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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an 24. 2021

역지사지해보면 어떨까?

-버릇 나요, 버릇나! H의 항변 그리고-

   

3월 초, 바쁘게 학년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데  학교 방송실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공사 물품에 방송장비들도 한데 섞여 어지럽다. 방송담당 선생님은 전입해 오면서 업무를 새롭게 맡은 터라 아직은 학급 일에 분주하고 업무에 익숙하지 않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치우는 거지’ 혼잣말을 하며 정리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졌다. 행정실 직원 E가 결재할 것들이

잔뜩 밀렸다며 달려와 재촉한다. 그렇지 않아도 시력이 나쁘다며 늘 미간을 찡그리던 직원 H는 더욱 굳어진 인상에 따지듯 큰 소리로 외친다.      


“실장님, 그렇게 자꾸 대신해주면 버릇 나요, 버릇 나! 매번 방송실 담당 선생님은 쏙 빠지고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H는 직설적이다. 다른 동료들이 충돌이 될 성싶은 말은 참아버리는데 반해 자신의 생각을 거르지 않고 밝히며 주장도 똑 부러지다. 이런 그를 보며 옆자리 직원 E는 ‘사이다 발언으로 속 시원해 대리만족을 얻는다’고 한다. 나도 그런 솔직한 면이 귀엽기도 하거니와 할말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그런데 그동안 자꾸 반복해온 ‘버릇 나니까 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오늘따라 방송실의 어지러움보다 더 불편하게 거슬렸다.      


물론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환경미화 공무 직원도 내가 교실 앞 음수대를 닦을라치면 그렇게 얘기하곤 했다. 이런 실장 때문에 담당 교사는 맡은 일을 소홀히 하고 그 부담은 행정실의 다른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르지 않는 피해의식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행정실과 교무실 간 불화의 단면이기도 하다.     


교육현장에 있는 우리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서로 화합의

모델이 되고 있는가를 돌아보며 반성 해본다. 공감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사, 행정직, 교육공무직으로 삼원화, 사원화되며 왜 그리도 불협화음이어야 할까? 도우려는 선의는 업무의 전가로 이용될 거라는 불신, 상대적 소수로써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는 피해의식 속에 대안보다는 불만과 비난으로 벽이 생기며 대치되어 왔던 것이다.     


불만과 불신을 고수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네가 먼저 바뀌면 다 해결되’는 기적도 일어날 리 없다. 다른 이에게 기대하기 전에 우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존중하고 있는지, 구성원들을 내 동료로 생각하며 공감하고 있는지......


요즘 함부로 충고, 조언을 했다가는 꼰대라 불린다지? 그렇다 해도 우리는 1년여 세월을 함께하며 동료애가 남다르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이. 꼰대로 빙의했어도 곡해하지 않고 이해할 거라 믿으며 H에게 용감하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 싫은 기색을 하니 뭔 일을 하기가 겁나네. 선생님들 버릇 난다며 도와주지 말라는 건 행정실 직원들 힘들 때도 버릇 나니 도와줄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건네는 것과 같은데...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걸까? 잘 모르고 힘들때 도와주면 앞으로 서로 더 협조할 수 있잖아”


질책함이 아니었다. H가 다른 선생님을 이해하든 못하든

상대는 알 리 없다. 허나 그 입장을 이해한 H의 마음엔 평화가 조금은 더 깃들 것이기에... 부정적인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그이의 솔직한 웃음을 더 많이 살리고픈 실리적인 접근이었다.


“그렇게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맞아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역시 인정하는 것도 시원시원한 H의 응답에 휴우~ 안도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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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냉혹해! 경쟁에서 이기려면 만만하게 보이면 안 돼’라는 공공연한 조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 손 내밀고 솔선수범하는 이에게 늘 한걸음 더 성장의 계기와 수혜가 주어진다. 구성원 모두 으쌰으쌰~ 서로 협력하며 그야말로 복리의 시너지 효과를 내던 경험이 내 일터, 내 삶터에서의 자랑이다.     


‘역지사지’-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만큼 상대방을 그렇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한 노력 속에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배려와 존중이 헛헛한 공염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되고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정보부장 선생님이 행정실 직원들 협조에 고맙다는 메모지와 함께 Take-out 해온 커피를 직원 수만큼 두고 갔다.      


우리의 솔직한 H 씨는 메모지를 회색 자석 게시판에 잘 보이도록 붙여놓고 시력마저 좋아졌는지 하루 종일 유쾌하게

개인 얼굴에 설레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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