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얼굴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법
가오나시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얼굴 없는 요괴이다.
마녀 유바바가 운영하는 거대한 온천장에 들어오고 싶어 했던 그는 온천장의 신입인 센의 도움으로 우연히 온천장에 들어오게 된다.
꿈에 그리던 온천장에 들어오자 가오나시는 남들처럼 자신의 목소리가 가지고 싶어 졌다.
온천장의 직원인 개구리를 잡아먹었더니 목소리가 나왔다. 목소리가 나오니까 이번엔 다른 손님들처럼 대접을 받아보고 싶었다. 남들 같은 대접을 받으려면 금이 있어야 한다더라. 가오나시는 마법으로 사금을 만들어 온천장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사람들이 준비한 화려한 음식들로 배를 채우며 욕심과 욕망으로 몸집이 비대해져 갔다.
외로운 가오나시는 처음으로 자신을 받아주었던 센의 마음이 가지고 싶었다.
가오나시는 센에게도 사금을 뿌리며 유혹했지만 센이 가오나시에게 원했던 것은 사금이 아니었다. 센은 강의 신에게서 받은 약을 가오나시에게 준 뒤 약을 먹은 뒤 배탈이 나 분노로 폭발한 가오나시를 온천장 밖으로 이끌며 말한다.
목욕탕에서만 저래요.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해요.
센은 가오나시를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의 집으로 데려간다.
강력한 마법의 힘을 지닌 그녀는 마법의 힘으로 거대한 온천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바바와는 대조적으로 소박한 오두막 집에서 뜨개질을 하며 살고 있었다. 가오나시는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제니바 곁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비로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알게 된다. 가오나시는 센을 따라가지 않고 제니바의 집에 남기로 결심한다.
온천장의 무리에 끼고 싶어 하는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눈에 띄는 편에 속한다. 표정과 목소리가 없는 흑백의 그 모습은 공허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어딘가 연민을 유발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가오나시에 담은 정확한 의도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나는 가오나시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는 가오나시는 주변에서 칭송하는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그러나 센으로 대변되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의 온기는 물질로 채울 수 없는 것이기에 뱃속을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외롭고 고독해져만 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 역시 그러하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사회에서 자라나는 현대인들은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려 갖은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자본은 신분 상승 및 안정적인 삶의 핵심 요소이자 자신의 힘을 과시할 있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돈과 행복을 연결 지으며 돈에 집착하게 될 수밖에 없는 자본의 톱니바퀴 구조에 빠져들게 된다.
아쉽게도 돈을 모아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많은 과학적 결과를 통해 입증되었다. 일정 수준의 돈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너무 많은 돈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된 사례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근 유엔 산하 자문기관인 지속가능 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가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2020 세계 행복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국은 2019년에 비해 7계단이나 하락한 61위를 기록했다. 1인당 GDP가 세계 28위인 한국은 풍요로운 경제 수준에 비해 행복순위는 61위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는 없음을 나타낸다.
어린 시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인상 깊게 본 탓일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는 이따금 내가 가오나시로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곤 한다.
내 얼굴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내 표정이 지금 어떤가. 혹시 가오나시처럼 표정이 사라지진 않았는지, 열정이라는 아름다운 말속에 지나친 욕심과 경쟁의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과 지나치게 비교, 경쟁하면서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순수했던 열정이 욕망으로 변해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으로 가득 찬 가오나시로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마침내 가오나시로 변해버린 나를 발견하면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돌아보고 방향을 전환했다. 나의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고도 살아낼 수 있는 길이 분명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개념은 아주 불명확한 것이어서, 모두 행복을 얻고자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원하고 의도하는 게 무엇인지 그 누구도 명확하고 일관되게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행복이라는 것,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은 결코 돈을 많이 번다고, 남들보다 조금 나은 환경에 있다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란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에게 이따금 주어지는 선물이다.
현실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므로 나를 제니바의 집으로 이끌어줄 센은 없다. 내 모습을 가오나시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인도해 줄 수 있는 것 또한 나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오나시로 변해버린 나를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의 얼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해 본다.
*사진출처 :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