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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Feb 01. 2021

거리두기를 과감히 버린 다큐멘터리

영화 <왕초와 용가리> 리뷰

 영등포구 영등포동 민자역사 고가다리 밑, 누군가는 제멋대로 그곳을 ‘쪽방촌’이라 불렀지만 그곳에 터를 잡은 이들은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안동네. 그 근방을 휘어잡고 있는 안동네의 수호자이자 일명 ‘왕초’로 통하는 상현, 온몸에 용문신을 둘렀지만 언제나 순박한 웃음을 안고 있는 ‘용가리’ 정선, 안동네를 위해 발로 뛰기를 앞장서며 항상 희망을 잃지 않는 진태와 언제 어디서나 멋들어진 노래 자락을 뽐내는 안동네 40년 차 복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안동네에 머무르며 그 안에 이야기를 차곡차곡 채워 나간다. 그러나 이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들은 그곳을 그저 알량한 양심을 채울 수단이나 재개발 대상으로 여길뿐이다. 그럼에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한 안동네 사람들은 오늘도 ‘살기 위해’ 살아간다.

 이창준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데뷔작 <왕초와 용가리>는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을 스쳐 보내지만 번화가의 빛이 만든 그늘에 가리어져 관심받지 못했던 ‘안동네’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냈다. 여기에 김정훈 프로듀서, 한경수 프로듀서와 촬영감독 등 소위 ‘꾼’들의 만남으로 이목을 끌었던 영화는 공간을 기반으로 스며든 삶의 시간들을 탄탄하게 엮어냄과 동시에 안동네 특유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화면으로 빠짐없는 만듦새를 갖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 소식을 계기로 촬영을 결심한 이창준 감독 본인이다. 외부인을 극도로 꺼려하는 안동네 사람들을 위해 이창준 감독은 제 직함을 버리고 스스로 안동네민이 되어 3년을 간 그들의 삶에 직접 녹아들었다. 카메라를 들지 않던 날에도 사람들과 어울렸던 그는 결코 진부한 동정심을 버렸다는 핑계로 제삼자의 위치에서 마냥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과감하게 ‘거리두기’를 버렸는데 그렇게 하고 나서야 카메라 안에 피사체가 아닌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왕초와 용가리>가 한편으로는 이창준 감독이 주인공인 안동네 이야기의 한 페이지가 된 셈이다.
 
 이전에도 소외계층을 향한 관심을 표명하는 다큐멘터리는 많았다. 동정 어린 시선을 배제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태도의 접근 또한 그다지 신선한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편견 없는 시선을 추구했던 많은 이들이 결국 ‘편견 없음’에 사로잡힌 편견에 갇힌 것과 달리 이창준 감독은 안동네민들에게 찍힌 무차별적 낙인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철저히 내부인이 된 이창준 감독의 안동네를 향한 감출 수 없는 온정이 자리한다. 안동네 가득한 사람 내음이 그의 관찰자적 호기심을 진정성 어린 사랑으로 바꾼 것이다.
 

 사실 영화가 지닌 낮은 채도의 화면은 인위적인 따스함보다는 안동네가 겪는 삶의 고단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하는 사람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진득하게 들러붙는 가난에 지친 얼굴, 디디고 선 땅덩어리에서 조차 배척당하는 그들의 삶 자체는 세상적 기준으로 봤을 때 절대 행복이나 사랑이라는 단어와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런 그들에게 외부인이 전하는 하나님의 구원이나 이웃 사랑은 그저 무료 식사나 봉사에 곁들여진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그들을 찾는 손길과 타인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희망의 메시지는 되려 그들 삶에 배긴 비참함만 부각한다. 넘치게 가진 것 중에도 행복이 결핍된 외부세력의 아이러니.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이창준 감독이 안동네에서 찾은 비밀을 누설한다. 안으로부터의 행복. 탈사회를 넘어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지는 그곳에 술 한잔과 사람에서 행복을 찾은 사람들이 모여 있던 것이다. 그들은 기적이나 탈출을 꿈꾸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안착한 둥지에서 인간이 지닌 생의 의지를 이어가며 행복을 누릴 뿐이다. “대한민국 부자동네 다 가봐도 이런 동네 없어!”라고 당당히 외치는 왕초. 영화 <왕초와 용가리>는 사람들에게 쓰인 소외계층이라는 색안경을 벗겨내고 희망이 가진 다른 모습을 조명한다. 그리고는 은연중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보는 당신네들, 지금 진짜 행복하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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