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마흔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시기라고들 한다. 체감상 느끼기도 그러한 것이. 친구들을 보더라도 직책이 바뀌거나,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지거나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이들이 종종 보인다. 나는 완전히 다른 일을 시작한 케이스인데, 먹고는 살아야 하니 아직은 기존 일과 겸업 중이다.
요즘 각종 매체들로부터 학습능력이 노화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정설은 아니기에 정답이라 생각하지는 않으나, 마음속으로는 하루에 몇 번이나 외친다. 새로운 일을 하려니 학습능력이 떨어졌다는 게 와닿아서다.
"나이와 학습능력은 상관없어!"
이렇게 외면서 태도를 바꿔보자는 의도인데, 노화가 학습능력 저하의 원인이 아니라면 태도가 문제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먹고사는 것도 걱정해야 하는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지.
어떤 학자는 기억력과 같은 부분은 약해지지만 살아온 기간 쌓인 효율성에 대한 패턴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적용할 수 있어서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학습능력이 향상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부분에서라도 역시 학습은 노화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가 아니었을지 나름의 확신을 가지게 됐다.
다른 방면에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데, 새로운 것을 시작함에 있어 분야 자체가 완전히 탈바꿈하는 건 처음이라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느껴진다. 여기서 두려움이 왜 느껴졌는고 하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지만, 쌓아온 지휘를 버려야 하는 것, 어린 친구들에게 숙여야 하는 것, 신입인 것처럼 어리바리해야 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버리고 나를 재구축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고,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한 회피작용으로 합리화해 버린다는 말이다.
"나는 000 때문에..."
두 경로 모두 태도가 문제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태도라는 걸 고치기 어려운 게, 그러지 말자고 말로 되뇌어 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거다. 말로 되뇌어 봐야 그 외침이 오히려 집중을 더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나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나를 밀어 넣고 있다. 해야 하는 업무마다 장소나 환경을 다르게 하고, 업무가 너무 안되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카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환경이 잘 갖추어지면 시간을 들인 만큼 집중력도 올라가고 일도 효과적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당연히 처음엔 환경을 찾는 시간이 비효율적이지만 이것도 몇 번 해두니 일의 종류에 따라 적합한 장소들에 대한 패턴이 생겨 점점 효율적이게 됐다.
나는 늙어 죽는 날에도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 너무 설레는 일이니까. 어떤 결과물이 있었던 건 하니다. 누군가는 남는 것도 없는데 해서 뭐해라고 하지만 그런 건 너무 자본주의적 생각인 것 같고. 나는 그것 자체가 좋다. 먹고사는 문제만 아니라면 아마 맨날 새로운 뭔가를 학습하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