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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Feb 11. 2022

29화) 산에서 배우는 것들, 나무 지지대 꼽다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4째 주 (5.9~15)



산에서 입양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향기가 온 동네에 퍼졌다. 이렇게 감미롭고 달콤한 향이라니! 그 향이 얼마나 진한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고, 집 안까지 스며 들어온다.

진원지가 어딘고 하니, 바로 우리 집 바로 뒷산에 거대한 '아까시'나무에 꽃들이 만개한 것이다. 저것이 흔히들 말하는 '아카시아' 나무인가? 했지만, 찾아보니 둘은 전혀 다른 나무다. 하얀 꽃이 피는 이 향기로운 나무는 '아까시'나무라고. (아카시아는 노란 꽃이라고 한다) 


그 깊고 달콤한 향에 취해 '이 꽃이 몇 날 며칠이고 존재했으면..' 하는 생각도 잠시 들지만, 꽃이란 존재는 아주 잠시의 시간이라 더 아름다운 것.

마침 산에 갔는데, 이곳에도 아까시나무가 있었다.


어디선가 보니 나뭇가지를 심으면 그대로 다시 자라는 그런 게 있다던데.. 아직 그것까지는 배우지 못해 잘 모르는 식물 왕초보는, 이 아까시 나무도 해당되는가? 어쩐가? 모르지만 한 번 이것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끄트머리 줄기 끝 한 가지를 가져와 보았다.

이렇게 화분에 심어주면 과연 가지가 물을 빨아들여서 살아날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냥 우선해보는 것이다. 제발 살아나기를 바래보며 이리저리 지지대를 더해 꼽아주었는데 가지가 너무 짧아 꽃잎이 끌린다. 무모한 시도 같지만 우선해보는 거야.

흐억. 역시나 내 간절했던 바람과는 달리 가지는 그대로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흑흑. 아름다운 꽃들을 괜히 데려와 피우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네.. 미안하다.


무지한 나를 용서해다오. 슬프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된 좋은 실험이었다.

산에 다녀오던 길에 길가 경계석 사이에서 아주 튼실한 쑥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무척 곧고 아름다워 오랜만에 쑥밭에 하나 입양하기로 했다.

바로 시들. 몇 분 되지 않았는데도 쑥이 놀라서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아주 잘 알아보았군. 옮겨 심고 바로 다음날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 만에 촥! 기지개를 켜고 서있는 모습. 쑥 밭이 풍요로워지고 있다.




신비로운 벌집 관찰과 도토리나무

전과 달리 온 식물들을 이제 유심히 바라보게 되다 보니, 남들은 눈여겨보지 않은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산에서 재밌게 생긴 우산 모양의 꽃들의 모습에 감탄하다가, 그 나뭇잎 뒤에 지어진 벌집을 발견한 것이다!

한참 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보니 때마침 주인이 돌아와 있는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놀라운 자연의 세계. 벌과도 참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는 듯싶다. 벌인 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 정성껏 집을 짓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있었다. 또 하나의 보육원이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매트릭스가 생각나는 이 순간. 처음엔 잠시 섬뜩한 느낌이었지만, '어찌 저렇게 정교하게 육각형을 만들어 구조를 짓는단 말인가!' 하며 자연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진은 그 후로 13일 지나서 다시 한번 산에 갔을 때 보았던 같은 집. 1층 단층집이 벌써 3층 연립빌라가 되었다!

와우! 1단계, 2단계, 3단계. 아기들의 크기에 맞춰서 집의 길이와 형태가 정확히 맞춰서 늘어나 있다. 가장 큰 아이들의 방은 방문이 닫혀있다. 저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올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가 보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도다. 식물의 세계에서 점차 곤충의 세계, 미생물의 세계로 시야가 넓혀져가고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아주 큰 것부터 아주 작은 것까지 그 존재마다 무한한 우주를 지니고 있다. 


놀라움뿐이다. 인간은 겨우 우리 존재 차원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만 볼 수 있다. 미시부터 거시까지 우주는 끝이 없는데.

놀라움을 뒤로하고, 다시 산 거늘기.


처음엔 무슨 나뭇잎 인지도 모르고 그저 보이길래 가득 주워왔던 낙엽들. 그 낙엽들을 잘게 부수어서 화분 위에 이불로 덮어주거나 퇴비함에 넣어주는 용도로 잘 쓰고 있는데, 그 향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무슨 나무지? 이번에 제대로 그 나무를 바라보아야겠다 싶어 다시 찾아간 자리.


이 자리이다. 낙엽을 주워온 곳.

단서를 찾아 두리번거리니 바로 물증이 나온다. 온통 도토리와 그 껍질이 낙엽과 함께 가득한 것이다. 


그런데, 식물 왕초보는 이 열매가 도토리가 맞는지? 도 아직 확신이 없다. 도토리도 여러 종류가 있는가? 모르겠고..

집에 와서 책을 펼쳐본다.


어린이용 그림책이 최고다. 언제나 모든 내용이 최대한 알기 쉽게, 그리고 그림이나 사진으로 친절히 설명되어 있으니까! 무엇인가를 새로 배울 때는 이런 책이 최고로 좋다. '어린이용'이라고 굳이 구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었다고 저것들을 알고 다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테니까. 아이들보다 아는 것이 없는것이 어른이다.

출처 : 책 <아주 작은 씨앗이 자라서> - 글 : 황보연, 그림 : 이제호 - 

오마나! 이렇게 기쁠 줄이야. 잎 모양과 열매 모양, 꽃 모양을 보니 완벽히 내가 보았던 그 나무와 정확히 일치한다. 실제의 존재부터 눈으로 손으로 느껴서 알고 난 후에 그다음 책이나 자료 등을 통해 이름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르겠다. 


이 나무를 '상수리나무'라고 하며, 그 열매가 '도토리'라는 것을 이제 정확히 알게 되었다! 책을 먼저 보았다면 전혀 마음에 와닿지도 기억나지도 않았을 테다. 이름은 몰라도 그 나무의 생김새, 향, 느낌, 열매의 모양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진짜니까. 실제를 먼저 보고, 그 후에 책을 통하여 확인! 이제 상수리나무는 정말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출처 : 책 <아주 작은 씨앗이 자라서> - 글 : 황보연, 그림 : 이제호 -

어머나! 새들이 겨울을 위해 도토리를 소나무 주변에 묻어둔다니!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놀랍다. 도토리를 일부러 주워오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주워온 낙엽들 사이에 딸려온 예쁜 도토리들. (이제 너희들 이름에 확신이 생겼다!)  자라나는 치커리 밭에 살짝 놓아주어봤다. 작은 항아리처럼 생겼다. 낙엽의 향도 좋고 예쁜 도토리들.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드디어 꼽은 나무 지지대

나무꾼은 오늘도 나무를 해왔다. 


이제 슬슬 오이, 콩과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하고 있어서 빨리 지지대를 꼽아주어야 하기에 산에서 곧고 얇은 나뭇가지들을 조금씩 주워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어, 드디어 오늘 작업 개시! 뿌욱. 강낭콩이 옆에 꼽아준다. 정신없는 무 밭 속에서 이제 막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는 완두콩 3형제에게도 하나씩. 완두콩은 덩굴이라 조금 더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것들이 있어야겠지만 오늘은 우선 이것만.

하하. 드디어 꼽아주었다. 나도 지지대 같은 것을 난생처음 꼽아준 것이다. 완성! 과연 이것들이 굳건히 잘 서있을 수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 오늘은 이것만으로 큰 걸음 했으니 만족하자.


앞 집 할머니가 옥상에 올라오셨다가 나무로 지지대를 꼽아놓은 나를 보고 한 말씀하신다. 


"나무로 하지 말고, 알루미늄 이런 거 있어. 이런 걸로 사서 혀. 이게 좋아." 

"왜요? 왜 그게 좋아요?"

"....... 그냥 이게 좋은 거. 이런 거 사다 혀."


자연의 버려지는 나무를 얼마든지 주워서 쓸 수 있는데, 사람들이 왜 굳이 알루미늄이나 쇠로 된 인공 지지대를 쓰는 건지가 오히려 궁금한 나에게 무조건 그게 좋으니 나무 쓰지 말란다. 혹시나 내가 놓치는 단점이 있나 싶어 여쭤보았는데 이유를 말 못 하고 그냥 그게 좋다고 하신다.


예전에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양평의 부부 댁에 방문해서 농사일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나실 때마다, "왜 비닐 안치냐, 비닐 쳐야지, 저렇게 농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그렇게 해서 택도 없어.. 에고 참내. 뭐 하는겨.." 하며 온통 잔소리를 하염없이 늘어놓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부부는 하나하나 다 설명하기도 힘들고, 말해도 이해도 못 하시니 그냥 "네~" 하고 그냥 대답만 한다고 했다. 그들은 너무 많은 풀만 손수 살짝 베기만 해서 비닐 대신 작물 주위에 덮어 주었다.


비닐 치고, 제초제에 화학비료에, 살충제에 알루미늄 지지대가 도대체 왜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벌써 오늘의 하늘이 마감에 가까워졌다.


"아! 이 석양의 하늘, 아름다움을 보라." 하늘을 볼 때마다 항상 되새기는 것, 지금 저 하늘의 모습은 오로지 단 하나뿐이라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 똑같은 구름무늬, 배치, 이 모습은 영원히 재현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이 찰나뿐. 그래서 유일무이한 지금의 멋진 하늘을 가슴 깊이 느껴야 한다. 다시는 볼 수 없으니까!


말할 수 없이 아름답던 오늘의 하늘을 가슴 가득 품에 안고, 농사를 마친다. 오늘은 여기까지 :)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이 작가의 비법이 궁금하다면?

[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소개 & 참여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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