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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평범한 결혼 생활>

평범한 게 제일 어려운 거 맞다. 결혼 생활도 어렵다.

흔들리는 사랑의 안전한 종착역, 결혼.


어제. 오랜만에 집 근처로 놀러온 친구와 함께 닭과 햄버거를 시켜 먹으며 집에서 한동안 수다를 떨어댔다. 결혼과 연애 이야기를 잔뜩 해대다가 잠시 들른 남자친구에게 "00씨, 지금 저와 00씨가 만나고 있는 건 △△이 남자친구여서야. 언제든 헤어질수 있으니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란다. 다소 직설적이지만 노빠꾸 직진녀인 내 친구의 말이 아주 틀린말은 아니다. 햄버거를 베어물며 덧붙인다. "그거 알아? 나 남편에게도 이런 얘기 한 적 있어. 가족이 왜 영원할거라고 생각하지? 아니야. 가족도 언제든 해체되거나 혹은 바뀔 수 있다는거지"


흔들리는 사랑의 안전한 종착역, 결혼?
종착역까지 닿지 못한 무수한 연애들은 애틋한 불운의 과거가 되어버리는건가. (웃기다!) 
결혼이란 '사회가 권장하는 야트막하고 얇은 울타리가 내 삶에 필요하겠구나' 하는 이들이 현재 만나는 '꽤 나쁘지 않은' 상대와 함께 2인 3각의 길로 나서는 과정이다. 사랑과의 인과관계로 이를 결부하는것은 10% 맞고, 90% 틀리다. 과거건 현재건 모든 사랑과 사랑의 상대는 빛나기 마련이었고, 반려자를 찾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정'을 꾸리기 위해 준비된 내가, 가족으로서 함께할만한  지금의 사랑을 하나의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과정이다. 


최근 나의 동네 근처로 이사온 남자 친구와 종종 오랫동안 시간을 함께 보낸다. 20평이 좀 못 되는 나의 굴 속에서 그는 황야의 무법자처럼 내가 세워놓은 규칙을 종종 어겨댄다. 접시를 말릴 땐 이렇게 수평으로 쌓아놓지 말고 세로로 차분하게 세워놔야 물이 빠진다, 바닥이 더럽거든 청소기를 먼저 돌리고 물티슈로 닦아라,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면 보일러좀 틀어놔라(바닥에 물이 마르도록) 등등. 이 곳은 나 혼자 사는것이 실재하는 내 공간의 룰인데, 왜 외부자인 네 '틀린' 잣대로 살림을 하느냐는 불만 섞인 마음이겠다. 문득 생각했다. 결혼을 하면 두 사람의 다른 잣대를 공간의 룰로 융합해내고, 나와 맞지 않는 룰도 분명 개중 존재할텐데 와 이거 어떻게 같이사나. 

남자친구는 발칙하게도 내가 생각에 빠진동안 그릇들을 단정하게 세워놓고 본인이 전부인 자신의 굴로 도망갔다. 응. 룰의 강요가 일으켜내는 결과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남편의 양말을 아무렇지 않게(나쁜 마음 없이) 뒤집어 세탁기에 넣어놓을 수 있는 티키타카와 오늘의 요리사인 내 식사가 끝나면 묻지 않고 설거지를 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무언의 방정식들. 중세의 유럽 열강국들이 아프리카 땅을 나누며 선을 딱딱그어서 이상한 국경선을 만들어 둔 것처럼(사족인데, 국경이 있다해도 아프리카는 사바나나 사막 등이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넓게 퍼져있기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함) 결혼의 룰이라며 세탁은 너! 걸레질은 나! 설거지는 너! 요리는 나! 이런 식으로 강렬한 2pt의 국경선을 만드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싶다. 관계란 점토같이 변하는 물성인데,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배려하려, 존중하려 다가가는가'에서 모양이 만들어진다. 나는 결혼한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결혼 관계 속에서 헤엄치며 사는가?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 생활>은 비단 평범한 결혼 생활의 단면들에 대해 쓴 책은 아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 결혼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이 어떻게 삶의 변화와 사고의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그 변화를 유영하고 겪은 이가 자신이 헤엄치는 물과 영법에 대해 말한다. 절대적으로 좋은 영법과 1급 청정수는 없다는 상대적인 시선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맥락 속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부부관계나 롤모델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는 시선이다. 예로 최수종-하희라부부의 경우 대표 잉꼬부부라고 하는데, 하희라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실 여럿이 잘 모른다. 연예계 대표 이벤트가이인 최수종씨가 하희라씨에게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자주 보여주고 이것이 우리 눈에는 <잉꼬부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버린 탓이다. 만일 하희라씨가 이벤트에 질겁하는 사람이었다면 이것이 과연 좋은 관계였을까? 그냥 둘의 맥락에 어색하지 않게 합을 맞춰가며 잘 살아내는 모두가 잉꼬부부고 잘 한 결혼인 것이 아닐까. 


결론은, 내 선택에 책임을 진다, 혹은, 널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난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어! 라는 사뭇 비장한 목적 하의 뚝딱이같은 결혼 생활이나, 너/나 갈라두고 딱딱 선그어서 계약서같이 만드는 생활보다도

엄마아빠들이 흔히 얘기하는 '물 흐르듯 살아라'처럼 좋아하는 이와 꽤 나쁘지 않은 생활을 헤엄치듯 흐르면서 관계 속에 함께하는 순간과 시간들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이 결혼 생활의 순리가 아닐까 싶은거다.


무엇인가의 당위나 절대성을 진지하게 사유하기 시작하면 급 피로가 몰리고 피가 머리로 쏠려 편두통이 재발할 것이다. 그럴 때는 운동화를 신고 동네로 산책을 나가 맛있는 스콘을 사 먹는 것이 현명하겠다. 적당한 때가 오면 부부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각잡고 사색하지 않아도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어쩌다 한 번씩 알려줄테니까. 마치 이제 알았냐는듯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툭 치면서.

혹은 진심이나 진실은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진심이나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마지막까지 따라가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근데, 임경선 작가는 왜 '부부 생활'이 아니라 '결혼 생활'이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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