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삼삼 Apr 05. 2023

포도 음료로 케이크를 만들었더니

바른 용법에 대하여

 혹시, 포도 음료 봉X을 아시나요. 마시다 보면 포도 알갱이가 톡톡 씹히는 추억의 음료죠. 코코넛 음료 코코X, 오렌지 음료 쌕X과 함께 달달한 과일 알갱이 음료의 3대산맥(?)입니다. 얼마 전 제가 신랑 생일 케이크를 만들려고 마트에 갔다가, 뚱뚱한 캔(340ml)으로 나온  추억의 주인공을 발견했습니다. 보자마자 문득 '이걸로 케이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비록 인터넷이나 유튜브엔 봉X으로 케이크를 만들어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기존 레시피들을 살짝만 바꾸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아. 청포도를 아예 안 사진 않았습니다. 명색이 청포도 케이크인데, 실제 과일이 없으면 너무 대놓고 봉X 케이크가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마침 파격 세일 중인 샤인머스캣을 한송이 샀습니다. '그럼 봉X이 왜 필요해?'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케이크에 바를 생크림도 그냥 생크림이 아니라 청포도맛 생크림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러려면 청포도 시럽과 퓨레가 필요했습니다. 정석대로 만들자면, 청포도의 즙을 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건 아기 돌보 베이킹 해야하는 제겐, 하세월의 도전 될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이킹 단계를 하나라도 줄여보자는 마음으로 봉X을 1캔 샀지요.


 우선, 케이크 시트는 노오븐 밥솥 카스테라 레시피로 만들었습니다. 집에 오븐도 있긴 한데, 밥솥으로 만드는 게 더 간편하더라고요. 케이크 시트 만들었을 땐 유튜버 '곰쓰 쉬운 베이킹'님의 레시피를 참고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여러 카스테라 레시피를 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레시피가 가장 쉽고 간편했거든요. 재료는 이게 전부입니다. 박력분 100g과 베이킹파우더 2g, 설탕 120g, 계란 4개, 따뜻한 우유 25g, 식용유나 녹인 버터 30g이요.


 

재료는 여기에다 식용유 30g만 추가하면 끝이에요. 간단하죠? by 아삼삼

 

 일단 계란은 미리 꺼내서 찬기를 없앤 후, 물기가 없는 볼 2개에다 노른자와 흰자를 각각 분리해서 담았습니다. 이어 흰자부터 휘핑기로 섞는데, 중간에 3번으로 나눠서 설탕 절반 분량 (60g)중에서 20g씩 털어 넣으며 섞어줬어요. (이걸 베이킹에선 '머랭 치기'라고 하더군요. 달걀 흰자에 설탕을 넣어서 단단한 상태가 될 때까지 거품을 내는 거요.) 그 뒤 남은 설탕 (60g)은 노른자가 담긴 볼에다 쏟아붓고 이것도 밝은 노란색이 될 때까지 휘핑기로 섞어줬습니다.


머랭 칠 때, 왼쪽 사진처럼 뿔이 휠 정도로 쳐줘야 합니다. 노른자는 오른쪽 사진처럼 밝은 노란색이 될 때까지 쳐주시면 돼요. by 아삼삼


 이렇게 섞은 노른자는 머랭을 친 흰자와 합쳐야 하는데요. 거품이 꺼지지 않게 조심 조심 섞는 게 포인트입니다. 그 뒤 반죽의 일부를 우유와 식용유를 담은 별도의 종지에다 덜어서 잘 섞은 후, 다시 그 조합을 반죽에다 들이부었습니다. (참고로 유지류는 반죽의 거품을 쉽게 꺼트리기 때문에 빠르게, 적은 횟수로 섞어주는 게 좋아요.) 이렇게 만들어진 반죽은, 기름을 바른 밥솥에다가 넣고 '만능찜' 기능으로 40분 조리 버튼만 눌러줬습니다. 케이크 시트 만들기는 이게 끝이에요.

 

완성된 케이크 시트이자 카스테라. 그냥 이것만 먹어도 맛있어요! by 아삼삼

 

 이렇게 완성된 케이크 시트는 가로로 3등분을 해둔 뒤 잠시 옆에다 두고, 청포도 퓨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은 유튜버 '자도르'님의 레시피를 참고했습니다. 참고로, 그 분이 소개한 망고 케이크였는데, 저는 포로 바꿔서 만들어봤습니다. 그래서 재료포도 음료 봉X 1캔과 (윗부분 장식과 중간에 깔기 위한) 샤인머스캣 30알, 설탕 55g, 생크림 350g을 준비했습니다. (참고로, 퓨레 말고 시럽도 따로 필요한데, 봉X은 그 자체가 시럽처럼 설탕이 들어있는 음료라,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음료를 그대로 썼어요. 혹시 단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설탕을 더 넣으시면 됩니다.)

 

 청포도 퓨레는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봉X 1캔의 3분의 1, 즉 110ml 정도를 설탕 30g과 함께 작은 냄비에 넣고 10~15분 정도 약불에 졸여줬어요. 그러면 절반 분량이 증발해서, 약 60g의 퓨레가 남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하죠?


퓨레를 끓이는 중. 갈색 설탕을 써서 그런 건데, 얼핏 보기엔 냄비 태우기 1초 전 같네요. by 아삼삼

 

 이렇게 퓨레를 식히는 동안, 저는 마지막 과업이라 할 수 있는 생크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생크림은 겉부분 장식용(아이싱용)과 중간에 깔기 위한 샌딩용으로 나눠서 만드는데요. 겉부분용 생크림은 휘핑크림 150g에다가 설탕 11g을 넣고 휘핑기로 섞되, 나중에 휘핑기를 들어올릴 때 크림이 떨어지지 않고 뿔이  때까지만 섞어줬습니다. 그리고 케이크 중간에 깔기 위한 청포도 생크림은 휘핑크림 200g에다가 설탕 14g을 넣고 휘핑기로 잘 섞은 후에, 아까 만들어서 식혀둔 청포도 퓨레를 넣어 저어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청포도 생크림은 겉부분용 생크림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요. 그래서 휘핑기로 섞을 땐 다소 무게감이 느껴지는 단단한 질감 상태가 됐을 때 휘핑을 멈췄습니다.


 이렇게 케이크 시트와 생크림까지 완성되니, 이제 바를 일만 남았더라고요. 케이크 시트를 하나씩 쌓아올리면서 생크림을 채워 바르기만 하면 되는 단계였습니다. 먼저 케이크 시트 하나를 돌림판 위에 놓고 봉X 시럽을 (그냥 그 음료 자체를) 요리붓으로 슬슬 발라준 뒤, 그 위에 청포도 생크림을 넉넉히 끼얹었습니다. 그리고는 절반으로 가른 샤인머스캣을 취향껏 널어놨어요. 이렇게 첫번째 시트가 채워진 다음에 두번째, 세번째 시트도 같은 방법으로 쭉 채우며 쌓았습니다. 그 후 케이크 맨 윗 부분은, 겉부분에 바를 용도로 만들어둔 생크림으로, 보기좋게 후루룩 펴발랐습니다.


 사실 '보기좋게 후루룩', 말은 쉬운데요. 베이킹 초짜가 실제로 펴바르는데는 1시간 걸렸습니다. 흑흑. 툭하면 스패출러를 잡은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스패출러의 방향도 틀어지더라고요. 그러면, 마치 물레 돌리다가 힘 조절 잘못하면 엉망진창이 되는 것처럼, 애써 발라놓은 생크림들도 죄다 우그러지더라고요. 유튜브에 왜 그렇게 아이싱 영상이 많은지 알게 됐습니다... 아이씽. (?)


 그렇게 아이싱 작업과 아옹다옹하는 동안 얼핏 사람이 먹어도 될 케이크의 형상이 갖춰졌습니다. 그러자 저는 다렸다는 듯, 애증의 존재가 된 스패출러를 싱크대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렇다고 케이크를 내동댕이칠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는 조금 남은 생크림을 별깍지를 낀 짤주머니에 살뜰히 모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름 진지하게 한땀한땀, 상투과자 모양의 생크림을 조금씩 짜냈습니다. 케이크 맨 위에는 네모 모양으로 생크림을 배열했어요. 그리고 그 네모 안에는 실한 샤인머스캣 아홉 알을 모심기하듯 콕콕 심었습니다. 드디어, 성격을 버려가며 만든 청포도 케이크가 완성된 순간이었지요.


성격을 버려가며 만든 케이크. 자고로 케이크는 사먹는 게 좋아요. by 아삼삼


 가장 중요한 맛은 어땠을까요? 먼저, 케이크의 주인공이자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은 케이크를 맛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낮에 회사 팀원들이랑 아티X 얼그레이 케이크를 먹었거든? 근데 그 케이크랑 비슷할 정도로 맛있네?" 옆에서 같이 케이크를 맛보시던, 요리 고수 시어머니도 인정하셨습니다. "어, 맛있네~ 맛있게 잘 만들었어." 후훗. 대성공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차례였습니다. 확신에 찬 기쁨에, 크게 한 입 떠먹어봤어요. 응? 분명 청포도 케이크는 맞는데, 뭔가 허전했습니다. 엄청 달콤하고 부드럽고 맛있긴 한데... 제가 넣었던 치트키의 맛은 온데간데 없고 사라졌습니다. 사실 청포도 생크림만 따로 맛봤을 때는 봉X의 살짝 새콤하고 향긋한 풍미가 느껴졌는데, 탱글탱글 샤인머스캣이 곳곳에 포진하다보니 그 진짜 과육의 단맛에 묻혀서 쭈구리가 된 것이었죠. 제가 친히 설탕으로 버물버물하고 졸이기까지 해줬건만, 진짜 과일의 강렬한 풍미를 따라갈 수 없어 생크림 어드메에 콕 들어가 숨어버린 겁니다.


 덕분에 전 깨달았습니다. 생과일을 넣어서 케이크를 만들 거라면, 굳이 과일 음료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왜 진작 몰랐을까요.) 그리고 인터넷에 레시피가 안 나온다는 건, 다 이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시도했다가 망했거나, 아니면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란 걸요. (이런 현명한 분들 같으니.) 그러니 여러분도 청포도 케이크를 만들고 싶으시다면, 그냥 맛있는 청포도를 넉넉히 사세요. 그래도 정 봉X을 사고 싶으시다면, 베이킹하다가 목 축이실 때 쓰세요. 원래 베이킹용이 아니라 드링킹용이니까요.

 

바른 용도를 되찾은 포도 음료. 왼쪽은 내가 마신 봉X, 오른쪽은 쪼꼬미 아들이 마신 샤인머스캣 주스. by 아삼삼

 


 

 



※ 레시피 참고 1 : 노오븐 밥솥 카스테라 만들기 (by 곰쓰 쉬운 베이킹)

https://youtu.be/ORhHnfte18w


레시피 참고 2 : 생크림 케이크 아이싱 하는 방법 - 망고 케이크 만들기 (by 자도르)

https://youtu.be/9ocDnVDWhyY



매거진의 이전글 만능 김치 같은 시 활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