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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Nov 06. 2024

#26. KISS AND TELL

- '폭로'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경험에 대하여

Kiss and tell은 '폭로하다, 누설하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표현이다. 

폭로는 어떤 조직에 속한 한 사람이 내부 사정을 바깥 사회로 알리는 것이다. 폭로는 집단 내부의 부정적인 내용을 바깥으로 알려 조직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숭고한 희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만큼 당연히 숭고한 희생을 한 내부 폭로자에게는 위험과 위협이 따른다. 거의 대부분의 폭로 상황에서는 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발하기에 폭로 이후 덮쳐올 폭풍 같은 보복과 조직으로부터의 배척은 필연적이고, 이는 오롯이 폭로자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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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현시점에는 한 운동 선수사 본인이 속한 운동 협회의 문제점을 과감히 언론으로 폭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선수는 본인이 속한 협회의 수장을 정통으로 직격 하는 내용을 언론에 폭로했는데, 이후 그 운동 협회 차원에서는 그 선수에 대한 지원을 본격적으로 끊는 등 노골적인 불이익을 주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조직 차원에서는 내부 폭로자를 이미 내부 구성원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이고, ‘변절자’의 낙인을 찍어서 내쳐버린 듯했다. 지금 협회가 보이는 태도는 마치 앞으로 후배들에게 비슷한 행동을 했다가는 저 선배처럼 조직에서 버림받는다는 것을 공공연히 보여주며 겁박하고 있는 것만 같다.

다른 한 사건으로는 한 공무원이 정부, 그리고 정권을 상대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 용기 있게 쓴소리를 한 일도 있었다. 국가와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진실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 마음은 초연하고 의연하게만 보인다.
그들의 마음은 대체 어떠할까. 자신의 그 폭로가 잠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보복과 뒷감당이 미래에 다가올지 모르고, 이 고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혹은 적절한 적절한 처분이 이루어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마치 늘 살얼음판을 걷듯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을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꿋꿋이 그 조직의 소속으로 생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말 엄청난 결단력과 정신력이라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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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 30년의 인생을 살아가며 대 여섯 번의 폭로 사건을 직접 대면해 본 적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고교 시절 학칙에 대한 불만과 부조리를 전교에 방송을 한 것이 떠오른다. 방송의 내용은 학교에서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교칙이 불만이고, 그 교칙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을 교장실을 포함해 전교에 방송을 한 적이 있다. 방송을 진행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치 내가 세상의 부조리를 파고드는 저널리즘 기자가 된 듯 의연했지만 방송이 나간 이후에는 그저 '큰 사고를 쳐버렸다.'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는 완전히 한 바탕 난리가 났고, 교장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여타 다른 선생님에게 줄줄이 소활되어 혼이 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정말 부끄러웠다. 사실 내 욕심에 비롯해 폭로와 비슷한 사고를 처벼린 것이다. 아직 자아가 미숙한 학생의 신분이었기에 선생님들께서는 정말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셨으나 사태가 어느 정도 잊어질 때까지는 정말 심장이 1000개로 조각이 난 듯 불안에 떨며 지냈어야 했다. 

학교에서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싶었던 철없는 욕심에 조직에 반기를 든 것이 내 삶의 첫 번째 폭로 사건이다.

다승적인 차원의 폭로와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내부 사정을 전체에게 공론화시켜 본 인생 최초의 경험이었고 그 폭로에 대한 후폭풍과 부담이 엄청나다는 것을 학창 시절에 얕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잠시마나 꿈꾸었던 저널리스트의 꿈은 고이 접게 되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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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내가 폭로의 대상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잠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우리 동아리는 기수에 대한 서열화가 아주 강한 조직이었는데, 당시 나는 우리 기수의 장을 맡았다. 극단 활동을 이어가던 중 당시 선배들이 동기들과의 MT를 추진해 보라고 권유해 주셨고 그렇게 MT를 총대 매고 기획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내 동기들은 이 MT에 시큰둥한 반응이었고 나는 그 동기들을 한 명 한 명 MT에 가자며 설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이 상황에 불만을 가진 한 동기가 선배들 앞에서 불만 토로와 함께 내 험담을 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었다. 너무 당황스럽기도 했고 또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 상황 앞에 나타날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그들의 시선에서 법어난 곳에서 한참이나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내 동기의 폭로를 들은 나는 도저히 그 단체에 계속 몸을 담기엔 너무나도 힘들어 곧 그 단체를 떠나고야 말았다. 타인에게 내 험담을 하고 있었던 내 동기의 모습과 잠자코 듣고 있던 선배들의 모습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기억 속 큰 상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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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폭로를 옆에서 지켜본 경험도 있다. 군대 시절, 우리 중대의 중대장님은 서로 대화하기가 정말 힘든 사람이었다. 기분에 따라 부하들을 대했고, 가끔은 상식적이지 않은 요구도 스스럼없이 하곤 했다. 그런 와중에 내 밑으로 들어온 후임 중 한 명은 유독 군대 생활에 대해서 불평이 많았었다. 평소에도 불만이 많은 성향에 군대라는 조직에서 불합리한 요구를 받을 때면 그 친구는 더욱 힘들어했었다. 당시 사령부 Intranet 상 '사령관과의 대화'라며 부대의 사령관에게 직통으로 건의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그 후임이 우리 중대장 님의 행동과 자신이 받았던 불합리한 지시에 대해 기재해서 사령관 님에게 보내버렸던 사건이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 후임이 사령관 님에게 투고를 할 것이라는 그 후임의 말을 듣고 당연히 우스갯소리인 줄 알고, 나의 이야기도 실으라며 아무 생각 없이 나와 중대장 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몇 개 웃자고 이야기해 줬는데 그 친구가 나의 내용도 같이 실어 실제로 투서를 해버린 것이었다. Intranet 투서라는 것이 손을 떠나면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후에 실제로 투서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고 나는 중대장 님을 제일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행정병이었기에 이후 중대장 님이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지에 바로 옆에서 생생히 지켜보았다. 거국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폭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여파가 상당히 커다랬다. 우리 중대장 님은 몇 번의 사령관의 문책 끝에 결국 쫓겨나듯 타 부대로 전출하게 되었다. 말 한마디, 글 한 줄의 힘을 절실히 느낀 경험이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 못 했다가 수 날을 불안에 떨거나 갖은 수모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복합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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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머리가 점점 굵어 가면서 나는 점점 더 비굴해져 가는 것만 같다. 그저 불안에 떠는 것이 싫어서, 혹은 한 사람의 앞 길을 막아버리는 것만 같아서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 있더라고 그냥 덮어 놓고서 쉬쉬하고 물러나 버린다. 폭로의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누군가의 상처가 꼭 남는다. 상처 주기 싫고, 상처받기 싫은 내 마음이 점점 비굴해지는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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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폭로 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것들이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을 보니 폭로가 주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큰 것 같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잘 알기에 세상 많은 내부 폭로자들이 모두 대단하게 느껴진다. 폭로를 하는 순간 이는 늘 꼬리표처럼 그를 맴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고, 세상의 환부를 과감히 잘라내는 그 모습이 대단하다 못해 숭고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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