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사랑 받지 않겠다
프랑스를 좋아한 적 없지만
그녀에게 보여주고자 다시 간 적 있었다.
이제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내 인생에 프랑스는 더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녀가 떠나버리고 나니
왜인지 한 번 꼭 다시 와야 할 것 같았다.
레스토랑에도 모시지 않고 돌아보니 기가 막혔다.
유럽에서 먹은것 중 케밥이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엄마에게 뭘 먹인 걸까.
둘이 마주앉아 먹었던 그 케밥집에
왜인지 막상 가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엄마라면 나에게 좋은 레스토랑에 가라고 했을테니
뻔뻔하게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돈을 몇 배로 내고 친절한 미소를 받았지만
결국 나에게도 그때 그 케밥이 제일 맛있었다.
아마,
이미 여기에 있지 않은 이를 애도하고자 온 사람은
조용히 붐비는 이 작은 도시에 나 하나였을 것이다.
그녀가 떠난 것만이 아니다.
그녀가 감으로 인해 새로 얻어지는 고통들이 있다.
죽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관계에서 얻는 고통.
내가 이것을 견딜 수 있을까.
아직 견디고 있다. 매일매일.
제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괴롭게 한 그것이 그의 사랑이라면
나는 차라리 평생 사랑받지 않겠다.
자신을 위안하고자 반복하는 그 말
과연 언제까지 이것을 견디고 참아낼 수 있을까.
내가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건
나 역시 그녀를 괴롭게 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떠났고
공범들은 감히 사랑을 운운하며 흉내내고 있다.
이 장소도, 나도 아직도 남아 있는데 그녀만 이곳에 없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실 때 귀찮다며 거부한 내가 이제 와서
찍기 어려운 사진을 홀로 우스꽝스럽게 찍어대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같이 사진을 한 번 안 찍었다. 내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