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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Oct 26. 2024

남자를 양보한다는 헛소리

여자의 적은 정말 여자일까

한 번은 짚어둬야 할 것 같아 후배에게 물었다.

- 만일, 우리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같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 같아?
-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
- (답을 기다려 본다)
- 언니한테는 양보할 것 같아요. 양보할래요.

양보한다고? 의미심장한 후배 앞에 웃어젖혔다.

- 맙소사, 맘은 고마운데, 정답은 따로 있어.
- 네? 무슨 정답이요?
- 내 질문이 틀렸다고 해야, 그게 정답이야.
- 언니 질문이 뭐가 틀렸는데요?


※ 주의 : 오랜 세월 퍼즐의 총집합이므로 바쁜

  분은 알아서 '뒤로가기'를 누르셔도 좋습니다.


나답지 않은 질문은 아래의 일로 일어나게 됐다.


언니, 저는 L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제 이상형이에요. 한국에서부터 좋아했어요!


너도냐. 이런 애들 내 주변에 왜 끊임이 없냐.

여자들의 이런 말이 결코 처음은 아니었으나

내심 조금 당황했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하나.


말 안 하자니 친한 후배에게 숨기는 것 같고

말하기엔 L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겠으며

이미 의미 없는 오랜 옛 일에 불과할 뿐이나


우리 관계에서 한 번 짚어야 할 직감에 묻자

"양보할게요"라니. 오히려 위험하게 느꼈다.

그런 생각의 방식 자체에 대하여.


정답이 뭔데요? 언니 질문이 왜 틀렸어요?


- 내 질문이 틀린 이유는,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라는 상황 자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각자 명과 결혼하라고 하셨잖아.

- 네.

-그럼 그 남자의 아내도 딱 한 명이어야겠고.

- 네, 그렇죠.

- 그렇다면 누군가 착각했거나 욕심냈을 가능성이

 크겠지, 원래 짝은 한 명이니. 하나님이 너를 위한

 배우자를 예비하실 때 설마 남자를 우리 둘에게

 예비하시고, 이긴 자가 갖거나 양보하라 하실까?

 내가 겪어 온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야.

 더 큰 가능성은, 둘 다 그 남자의 짝 아닐 가능성.

 같이 좋아할 수 있지만 셋이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

 뜻은 아닐뿐더러 하나님은 각자에게 따로 각각의

 짝을 예비할 수 있는 분이야.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설령 착각했어도 기도해 볼수록 해결되게 돼 있어.

 내가 착각했거나, 네가 했거나, 둘 다 아니거나.

-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 그러니 이건 양보의 문제가 아니지. 둘 중 하나

 착각했냐, 둘 다 착각했냐 깨달아야 할 문제일 뿐.

 적어도 나와의 관계에서는 그럴 거라는 얘기야~.


재미있는 건, 보통 둘 다 아니었을 경우가 많다.


우정 Guaranteed


- 어떻게 그런 남잘 좋아하냐.. 남자로 안 보이던데..
- 몸이 엄청 멋있어. 성격도 맘에 들고.
- 으응.. 그, 그래... 우리 우정 영원할 거야~ㅋㅋ

- 진짜, 우리 남자 스타일 정 반대인 것 같아 ㅎㅎ


농담반 진담반, 내겐 절대 남자로 안 보이는 이성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써먹던 말이었는데, 이제 보니

나도 무의식적으로 안전한 친구를 찾기라도 한 걸까.


여자의 가장 큰 적
- 여자는, 여자가 적이야~
- 네?!
- 여자한테는 여자가 적이라고.
- 왜요..? 전 아닌데요.
- 좀 더 크면 너도 알게 될 거야.
 여자의 가장 큰 적은 여자라는 걸.

10대 중반, 10살 위 언니가 해준 말이었다.

나이 먹고도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의사와 관계없이 뇌리에 박히듯 남게 됐다.


오픈형 인간


- 저는요, L이 부를 때 거의 룸메랑 갔어요.
- 룸메랑 같이 만났다고?
- 네, 싫었겠지만 나중엔 적응하던데요 ㅋㅋ
- 하이고~
- 저는 그렇게 오픈형이었는데 정작 룸메들은
 하나같이 몰래 사귀다 헤어진 뒤 말해 주거나,
 결혼 직전 알리더라고요..ㅎㅎ
- 근데, 너는 그렇다 치고, 걔네들은 왜 자기가
 거기에 껴? 거절도 안 하고 계속 같이 갔다고?
- 엇.. 생각 안 해봤어요. 매번 같이 잘 가던데..?
- .. L이 유명하니까 그래서 간 건가?
- 듣고 보니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지인 되려고.


우정의 한계


- 진짜 괜찮은 애였어요. 가식 없이 솔직하고 부자

 인데 허세 없고. L 좋아한다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L은 그 애가 여자로 안 보인다고 제게 따로 여러 번

 말한 터라, 차마 아무 말도 못했는데, 나중에 얘가

 다 알게 되고 제 입장이 아주 난처했던 적 있어요.

 배신감 느꼈겠죠... 저는, 둘이 좋아하면 응원할 수

 있었거든요... 시도해 봤다 L한테 섭섭하다는 말만

 들었어요. 제가 뭐라고 하냐고요. L이 너는 여자가

 아니라더라,그래요? 엄밀하게 L의 친구였어요.

 근데 L을 사귀지 않았어도 사과할 수밖에 없던 게,

 자기한텐 생전 전화 안 하는데, 프랑스에서 전화와

 받았더니 꾸짖으면서 제 편을 들더래요. L이 굉장히

 직설적이거든요. 그런 말만 하고 전화 끊었다고..

- ㅋㅋㅋㅋ 열받았겠네

- 처음에는 차여서 상처받았는데, 너무 그러니까

 마음 접는 데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됐다나 봐요.

 그래서 대신 엄청 사과했어요. 면목없다 이러면서.

 얘 통이 커서 용서하고 나중에 강남에서 만났는데...

- 만났는데?

- 그 애가 호감 가졌던 '교회 오빠'랑 같이 왔어요.

- 왜?!

- SNS에서 어쩌다 보고 자기도 온다 그랬다고..

 당연히 제가 부른 것 아니고요. 암튼 화장실에서

 얘가 향수를 꺼내 여기저기 많이 뿌리더라고요.

 그러고 같이 들어갔는데 그 남자애가 우리한테

 "향수 누구 거야?" 하자 그 애가 "나!" 했죠.

 향수 이름 듣더니 저를 쳐다봐요, 답 기다리듯.

 제가 당황하면서 "D&G Lightblue"라고 하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인데. 전여친이 쓰던 거."

 그리고 바로 갑분싸.....

- ㅋㅋㅋㅋㅋ

- 평소에 살짝 찍던 내 향수였는데, 민폐 느낌...

- 민폐 맞네 ㅋㅋㅋㅋ

- ㅋㅋㅋ 그러고 나서 다시 못 만났어요.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 우정은 어려웠던 거죠.

 저야 그 남자애랑 뭘 해보려던 것은 아니어서

 친구로 선 확실히 그었지만, 친구는 잃었어요.

 아무튼 정말로 괜찮은 애였어요. 한편 아쉽죠.


너네 다 가져


나는 휴학을 2년이나 했다. 1년은 건강 때문에,

나머지 1년은 여자 한 명 때문에 포기해 버렸다.


그 '여자 한 명'은 L이 나와 다툰 사이 처음 사귄

여자였고, 내가 입국한 후 L이 일방적으로 내가

있던 곳에 들이닥친 그날밤 바로 차인 여자였다.


그 여자는 동기에게 거짓말을 시켜  불러냈고

차인 후부터는 무려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센케였던 그녀는 학교에 거짓말을 퍼뜨렸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에 맞선 건 오직 L뿐이었다.

연아가 그럴 리 없다고. 그럴 애가 절대 아니라고.

설령 그랬다 할지라도, 만일 연아가 그랬다면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소리 질러

벽까지 싸웠다며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라고

했지만, 이튿날 다시 온 전화에 나는 차디찬 말투로

"부탁인데, 앞으로 내 일에 일절 상관하지 말아 줘."

라고 말할 정도로 '그 여자 한 명'에게 시달렸다.

L이 내 편을 든 덕에 그녀가 더욱 발악했기 때문.


차라리 주고 싶었다. 너 가지라고. 다 가지라고.

나는 남자를 두고 승부 게임을 할 여력이 없었고

정확하게는, 가진 적 없으니 내 것도 아니었다.


L의 주위에는 그 후에도 수천 불짜리 소지품을

선물하는 여자가 이어졌고, 유럽에 살던 여자도

나를 알고 접촉해 어떻게든 불러내 만나려 했다.


- 제 이름.. 그것도 영어 애칭을 어떻게 알아요?

- 아~ L오빠한테 들은 적 있어요.


말하지나 말지, 네가 말해서 내가 미움을 받잖냐

라고 하기엔 지난 일들이었다. 사귀지도 않는데,

왜 사귀다 차인 그녀들이 나를 자꾸 건드리는지.

싫었다. 너무 싫어서 세트로 보내버리고 싶었다.


그녀들은 왜 그랬을까


- 야, 갈 때 쟤도 제발 좀 데려가라.


뒤돌아 나가던 나에게 L이 했던 저 말이 기억난다.

L이 여지를 주는 인물은 아니었다. 대놓고 면전에

"난 네가 여자로 안 보인다."라고 반복해 주는데도

"그래도 괜찮다"라고 하며 매달리니 뭐 어쩌겠나.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녀들에게 L이 딱히 좋은

남자가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그 애를 원했을까.

하나같이 돈 많고 학벌 좋고 실력 좋은 여자들이.


"어머, 연아가 왜 그런 애를....(좋아하냐)" 라며

말끝을 흐리시던 어른을 의아하게 봤던 내 10대.

"넌 연애하기 좋은 상댄 아니지. 결혼은 몰라도."

"L이 눈이 높네." 그들의 말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퍼즐처럼 맞춰졌다. L이 좋은 남편감은 아니었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 내 것이 아니므로

그녀들에 가지라 하고,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언젠가 나의 이런 태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L이

"섭섭하다" 할 때 민망해 아무 말 했던 기억.


L은 내가 휴학을 연장한 진짜 이유조차 모른다.

여자애들이 해대던 일을 하나도 말 안 했으니까.


다른 남자 만날 거면서


그런데 말이다,

그녀들은 전부 결국 다른 남자와 사귀고 결혼했다.


"난 L이 식물인간이 되어도 좋아"라던 '그 여자'는

나를 찔러보다 말았던 남자애와 사귀기 시작했다.


많이 황당했다.

어차피 그럴 거면서, 다른 남자 만날 수 있으면서

왜 그렇게 야단이었을까? 그리 모함했을까?

누군가 나는 잠재적이며 지속적인 이었다.


신뢰의 문제


남자를 양보하겠다 했던 후배가 별안간 전화했고

얼굴을 보인 그녀 옆에 무려 약혼자 있었다.

상당히 놀랐지만 자연스럽게 후배를 치켜세웠다.

"정말 잘 만나신 거예요. K는 정말 최고예요~"


여자의 직감은, 더구나 나 같은 사람의 직감은 꽤

예리한 구석이 있다. 문득 알 것 같았다.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는지. 인사하자마자 왜 급박하게

헤어졌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알아졌다.


예상할 수 있는 두 가지로는 첫째, 내가 언니인데

남친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가 남자 사귄다는 것을

말하기 껄끄러웠을 가능성과 둘째, 여자로서 경계.

둘 중 무어라도 나에 대한 신뢰가 없음을 의미했다.


그간 나에게 전혀 티 내지 않고 남에겐 자랑하고.

이 후배가 그럴 줄은 모를 만큼 특별히 여겼는데..


Yuho가, "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어. 결혼까지도

생각 중이야. 너한테 보여주고 싶다~"라고 했던 건

고마운 거였다. 내가 기뻐해 줄 거라 믿는 그 믿음.

누가 그랬나. 일본인들은 진실하지 않은 편이라고.


무성의한 결혼 소식을 통보받은 그날, 나는 크게

충격 받았고(방식에 대하여), 우리의 관계가 실은

이 정도였구나 하고 조용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게 보여줄 필요까지는 없었다. 보고 싶지도 않고.

진실되지 못한 행동이 실망스러웠던 것뿐이었다.


어리석은 질문


- 언니~~ W언니 연주회 날 잠깐 봤을 때요~~

(결혼할)오빠한테 "현성언니 예쁘지?" 했더니

 "어, 되~게 예쁘시다~" 하더라구요~

- 네가 그렇게 물어보니 그랬겠지.

- 아니에요 언니.

- 무슨 말이야, 네가 예쁘지!

 나는 정말 진심으로 네가 예쁘다고 생각하거든.

- 아이, 언니~~ 언니가 훨씬 예뻐요!


듣기 거북하겠지만 여자들은 이런 대화를 한다.

실제로 나는 후배를 진심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는 되레 나를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심히 좋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녀의 자존감 또는 자격지심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다. 착잡하게 나중에 깨달았고.


난 후배를 예쁘다 생각하면 거기에서 끝나는데

후배는 왜 약혼자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이것이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런 질문을 굳이 해서 원치 않는 답을 듣고

심지어 그 일을 나에게 왜 알려주느냔 말이다.

후배가 순수하다고 생각했고, 이해는 안 갔다.


자기 남자에게 덫을 치는 여자


순식간에 덫에 걸린 남자라면 그런 질문에는,

"내 눈에는 너만 예뻐" 혹은 "네가 훨씬 예뻐"

하면 될 걸, 왜 저렇게 대답해서 덜미를 잡힐까.


이 역시 이해되지는 않았다. 내 얼굴이 만일

연예인급이이해라도 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를 비켜가지 않는 것도 인생인 것이다.


결혼식 축주는 나에게 맡겨졌으나, 정작 식 중

화면에는, 나를 제외한 친구들과 커플이 열던

파티가 송출되고 있었고, 무려 화장실에서까지

여러 얘기들이 들려오면서 결국, 클리어해졌다.


경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계였다.


것은 매우 미묘한 감정일 것이었다. 정작 서로를

좋게는 생각하지만, 좋은 사람이기에 경계한단 것.

후배가 날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한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랑도 하고 자주 불러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 하루이틀이 아니었으므로 나에게도

말할 기회는 많았지만, 암시조차 하지 않아, 나는

좋은 남자를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알릴 정도도 아닌 사이였다나도 상관 없겠지만,

"외국에 다시 나가 살아야 하나.."라는 내 말에 즉시

"언니! 어디예요!? 어디 생각하시는데요? 저한테

 말해주세요. 저는 언니 옆 집에 살고 싶어요!"라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나에게만 숨기고 있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할 수 없으므로

더 이상 그녀를 가까이 둘 수 없음을 인정했다.


초대 아닌 초대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몇 달  조용히 일어났다.


'축주를 잘 마쳐주고 마무리해야겠다' 정한대로

연락하지  , 갑자기 전화가 온 것이다.


- 언니~~~ 저희 집에 한 번 놀러 오세요~!


나는 초대도 잘 안 하고 남의 집에도 잘 안 는데

하물며 후배 신혼집에 눈치 없이 놀러 갈 리 없다.


- 사실 애들이 다 한 번씩 왔다 갔는데요~, 오빠가

 물어보더라구요~. 그분과 친하다면서, 결혼식에

 축주도 해 줬는데 왜 언니만 한 번도 안 오냐고요.


그러 오라는 것이었다. 미쳤나, 그 말 듣고 가게.

공식적 거절을 위한 초대, 원하던 답을 주었다.


이제 정말 끝이다 생각하며 연락을 끊게 되었다.

후배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알아서 연락을 끊었다.


너를 못 믿은 게 아니야


- 내가 불쾌한 건 다른 게 아니야.
 날 그 정도로 밖에 안 본 것에 대한 실망이야.
 미리 말하면 내가 자기 남자한테 뭘 하겠냐고.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했길래...
 남친 생겼다면 내가 셋이 만나자고 하겠어?
 옛날에 내가 L만날 때 언니 데려간 건 특이한
 경우고, 단 둘이 안 만나려고 데려간 거였고.
 걔가 남친 생긴 경우는 다르지. 난 안 만나지.
 말은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나한테만 숨겨?
 축주는 다 맡기면서 결혼 직전에, 전혀 안 친한
 애들하고 길에서 걷다 그냥 단체로 공표했어.
 심지어 그날 OOO 회식이었는데, 식사 내내
 다들 놀라서 결혼 축하식사처럼 되고 끝났어.
 돈은 내가 내고. 예의로 쳐도 이건 아니었지...
 
- 네가 이해해야지.

- 뭐를?

- 걔는 너를 못 믿은 게 아니야. 너는 믿는데,
 자기 남자를 못 믿은 거지.

- 뭐라구? 잠깐, 와... 아니.....
 그래도 이해는 안 가거든.

- 뭐가?

- 결혼할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그 정도 확신이나
 신뢰도 없이 사귀고 결혼을 생각해? 확신을 해도
 나중에 변할 수 있는데, 심지어 결혼 전에도 그런
 자신감 없이 어떻게 결혼을 하냐고. 이해가 안 가.
 세상에 여자가 하나뿐이야? 결혼하면 여자 안 봐?
 다른 여자 보고 혹 마음 흔들려 깨질까 봐 불안한
 남자와 결혼까지 한다는 게 나로서는 이해 안 가.

- 그래도 결혼하면 일단 안심하는 거겠지.

- 와, 내가 공감능력이 뛰어난데, 이건 못 하겠다.

- 그래도 걔 입장에서는, 널 좋게 생각하니까 더
 그런 거겠지. 그걸 뭐라고 하겠어. 나는 이해해~


한 달쯤 지나고서야 또 깨달았다.

그녀를 이해한다던  언니, 나랑 한 집에서 살 때

1년 이상 숨기고 남친을 사귀다, 내가 기숙사 가자,

남친과 헤어진 후 "남친이 있었다"라고 말해줬구나.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숨겨야 했을까.

언니도 나를, 결혼 전까지는 으로 염두에 둔 걸까.


ㅁㅊ여자는 경계하고..


여자 중 ㅁㅊㄴ들도 많다. 안다.

우리 엄마 주변에도 있었다. 그 ㅁㅊ여자는 우리

부모님 여행에 자기가 끼려고 여러 번 시도했고,

남의 부부 여행에 낀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자기 남편이 바람피워 집을 나간 후 남의 남편에

치근덕대려는 그 뻔뻔함을 호되게 쳐내지 못하고

불쌍히 여기려던 엄마에게 나는 강하게 말했다.


"그 여자 미친 거 아니야?! 어디를 끼려 그래?

 그런 여자면 엄마가 상종하지를 말아야지!"


아, 그랬지. 그때 10살 많던 언니가 그랬었지.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데자뷰


무척 사랑스러운 친구로, 서로 귀히 여기는 관계.

나를 앞에 두고, 그녀가 남편에게 똑같이 말했다.


- 오빠~ 현성언니 너~무 예쁘시지~


급기야 친구 남편분은 한 술 더 뜨셨다.


- 어, 너무 예뻐서 보고 깜~짝 놀랐다.


부산 분들은 원래 격한 어조의 칭찬법을 사용하나.


그러 생각을 한 번만 해 보란 말이다.


사람을 앞에 두고 "예쁘시지?"라고 물으면

남자가 "별로 안 예쁜데?"라고 할 수 있나!

예쁘다고 해도 문제, 아니라고 해도 문제다.


그러니 그런 질문을 애당초 하지 말라는 거다.

이건 이다. 여자가 놓는 못된 덫이란 말이다.


나도 한 칭찬하는 사람이라, 여자들로부터

"언니 같은 남자 어디에 없나요?"

"남자들 눈이 다 언니 눈 같으면 좋겠어요"

"언니 같은 남자 있으면 당장 결혼할래요"

라는 말을 들어온 칭찬러인데도 당혹스러웠다.


예지몽처럼 어디서 본듯한 느낌, 그러고 보니

옛날 그 후배의 일과 겹치며 몹시 당황했는데

질문은 같으나 이 친구의 반응이 전혀 달랐다.


후배와 달리 경계심이 없었다. 그건

나에 대한 신뢰도에서 비롯된다. 자존감이 높은

친구는 아니었으나, 그녀는 진심이었던 것이다.


친구에게 따로 일렀다. 그 말은 앞으로 말라고.

고맙지만 불편하고, 부부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너는 정말로 사랑스럽고, 나에게 매우 귀하다고.


둘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한 명은 관계가 끝나고

다른 한 명은 지금까지도 친밀한 우정을 나눌까?


퍼즐 조각


이 조각들은 가끔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며

나중에야 지나간 그림들을 완성해 보여 주었다.


내가 예뻐하던 후배가


L과 결혼하고 싶다며 꿈을 꾸던 한 조각

한때 내가 L과 가까웠던 것을 알려준 한 조각

실제로 L이 나에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된 한 조각

일본 애 Y가 나를 이상형이라고 알리던 한 조각

그 Y를 보던 눈에 묘한 기류가 보였던 한 조각

S 참 괜찮은데 결혼했다며 아쉬워하던 한 조각

그 S가 러시아에서 내 연락처만 받아간 한 조각

귀국 후 K가 결혼한 지 알아보고 실망하던 한 조각

K도 상황상 나와 소통하거나 호의적이던 한 조각


그 조각들이 다 모이고 나니, 후배도 그럴 만했다.

이쯤 되면 악연이었나 싶을 정도로, 퍼즐이 모이니

친구 중 가장 어이없고 안타깝기도 한 그림일지도.


진심만 말하자


L의 이상형은 여배우 Y와 S였는데 개인적으로

Y의 얼굴이 어마무시하게 청순하고 아름다워서

10대의 나는 그녀의 사진을 노트북에 저장했고

L에게도 Y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했다. 칭찬하는

마음이 진심 그 자체였으므로, 상대가 맞장구

친다면 공감이 배로 늘 뿐, 다른 감정은 없었다.


여자가 예쁜 여자 싫어한다는 말도 있는 듯 하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도 예쁜 여자 좋아한다.

다만 누구든 '내 눈에 예뻐야' 예쁜 법. 취향이다.


여자가 자기 남자 앞에서 다른 여자를 칭찬할 때

순수하게 '오직 칭찬하는 마음뿐'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아주 조금이라도 가미된 가령 정한 답이나

다른 의도가 은연중에라도 깔려 있다면, 그 질문,

안 하면 어떨까!!! 여자로서, 솔직히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까지 생각된다...


안 그래도 여자 질문 정답 맞히기 힘든 남자에게

덫까지 놓아야겠나. 불쌍하지도 않은가,라는 생각..


지혜


사람 마음이 시시각각 변할 수 있어도

사람에게는 의지와 생각이라는 게 있고

관계에서는 약속과 신뢰라는 것이 있으며

부부관계는 약속을 넘어 '서약'이 존재한다.


결혼식을 마치자 태도가 급변해 옛날처럼 다시

친하게 지내려는 여자, 여전히 날 세워 경계하는

여자, 무엇이든 다 그럴만하니 그러리라 보나,

경계의 대상이라면 애초에 선을 그어주는 편이

젠틀하게 느껴진다. 우정으로 포장할 필요 있나?

원래 딱 그만큼이면 되지.


빛나는 우정의 관계


그래, 남자가 내 얘기를 더 잘 들어주거나 더 잘

대해줄 수 있지. 하지만 여자 중에서도 얼마든지

서로 존중하며 귀히 여기는 유익한 관계가 있다.


우리에게는 있었고,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

그들은 늘 소수이나 한결같이 서로를 신뢰한다.


만화영화 청순 여주인공처럼 생긴 언니가 있다.

과장 아니고 누가 봐도 인정할 만화 주인공인데,

이 청순녀는 외모보다 마음이 더 예쁘고 선해서

도대체 남편이 무슨 복을 저렇게 받았나 싶은...

이 언니는 뭐가 이렇게 예쁜 걸까, 매번 신기하다.


또 다른 친구는 국가대표 OO선수의 와이프인데

얘도 다른 만화 여주처럼 생겼고 노래도 잘한다.

수백 명 가운데 제일 예쁘고 옷도 잘 입어 튀는데

성격도 시원시원, 밝고, 착하고, 그냥 다 가졌다.


미모가 특출한 이 둘의 공통점이 떠올랐다.

다른 여자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이것이 너무 좋았다. 진짜... 자기들이 워낙 예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내면이 건강하다는 뜻.

자격지심이나 불필요한 경계심, 덫 따위도 없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얼굴빛

이라는 말도 있듯, 어쩌면 그녀들의 건강한 내면이

외모까지도 빛나게 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여자의 가장 큰 적은 여자가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 우정의 마침표에 애도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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