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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기 May 06. 2024

어머니, 커피 한잔은 마시게 해 주세요.

마흔 즈음에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다고 다들 길바닥에 커피를 들고 다니나"


어머니, 그게 접니다.


내 꿈은 80까지 일 하는 것이라 건강을 꽤나 챙긴다. 술 끊은 지도 9개월째. 탄수화물, 당, 고온 정제된 식물성 기름은 거의 피한다. 여럿이 있을 땐 그냥 먹는데 혼자 있을 땐 안 먹는 편이다. 그러니 입으로 들어가는 낙이 커피 말고 있으랴.


부모님은 개방적이면서도 보수적이다. 내가 뭘 다양하게 하고 싶다고 하는 건 무조건 다 해보라고 하신다 늙어서 취미 하나 제대로 없는 게 한이 된다고, 한데 경제에 얽힌 것에 대해선 대단히 보수적이다. 십원하나 허투루 안 쓴다는 말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놀랍게도 실존한다. 간혹 합리적 소비에 실패하면 그걸 분석해서 두고두고 곱씹기까지 하신다.


어머니의 모습에 약간의 지긋지긋함과 존경심이 공존하는데, 처음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땐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나도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10년이 넘게 혼자 살면서 알아차렸는데, 그런 방식은 내게 스트레스다. 나는 적당히 허투루 써야 하고, 그걸로 내 공허함 일부를 달래야 했던 거다. 최소한의 금액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만한 방도를 찾기 위한 스트레스는 필요하지만, 매 순간 나를 동여매는 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10년이 넘어서야 알아차리게 된 건, 어릴 적 몸이 건강할 땐 충분히 버텼지만 노화되고 스트레스가 몸에 직접 박히니 알겠더라.


매일 커피 한잔 사 먹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한데, 커피를 사러 가는 시간 동안의 여유, 소비의 쾌락, 카페인으로 인한 도파민 상승 정도를 따지면 금액대비 만족도가 높다. '이것저것 다 안 하는데 이거 하나는 둡시다'라는 생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거 하루에 한잔 못 사 먹을 정도면 일을 더해야지'라며 채찍질도 있으니 이 정도로 타협하면 되겠지.


커피 한잔 마시기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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