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에 사귈 수 없었다.
아무리 그 애가 나를 좋아하는 티를 내고
아무리 그 애가 내 옆 사람들을 질투하고
아무리 그 애가 나를 원망하고 방황했어도
그 애를 사귀는 방식으로 도울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 그런 무책임한 일을 할 수 없었고
되도록 오래, 인생의 친구로 남기고 싶었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걸어서라도 잠시만
그 애를 볼 수 있다면 걷겠다고 그리워하던
나는 냉정함으로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래서 미리부터 알고 그렇게 기도했다.
내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달라고.
이 얼마나 오만하고 겁 없는 기도였던가.
심지어 무서운 기도였음을 당시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차마 그리 기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나는 오늘까지도 그 아이를 미워할 수 없다.
아무리 사람들이 그 아이를 욕하고 비난해도
나는 그 아이를 절대로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약속했고, 기도했고,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관계가 무너져 남보다 못하게 되더라도
네가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나는 지켰다.
내가 약속해서 지킨 줄 알았는데,
그날 깨달았다. 그렇게 해달라고 해서였다.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기도를 함부로 하지 않게 되었다.
내 뜻대로 하는 기도는 나를 더 힘들게 한다.
하나님의 뜻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된 계기였다.
나에게 사랑은 부족하고 터무니없었다.
어차피 내 것도 아니었고 가질 생각도 없었고
그럴 자신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괴로웠을까.
지금은 "옛날에 옛날에~"하는 옛날이야기처럼
아득한 남 이야기 같기도 해 적을 수 있을지도.
하나님의 사랑은 처절하다
수없는 배신과 아픔과 눈물과 찢기는 고통을
나에게 반복하는 상대가, 잘못하고 내게 와서
'나를 위로해 달라' 말할 때에도 받아들인다.
창녀 짓을 하고 돌아와도 아내로 다시 맞아주는
그런 장면이 성경의 호세아서에 자세히 나온다.
이것은 모두 거울이며 도구이다. 한 가지를 내게
알려주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통로 같은 것이다.
수없이 많은 날동안 하나님을 얼마나 외면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순간 하나님을 배신했으면서도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 바닥을 치면 하나님 앞에
다가가 "나를 위로해 주세요"하고 말하는 그것.
뻔뻔한 짓을, 내가 하나님에게 계속했음에도
하나님은 그런 내가 도저히 미워지지도 않고,
원망되지도 않고, 안타까워 돕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사랑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의 사랑은 영원하다.
Love never fails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1John4:8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은즉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1John4
또 사랑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명령대로 걷는 것이요, 명령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안에서 걷는 것이라. 2John1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되 대언은 있다 해도 없어질 것이요, 타 언어들도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 지식도 있다 해도 사라지리라. 그런즉 이제 믿음, 소망, 사랑 이 셋은 항상 있으나 이것들 중의 가장 큰 것은 사랑이라. 1Corinthians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