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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Nov 01. 2024

춤 : 몸의 언어

Feat, 스테파&랑비엘

<쿵짝쿵짝 딩딩 쿵쾅쿵쾅 쿵짝뽕짝>

- 아, 시끄러워~

- ?

- 무슨 식당이 .. 음악 시끄럽고 진짜 별로다.

<1분 뒤>

- 음악 시끄럽다며.

- 어, 왜?

- 지금 너 봐바.

- ....?

- 몸이 리듬 타는데? 어깨 움직이고 발까지...

- 응? 앜ㅋㅋㅋㅋㅋㅋ 진짜네! ㅋㅋㅋㅋㅋㅋㅋ


내 몸이 싫단 음악에 맞춰 연신 들썩이고 있었다.

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다. 난 항상 그런식이었다.

그런 것 같은데 아니고, 아닌 줄 알았는데 맞았다.


어떤 재발견


음악보다 위로 생각해 본 것은 없다.

그러나 굳이 다음을 말해야 한다면

문학, 그리고 혹시.. 설마 일까?!


 퍼즐을 맞춰본 것은 며칠 되지 않았다.

한창 핫한 [스테이지 파이터]덕에 그동안의

흩어졌던 퍼즐이 모였다. 소위 이런 것이다.


일단 [스테파]의 주제가 '춤' 것을 보자마자

프로그램을 아껴 둔다. 매우 특별하기 때문에.

나는 보통 쇼를 보지 않는다.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이며

예외는 고든 램지의 요리 프로그램 정도였다.


학생 때조차 Kpop 가수의 춤을  없지만

유툽에서 다른 공연들을 찾아본 적은 있고,

 귀찮아하는  같은 사람 검색을 

국립현대무용단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오늘도 지인이 예술의 전당 표를 주려 했는

고마우나 여러 상황상 않기로 결정했다.


Bach 음악에 추던 오래 전 국립현대무용단의

춤은 내가 추구해 온 이상 그 자체로, 매료되어

잊지 못하고 가장 큰 관심이 '안무가'에게 갔다.


무엇에 나도 모르게 진심이었던 것일까?

언젠가는 국립현대무용단이 나누어준 설문지에

추가 의견과 소감을 진지하게 적어낸 적도 있고,

경기도무용단의 전통무용 공연에도 종종 다녔다.


어라, 내가 춤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또 생각나던 장면은, 교수님이 내 곡을 듣고는

"이건 발레 음악이네. 네 곡은 이야." 하신 것.

며칠 동안 하나둘씩 떠오른 어릴 적 퍼즐 조각들.


첫 무대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앞에 나와 커플 춤추던

내 모습은 그야말로 언니들 씹어먹듯(다 언니)

배려 따위 없이 지 혼자 다 해 먹고 추던 춤사위.

'저게 나란 말인가!' 남 보듯 묘했지만 나였고.


솔직히 다시 곱씹어도 너무 심했는데 춤만으론

 솔직히 유치원에서 내가 압도적이기는 했다.

어디에 세워 놔도 분명히 내가 가장 튀었겠지만

(진짜 몸놀림이 날 좀 보소... 그 잡채..ㅋㅋㅋ)

선생님 알아서 나를 앞줄 센터에 배치하셨다.


무용


중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무용 선생님이

반에서 나를 포함한 두 명을 호명했던 기억.

"너희 둘은 무용부에 들어오고 싶으면 찾아와"


한 명은 반 1등이라(?) 안 가서 혼자 갈등하다

찾아는 갔는데, 집중할 용기가 없어 포기했던.


1학년 전체에 조별 '창작무용'을 시켰을 때도

우리 조는 음악, 안무를 나 혼자 다 짰던 기억.

두 팀이 칭찬받았는데 그중 한 팀이 우리 팀..


말라서였는지 러시아에서 "발레 유학 왔니?"

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정작 나는 발레를

엄마와 달리 좋아하지 않아 공연을 안 보았고,

그래서 내가 춤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발레 특히 백조의 호수가 그러했다. 지겨웠다..

나중에 알게 됐다. 내게 미술과 무용은 현대

좋다는 것을. 거기에는 한국무용도 포함되고.


손 끝 표현


[스테파]를 보며 한국 무용 에 대한 얘기를

분명 처음 듣는데 익숙한 느낌에 왜일까 싶다

며칠 뒤 깨달았다. 또 한 조각 - 초등학생 시절

합창단에서 민요 부르며 안무 배울 때 한국무용

선생님이 한 번 왔던 것 같지. 그때 우리들에게

손모양을 알려주었고, 그것이 나에게 편안했다.


어딘가 있던 유학시절의 조각. 처음 받은 지휘

수업에서 일단 스스로 지휘해 보는 나를 보던

선생님이 "얘 손 끝 표현력 좀 보세요!"외치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지어 당황했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지휘야말로 손 쓰는

섬세함의 극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장르였구나.


워십댄스


역시 유학 시절, 손에 꼽게 힘이 들었던 시기에

가장 큰 행복선사했던 유일한 시간, 워십댄스.

세종대 무용과 출신 언니가 리드해  있었다.


소위 춤에 타고난 애는 따로 있어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정도 감각적이지는 않다는 것도 알았고.

그런데 희한하게 한 곡은 여럿 중 날  세웠다.


손발이 꼬물꼬물


 때문이었다. 몸보다 손을 중점으로 쓰는 안무.

손의 표현으론, 아마 거기에서만큼은 나았던 것.


손발을 좋아하는데, 손의 표현도 관련 있었을까?

지휘를 무척 하고 싶었으나 성향 때문에 포기했고

진지하게 탭댄스를 배우고 싶었으나 자제했었고

아주 진심으로 펜싱을 배우고 싶어 러시아에서도

알아본 적 있었으며(가장 애정하는 스포츠 종목),

악기로는 오르간이 그런 꿈의 악기였고, 이 셋의

공통점은 바로 ''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스케이팅도 마찬가지였는데 손 다칠까 봐 못했다.


페달링


나는 길을 걸을 때 바닥에 들이 있으면, 그 줄이

실제 나에게 아무 감각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줄들의 감각을 느낀다. 변태 같겠지만.....

본능적으로 그런 것들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처음

오르간 페달을 밟을 때도 교수님이 다른 애들에게,

"얘는 오늘이 처음인데 이상적으로 밟는다. 나조차

 훈련해됐는데 얘는 자동으로 되네" 라시 것.


면허 딴 뒤 차가 없어서 몇 번 몰아보지도 못하고

그 후 5여 년 한 번도 운전을 안 하다 다시 몰 때,

두세 번 안에 이미 잘 적응이 돼 버렸던 큰 이유는

페달링이었다. 다른 감각이야 원래 모자라고 ㅋㅋ

적어도 도로에서 필요한 예의와 센스는 다 갖췄다.

피아노 페달을 밟아왔기 때문에 익숙했던 것이다.


춤 프로그램을 보자 이산가족처럼 흩어져 있던

춤 퍼즐이 생각지 못한 그림을 완성시켜 내었다.


거절과 동시에 수락


러시아 코스타 강사로 오신 한 목사님이 찬양 곡에

'춤'(율동)을 추며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시길래

"아, 저게 뭐야~" 뭐냐면서 억지로 따라 하던 나를

콕 집어 올라오라는 말과 동시에 들리던 학생들의

환호소리, 무슨 상황인가 여긴 어디인가 당황하며

거절했지만 결국... 올라가서 춰야 했는데...


민망하기 짝이 없었지만 올라간 이상, 못 출 수도

없다 생각하고 그냥  추고 내려온 해프닝. 그 후

교인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얘기가 인상 깊었다.


다시 봤다, 그럴 줄 몰랐다, 깜짝 놀랐다에 답하며,


- 저는 분명히 거절했거든요.

- 맞아요, 거절을 하긴 했어요.

- 그쵸! 팔까지 휘저었잖아요, 안 나간다고..

- 거절은 했는데, 거절하면서 나갔어.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팔을 휘젓는 동시에 무대로 나갔어 ㅋㅋㅋㅋㅋ


거절한 시간과 올라간 갭이 몹시 짧았던 모양..

이렇게 모순된 사람이었나.


스타킹 춤


마지막으로, 가장 옛날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다.

8살, 부모님이 안 계실 때마다 안방에 들어갔다.


가운데 장롱을 열어 엄마가 신던 스타킹 두 개

꺼내 손에 감고, 공간 확보를 위해 방문은 활짝

열어 둔다. 거실로 나가 유일한 오케스트라 곡이

나오는 음악을 플레이한다. 온 집안을 활보하며

춤을 춘다. 스타킹을 휘날리며 돌고 점프하고 막

할 수 있는 걸 다 해서 음악을 몸으로 표현해 낸다.

맨손보다 스타킹 같이 휘날리는 게 있어야 표현이

더 잘 되었기 때문에 ㅋㅋㅋㅋ 스타킹이 필요했다.


한참 췄다 싶으면 가족이 오기 전에 원위치 한 뒤

아무 일도 없던 듯 조용히 있는다. 그래서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 혼자 몰래 춤추던 시절이 있었다.


집의 조건


기숙사에 살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여러 아파트를

돌며 이사를 다녔는데, 내 기도는 이런 것이었다.


"하나님, 춤출 공간이 있는 방을 주세요"


전에 살던 집이 좁아 춤을 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정말 모스크바에서 흔치 않은 구조의

거실 같이 넓은 방 한 칸짜리 집을 선사해 주셨다.


표현의 아름다움


덕분에 춤의 추억을 되새기며, 아, 보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춤 보는 게 정말 좋아서

춤 자체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고

각각의 춤들이 주는 표현들에 행복을 느끼던 중에,

개인적으로 깊이 아쉽고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는

도저히 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유는

내 꿈 일기를 읽어 보았다면 대략 감이 올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떤 동작은 아름다워 십 번씩 돌려봤고,

무용수들의 무용수인 최호종 무용수님의 표현력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품위를 가진 것이었다.

'잘 춘다'와 '품위'까지 갖추는 것은 다른 경지인 듯.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예술계가 그런 것일까?


음악과 춤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춤을 위한

음악, 음악을 위한 춤, 어느 쪽이든 좋다. 눈치 없이

춤춰도 되는 문화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나라는 참

눈치도 많이 보고 체면 차리며, 안 튀어야 모범으로

인식하는 편이다. 귀국 후 알게 된 연예인급 미녀가

"밤마다 춤추러 가서 매일 새벽에 퇴근했었어"라고

할 때 "퇴근을 하다니..?!" "집으로 퇴근하는 거지"

듣고 놀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춤출 곳이

없었으면 클럽에 가 밤새도록 새벽까지 춤을 췄을까.

ㅋㅋㅋㅋㅋ 예쁘고 끼 많던 그녀는 결혼 후 정갈하게

찬양을 부르며 스텝을 밟는 정도로만 수위를 낮췄다.

춤 좀 춰도 되지 않나? 마땅한 장소가 없어 아쉽다.

아니, 미국 같은 문화라면 장소가 없어도 괜찮을 듯.




추위를 뚫고, 얼음 위에서 추는 춤을 직접 보기 위해

그 먼 곳에 두 번 다녀왔다. 원해서 갔고, 흡족했다.

춤을 보고 아주 흡족하던 언젠가. 뭔가 웃기다 / in Moscow

 날 본 순서 중 내 마음을 가장 울리고 흔들어 놓

프랑스 에 춤추던 Stéphane Lambiel나눈다.

랑비엘은, 피겨에 콧대 높고 고집 센 러시아인들마저

사랑하고 애정하는 스위스 스케이터였다. 보면 안다.

Beautiful Stéphane Lambiel

내가 추지 못하는 그 춤을 누군가 춰줄 때

벅차오르거 아득하기도 하고 행복하다.


아름다운 음악과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혼을 살리는 춤'을 훌륭한 무용수를 통해

 기회가 앞으로 자주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안녕. 영혼이 추는 밤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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