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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픽 Jul 31. 2020

<반도>, 당위성을 갖지 못한 신파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돼지의 왕>이었다. 우울하다 못해 꿉꿉했던 영화는 개인적인 호오를 떠나 색깔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인상 깊게 남았다. 이후 그는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애니메이션을 몇 편 더 연출하였고 나는 그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 영화 한 편으로 내 머릿속에 감독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나의 편협함을 비웃듯 그는 16년도에 <부산행>이라는 상업영화로 그는 돌아왔다. <월드워z> 이후로 더 이상 좀비 영화가 마이너한 장르는 아니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좀비 영화란 생경한 것이었다. 그런 이질적인 좀비를 완벽하게 한국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부산행>의 가장 인상 깊은 점이다. K-좀비만의 스피드, 김의성이 연기한 빌런 캐릭터 그리고 신파까지. 모든 것이 한국적이었다. 천만 영화라는 쾌거는 당연하게 뒤따랐다. 그러나 이후 개봉한 <서울역>, <염력>이 그 뜨거운 열기에 뒤따르지 못했고 연상호 감독에 대한 평가는 모호한 틈에 빠지게 되었다. <반도>의 감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와 같은 그의 다소 특이한 이력에 대해 굳이 읊은 이유가 그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에 대한 평가를 갈팡질팡하던 관객들이 건 기대에 영화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큰 파동을 맞은 게 나름대로 내가 생각한 맥락이다. 한편으로는 완전히 뇌피셜이지만 그가 블록버스터 창작자로서 느꼈을 부담감과 책임감이 이 영화의 에너지를 억누르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악평을 감안하고 (제발) 재밌기를 바라며 극장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압도적인 스케일과 힘차게 나아가는 이야기, 황폐화된 서울의 풍경의 이미지가 몰아치며 내 감상은 ‘생각보다 괜찮은데?’에서 ‘진짜 괜찮은데?!’로 나아갔다. 물론 시작부터 신파가 몰아치기는 했지만, 미리 감안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과장된 표현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모른 척 넘어갈 만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7번 방의 선물>, <신과 함께>류의 눈물 짜기 연출을 즐기는 편이기도 하다. 신파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나아갈수록 오히려 맥이 빠지고 김이 새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매드 맥스>를 떠올리게 하는 클라이맥스의 카체이싱 장면은 도저히 몰입되지 않아 그 순간부터 나는 그저 관망했다. 나에게는 그 이유가 액션이나 CG와 같은 표현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번 깨진 몰입은 결말에서 방점을 찍었다. 신파에 어느 정도 면역이 됐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래도? 이래도?' 하는 느낌이었다. 아마 대부분 관객들이 신파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래도 안 울어?’하고 감정을 강요하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나친 슬로우모션과 감정 과잉의 음악과 연기도 보기 힘든 부분이었지만 무언가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는 크레딧을 바라보며 억지로 떠먹여 진 '가치'에 짜증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결말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말하고자 함은 이정도 규모의 영화에서 마땅히 선택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치 <#살아있다>의 결말처럼 끼워 맞춘 느낌은 감추기 힘들었다.



 

 첫 번째로 느낀 점은 바로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다. 포스터를 보면 정석을 주축으로 민정네 가족과 빌런인 서대위, 황중사가 보인다. 사실 오히려 흥미로운 건 631 부대의 빌런들 쪽이었다. 인간성을 잃은 631부대의 광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감옥 같은 공간에 갇힌 들개들이 헐벗은 몸으로 제각각 벽을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이다. 특별히 잔인한 장면도 아닌데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것이 즉물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등장만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구교환의 서대위는 일말의 양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폭발적인 광기를 내뿜는다. 김이병과 그의 묘한 유대 관계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반면 그들과 대립항을 이루는 민정네 가족은 별다른 흥미를 일으키지 않고 묘사도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들 집단이 남성과 여성으로 눈에 띄게 분리된 것처럼 주체적인 여성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설정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민정의 행동 동력은 모성애이다. 결국 여태까지 봐왔던 모성애 여성상에 액션을 끼얹은 것이라는 점에 조금 김이 샌 대목이다. 또한 그들이 혈연만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님에도 강한 유대감을 가진 '가족'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에서는 비슷하게 재난 상황이서 자신의 핏줄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함께 데리고 생존해야하는 주인공 멜로리가 등장한다. 그녀는 두 아이를 차별 없이 boy와 girl로 대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남의 아이를 희생시키는 선택을 할 유혹에 처한다. 그러나 고민 끝에 힘들더라도 모두 함께 살아남기로 하는 선택을 해 진정한 의미의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 이런 인물의 솔직한 내적 갈등이 영화에 드러나며 우리의 공감을 자아낸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두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민정은 대단한 인물이지만 공감할 여지를 많이 주지는 않았다. 




 준도 그렇다. 준은 결말에서 자신이 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민정을 꼭 구하고자 하는데 앞에서 631 부대를 묘사한 만큼의 디테일이 그들의 관계에서도 나타났으면 더 이야기의 가치가 살아났을 것 같다. 처음에 준과 동생이 정석을 구해줄 때 민정이 빠져있다. 이후에도 모녀는 함께하지 않고 준, 유진, (김 노인) / 민정, (정석)과 같이 나누어 행동한다. 이처럼 이들이 함께 행동하는 모습에서 디테일이 발현되지 않은 것이 결말에 대해 공감을 막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들의 유대는 631 부대에서 탈출하며 쌓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는데, 그들이 과거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이상하리만치 없다. 631 부대에는 여성이 없으며 민정과 서대위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퓨리오사가 임모탄을 볼 때만큼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정석의 과거는 오프닝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된 이후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과 비교하면, 민정 가족의 과거는 말그대로 공백에 가깝다. 물론 정남이 당한 잔혹한 행위를 여성과 아이가 당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더 끔찍하게 다가올 것이다. 가족영화를 지향했기 때문에 그러한 장면들을 최대한 검열해나간 것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 유대감에 대한 631 부대에서 묘사된 만큼의 디테일과 켜켜이 쌓였을 치열한 과거의 공백으로 결말의 가치는 신파로만 다가왔다. 




 한편 또한 가지 의문은 처남인 철민이 아내와 아들의 죽음에 대해 정남을 책망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폐쇄와 격리가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책망은 영화에서 계속 반복된다. 보고 싶은 과거는 생략되었고 이해되지 않는 과거는 반복된다니. 그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이와 같이 아쉬움들을 쏟아내기는 했지만 그는 그만큼 영화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연상호 감독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가 가진 상상력과 에너지를 어떤 당위성 때문에 억누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반도>까지 그의 필모 고작 세 편을 본 나의 뇌피셜이지만 인터뷰에서 계속해서 '가족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언급에서 추측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상호 감독의 상상력은 스케일이 크다고 생각한다. 단지 돈을 많이 때려 넣는 스케일이 아니라,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뻗어가는 스케일이다. 때문에 그의 다음 작품은 여전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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