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1
2020년을 맞이하며 의미 있는 시작을 고민하다가 한라산에서 일출을 보기로 결정했다.
한라산 야간 산행은 1년에 딱 하루 1월 1일에만 허용된다는 점이 나에게 더욱 동기부여가 됐다.
한라산은 고도가 높고 겨울산은 몹시 춥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등산화, 핫팩, 아이젠, 스패츠, 보온병, 방한 내의, 랜턴을 미리 준비했는데 랜턴을 열어보니 이게 웬걸
배터리가 없었다. 특수한 배터리여서 결국 구하지 못한 채 제주로 향했다.
제주 여행에 있어서 필수인 렌트를 마치고 고기국수로 유명한 자매국수에서 첫 식사!
담백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예전엔 면이 흰색이었는데 노랭이면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한라산 등반객 전용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2020년을 맞이했다.
아 이제 32살이라니.. 31살이 될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인들과 서로 신년 축하 문자를 주고받던 도중 이 짤을 수십 번 정도 받았다
-_-;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입산 시간이 오전 1시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출발지점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셔틀버스 때문에 이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냥 편하게 쉴 수 있는
숙소를 예약하고 가는 게 나았을 것 같았다.
나중에 또 한라산을 오르게 된다면 그때는 편히 쉴 수 있는 숙소를 고를 것이다.
입산하기 전에 이 앞을 서성이다가 나처럼 혼자 온 등산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해서 서로 한 장씩 찍었다.
이러고 바로 입산했다.
한라산은 높고 큰 산인만큼 등산로도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무난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성판악을 선택했다.
일반적인 산행으로는 정상까지 4시간 30분이 걸린다고 가이드에 나와있지만
야간산행에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등산객이 몰리니 병목지역에서 가다 서다 반복하며
정상에 오르기까지 7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진달래 대피소까지 힘겹게 올라와서 잠시 쉬며 컵라면을 먹고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 듯 많이 보였다.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담길 만큼 별이 잘 보여서 이 여정의 피로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야간 산행의 묘미가 이런 게 아닐까?
또다시 한참을 걷다가 잠시 숨을 돌리려 뒤를 돌아보니 눈꽃이 피어 있는 나무와 동이 터가는 하늘이 보였다.
잠시 감상에 빠졌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더 이상 조명이 필요 없을 무렵 운해(雲海) 끄트머리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의 바다라니 정말 멋있었다.
일출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감상하고 있었는데 다른 등반객들도 이 자리가 명당인걸 알고
하나둘씩 모였다.
여기에 오르기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의 하루가 생각날 만큼 힘들었지만
그 피로를 다 덮을 만큼 이 광경이 너무 좋았다.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 구름이 부각되는 모습이 참 멋졌다.
이렇게 올라오고 내려가기까지 11시간이나 걸렸던 산행이었지만 큰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어서
아주 좋았다.
아마 몇 년 내로 또 오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