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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건강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 단단한 일상 그리고 알아차림

친한 친구가 떠났다. 거리두기가 낮아졌다 높아질쯤됐다 낮아지다 높아지는 혼돈의 시국 속, 가족과 함께 여기보다는 조금 더 안전한 타국을 향해! (부디 친구의 여행이 아름답기를)

나의 예쁜 맥시멀리스트 친구는 그간 살던 집을 정리하며 하나 하나 정성껏 사들인 '아가'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하고싶다며 아끼던 명품 가방과 고장난 로봇 청소기, 냉장고에 남은 수북한 파 더미를 건넸다. 그리고 여럿의 시인이 쓴 <나의 생활 건강>이라는 책을 건네며 '이 책은 짧고 강렬한 단어와 문장으로 글을 쓰던 시인들이 산문을 쓰려다 보니 어찌할 줄 모르며 쓴  글 같아'라고 말했다. 학부 시절 들은 것처럼 매체는 그 자체로 메시지인걸까, 얼추 맞는 말이었다. 문장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이들이 기승전결의 프레임을 맞춰가며 또박 또박 써내려가는 글들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한 아리송한 제3의 문학이 되었다.


생활 건강이라 함은 단지 육체적인 건강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기도 하고, 건강한 마음에 건강한 신체가 깃들기도 한다. (병원에 갔을때 의사 선생님이 진단할 때 '스트레스 줄이고 푹 쉬세요'라는 말을 안 들어본 이들도 있으려나) 수북한 시인들의 생활 건강 페이지를 읽고 나니, 생활 건강은 단단한 일상과 그것에서의 만족감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든다. 단단함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는 데서 불러일으켜지는 듯 한데-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가 없어지거나, 혹은 이벤트성으로 잠깐의 '좋아함'이 불러일으켜지는것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기 마련- 여럿 시인들의 글 속에서 그들은 근사한 여가를 통해 지리한 일상에 억지로 이벤트를 심는 것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 묻혀져있는 좋아하는 행동과 순간, 기억, 혹은 오브제들을 알아 차린다.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리추얼을 찾아내는 이들의 글은 온통 수사학을 가미해댄 거창한 자기계발서보다 비교할 수 없이 미지근하지만 더없이 인간적이고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대한 본질적 솔루션에 가깝다.


최근 스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면 특이한 한가지씩을 꼭 한다. 불멍, 다이빙, 막걸리빚기, 베이킹 뭐 기타 등등의 덕질을 통해 평소의 스트레스를 풀라는 듯 보이는 '취미 강요하는 사회'를 사는 우리가('윽, 나는 취미가 없는데 어떡하지 빨리 찾아야해'병을 겪는 우리가) 그저 아침에 일어나 벌컥벌컥 마시는 시원한 매실차나, 시원하게 배를 내민 채 잠든 강아지를 흐뭇하게 관찰하는 것이나, 저녁 퇴근 후에 화장실에서 발을 씻는 짜릿한 순간 등 자신이 만족하는 일상 속속의 리츄얼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어쩌면 더 단단한 생활건강을 만들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통해 거창한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유영하듯 흘러가되 자신이 가장 편하게 흘러갈 수 있는 영법을 찾는 것이다.


+ 덧붙이면, 시인들은 정말 하나같이 자유롭고 새롭고 섹시하다. 즐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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