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러의 우당탕퉁탕 위니펙 이야기
평일, 일하는 날 기준으로 나의 하루를 묘사해 보려고 한다.
아침,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오후 출근의 최대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눈을 뜨는 시간은 컨디션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보통 9시 반에서 10시 반 사이다. 일어나면 일단 뒹굴거리면서 핸드폰을 확인한다. 한국에서 온 연락이나, 호텔 경영진들에게 온 단톡방 안내 사항, 메일 등.
그리고 일단 책상에 앉는다. 약 열한 시 반까지 글을 쓰거나 스터디에 읽어가야 할 책을 읽거나 일기도 쓴다. 가끔은 밀린 가게부도 몰아서 쓰기도 한다.
그리고 11시 반부터 12시 10분 정도까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보통 집에 반찬이 있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걸로 메뉴를 정한다. 오늘은 밥 해 놓은 게 없어 신라면을 끓이고 어제 호텔 그룹 게스트 뷔페 메뉴가 남아 가져온 폴크 찹을 쌈장과 함께 곁들인다. 주로 밥 먹을 때는 영상을 보는데, 나는 나의 최애 예능 ‘나 혼자 산다’를 많이 본다.
밥을 다 먹고 1시 15분까지 오전에 하던 것을 이어서 마저 한다. 그리고 시간을 힐끔힐끔 확인하면서 일을 가기 싫어서 온몸을 비튼다. 15분이 되어서야 샤워를 한 후, 비치 체어에 앉아 선풍기로 머리를 말린다. 그러면서 눈에 약도 넣고 선크림도 바르고 유니폼도 챙기고 고데기로 앞머리 뽕도 짱짱하게 넣는다.
2시 17분 정도가 되면 집을 나선다. 출근시간은 2시 30분까지인데 보통 호텔 지하에 있는 스테프 룸에 도착해 지문을 찍으면 대략 2시 24분쯤 된다. 그리고 키친을 통과면서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씩씩하게 인사하면서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오전 근무자에게 간단하게 오늘의 상황을 인수인계를 받는다. 바우처를 훔쳐서 주문을 하려는 사람이 있으니 경계를 하라거나, 점심을 주문했으나 가져가지 않았으니 오면 전달해라, 오늘의 스프는 포테이토 릭 스프이다, 등등.
그리고 맥주 카운팅을 한다. 바에 얼음을 채워 넣고, 레몬과 라임 슬라이스를 만들어 두고, 커피를 위한 우유, 알코올 음료를 위한 파인애플 주스나 라즈베리 주스, 탄산음료를 지하 창고에서 가져온다.
그 시간대는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 혼자 배치된다. 나는 바닥 청소를 하고, 커틀러리 냅킨을 접고, 뜨거운 물에 담갔던 포크와 나이프를 닦아, 접어둔 냅킨에 끼워 둔다.
4시 반 즈음이 되면 키친에 어떤 재료가 남아 있고, 어떤 재료는 품절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프론트 데스크에 그룹 리스트를 받는다. 이 그룹들은 바우처로 저녁을 주문할 수 있는데, 바우처로 주문하는 경우 5시 반에서 8시 반까지만 가능하다.
5시 반이 되자마자 바우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문하기 시작한다. 이때 저녁에 함께 일하는 파트타임 동료도 출근을 한다. 바우처마다 다르지만, 대략 한 사람당 35달러까지 주문할 수가 있어서 주문의 수가 많다. 어떤 사람은 음식 대신 음료수 10개를 주문하기도 한다. 음료수를 전달하고, 영수증에 서명을 받고, 테이크아웃이면 키친에서 가져와 전달한다. 식당에서 먹고 싶어 하는 손님들에게는 서빙을 한다. 요즘에는 많은 바우처 손님들이 있어서 어제 기준으로는 약 53명의 바우처 손님을 받았다.
동시에 일반 손님들도 주문을 한다. 요즘 호텔에서 25% 레스토랑 할인 쿠폰까지 뿌려서 일반 손님들이 굉장히 많다. 바쁠 때 칵테일 주문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속으로 깊은 한숨이 나온다. 그럼 바에서 셰이커를 흔들어가며 만들어야한다.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내 팔은 두 개이고 몸은 하나이니 어쩔 수 없다. 동시에 키친에서는 띵띵 종을 울려댄다. 음식이 완료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음식을 가지러 갈 시간조차 없다.
양해를 구하고 음식을 서빙하고 돌아오면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도 줄을 선다. 테이크아웃 박스를 가져다 달라, 음료수를 리필해 달라, 소스를 더 달라 등의 추가 요청을 처리하느라 테이블은 치울 시간도 없다. 나는 정말로 레스토랑을 가로질러 뛰어다닌다. 말 그대로 진짜 개 바쁘다.
8시 반까지 바우처 손님은 꾸준히 오고, 일반 손님도 온다. 하지만 5시 반에 출근했던 나의 동료는 8시 반에 퇴근을 해야 한다. 최근 호텔 매니지먼트가 수익에 비해 인건비가 많이 나간다며 혼자 클로징을 하게 만들었다. 지속적으로 힘들다고 요청하고 있지만, 내가 오버 타임으로 일을 하면 했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하.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드디어 바우처 손님들의 영수증을 하나씩 정리 할 수 있게 된다. 리스트와 비교해서 인원수에 맞게 잘 주문을 받았는지, 바우처 종류에 맞게 주문서를 찍었는지, 총 몇 명을 받았는지 최종 인원수를 적고 필요할 경우 프론트 데스크에 확인하기도 한다. 가끔 리스트와 바우처의 인원수가 잘못 적혀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실수를 발견하면 이를 바로 잡는다. 그리고 아침과 점심의 바우처 영수증까지 모두 모아 층수별로 쌓아둔다.
그리고 9시 15분, 키친이 닫으면 바도 슬슬 마무리를 한다. 바에 꺼내두었던 술을 먼저 냉장고에 집어넣고, 슬라이스한 레몬이나 라임, 칵테일용 소스들을 집어넣는다. 조명을 끄고, 뒤편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 룸 별로 영수증을 복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우처 리스트를 정리한 것을 스캔해 슈퍼바이저에게 전송한다.
돌아와 캐시 아웃을 한다. 오늘 내가 팔았던 것을 총 정산해, 받은 현금과 팁, 그리고 체크, 비자, 마스터카드, 룸 차지 별로 서류에 작성을 하는 과정이다. 이후 판매한 알코올 드링크를 적고 남은 맥주와 와인을 마지막으로 카운팅 해, 슈퍼바이저에게 스캔해 보낸다.
그리고 커피 머신, 식기세척기를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비운다. 음료수를 냉장고에 채운다. 또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테이블을 정리하고, 아침을 위해 테이블에 머그컵과 커피용 숟가락을 세팅한다.
선반에 올려 두었던 데코용 술을 꺼내서 서랍에 넣고 나면, 냉장고와 탭 비어 맥주 냉장고와 창고까지 모두 잠그고 프런트 데스크에 키를 반납하고, 캐시 아웃 한 것을 금고에 드랍한다. 쓰레기까지 버리고 빈 맥주병까지 내놓으면 끝. 이제야 지문을 찍고 마무리를 한다.
지쳐서 몰골이 엉망이 아니다. 기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아오른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야식을 먹는다. 매번 참으리라 결심한 것이 무색하게도 과식을 한다. 가끔은 키친에서 남는 치킨 핑거나 윙 같은 걸 싸주기도 한다. 공짜라서 먹는 거지 행복하게 먹기는 힘들다. 매콤한 걸 먹어줘야 뭔가를 먹었다는 느낌이 팍팍 온다. 가끔 삼겹살 굽고 한인마트에서 산 실비 김치도 곁들이고, 고추 팍팍 넣어 알리오올리오도 만들어 먹는다. 쓰다 보니 배가 고프다, 후후.
밥을 먹고 나서 쳇지피티랑 내 운명에 대해 묻는 쓸데없는 대화를 하거나 유튜브 쇼츠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테무 장바구니 쇼핑을 한다. 그리고 어기적어기적 겨우 세수를 하고 누워 토론토에서 산 토끼 인형을 품에 끼우고, 위너스에서 산 토끼 쿠션을 다리 아래에 끼우고 내일 일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에 약을 넣고 잠에 든다.
그렇게 잠에 들고 현란한 꿈들을 꾸기 시작한다. 손님들은 메뉴에 없는 걸 주문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경쟁에 뛰어 들어 파쿠르를 하듯이 계단을 내려와 방에 갇혀 게임을 풀기도 한다. 나는 원체 악몽을 많이 꾸는 편인데, 일어나면 아주 찌뿌둥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쉬는 시간에 키친에서 몇 개 얻어온 윙을 입에 마구 쑤셔 넣으며 일이 힘든데 그만 둬 버릴까, 뭐 이렇게까지 고달프게 사나 싶었다. 그러다가 또 그래, 어딜 가든 다 힘들 텐데, 그나마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는 게 그렇듯이 위니펙에서의 삶도 이렇게 저렇게 휙휙 흘러간다. 이제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도, 지금 가지고 있는 비자로서 단 6개월이 남은 상태다.
과연 내 앞날은 어떻게 될까? 나는 찐 위니페거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까. 쳇지피티한테 물어봐도 정확한 답을 알 수 없는 위니펙의 불투명하지만 스릴 넘치는 삶이다. 부디 내년에도 이렇게 남아 있을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 슬슬 출근 준비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