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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rithink Mar 16. 2023

스포츠처럼 일하기

원 팀(One Team)이 되기 위한 마인드셋

#1

달리기에서 바통 터치를 할 때, 첫 주자를 기다리는 두 번째 주자가 같은 마음으로 뛸 수 있는 이유는 첫 주자가 출발해서 한 바퀴를 돌아 땀을 뻘뻘 흘리며 번뜩이는 눈빛으로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감정 때문일 것이다.

 
#2

한창 화제가 되었던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출전한 팀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얼굴에 같은 모양의 투지가 서려있다. 서로 친하든, 안 친하든. 그들의 직업이 아나운서이든, 모델이든, 개그우먼이든. 그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스포츠 예능이라는 정의가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그들은 축구에 진심이다. 경기에서 이기면 팀 모두가 얼굴에 빛을 내며 기뻐한다. 반면 경기에서 질 때면,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엉엉 운다. 그렇게 분하다고.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때 흠칫 놀랐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의 패배였고, 따뜻한 팀워크로 보였기 때문이다.


#3

뒤늦게 본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내가 강백호라도 된 듯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극장 안의 관객이 하나가 된 듯 그들과 함께 1분 1초를 뛰었다. 선수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고, 각기 포지션과 기질도 모두 달랐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동기와 목적지가 농구라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순수한 열정은 온 사람들에게 땀처럼 스며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서태웅의 패스. 천재성을 타고났으나 자기 자신만 아는 그가 팀 플레이 전략을 받아들이고 득점으로까지 이어졌을 때, 비로소 북산 팀이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후 1주일 내내 슬램덩크 OST를 들으며 일을 했다.


함께 발을 맞추어 뛰는 2인 3각이나, 한 사람씩 다른 시간차를 두고 뛰는 이어달리기나 모두 같은 출발 지점과 골인지점을 공유한다. 축구, 농구는 같은 면적의 그라운드에서 함께 일정한 시간을 공유한다. 일도 똑같다. 융화로운 협업을 위한 첫걸음은 서로가 같은 지점에서 서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같은 곳에 서기

나는 기업 내의 디자인 팀에 소속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브랜드 디자인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파트 특성상 우리는 전체 프로젝트의 진행 단계에서 후반 즈음 투입되어 결과물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는 일이 잦다. 비유하자면 우리 팀은 수많은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경기장 주변의 벤치에 앉아있다가 무작위로, 불시에 출전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이러한 환경이니만큼 우리는 매번 궁금한 것이 많다. 경기 스코어 같은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 지금 경기장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선수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뛰어주길 바라는지 구체적으로 전달받을수록 해당 경기를 먼저 뛰고 있는 선수들과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아주 짧은 호흡에 끝내야 하는 특정한 업무를 전달받았다. 결론적으로 썩 유쾌하지 않은 과정과 경험이었다. 경기장의 컨디션이나 현재 흐름의 공유는커녕, 지금 아무도 바통을 받을 사람이 없으니, 누구든 받아서 뛰라고 했다. 게다가 이 말을 전달하는 동료의 언어는 「경기는 모르겠고, 나는 내 할 일만 할 거야」 정도로 들렸다. 어안이 벙벙하고 화가 났지만 일은 해야 했다. 저 앞에서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흙으로 엉망이 된 바통을 주워 들고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가용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작업을 끝마쳤고,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업무 공유 과정이 기록된 메일 더미를 하나씩 읽어보았다. 역시나, 그 바통을 처음 쥐고 있던 담당자는 무척 정중했다. 설득될만한 배경 설명도 곁들여져 있었다. 업무가 다른 담당자에게 옮겨지는 과정에서 한 꺼풀씩 동기가 떨어져 나간 듯했다. 내가 그 경기에서 온 힘을 내어 뛰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그날이 금요일 오후여서도, 예상치 못한 긴급 건이어서도, 대타 선수여서도 아니었다. 바통을 전달해 주던 동료에게서 느끼지 못한 땀의 온도, 존중이 서리지 않은 차가운 태도, 함께 뛰는 선수로서가 아니라 수단으로써 나를 대하는 언어 때문이었다.


시야 넓히기

유쾌하지 않았던 업무 경험에 대해 배우자에게 넋두리를 하던 중 불쑥 이런 질문을 받았다.

"축구에서 패스할 때, 어디를 보고 해야 하게?"

5초가량 생각하다가 나는 '패스할 선수?'라고 대답했다.

"정확히는 그 선수가 아니라, 그 선수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줘야 해"

순간적으로 '아-!' 하는 짧은 탄성이 나왔다. 별안간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배우자는 말을 이어갔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상대방을 볼 여유도 없을뿐더러, 시야가 좁기 때문에 대부분 본인의 자리를 지키면서 상대방이 알맞게 공을 찔러주길 바라. 반대로 프로 선수들은 자기가 갈 방향부터 나에게 패스 줄 사람의 루트를 다 알아. 그래서 세트피스(Set-piece)가 가능한 거야."

아마추어와 프로의 시야 차이 : 내 공을 보느냐, 상대방을 보느냐, 상대방이 갈 곳을 보느냐!

그때 상반된 어느 동료와의 협업 경험이 떠올랐다. 그와 개인적인 친분도 없고, 함께 업무를 해 본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나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당시에도 역시나 빠듯한 일정으로 끝내야 하는 업무였고 나는 벤치에서 막 투입되어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 동료는 사전에 내가 뛰어갈 방향을 향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차곡차곡 정리하여 정확히 내 발 앞으로 찔러줬다는 것이었다. 더도 덜도 없이 깔끔했다. 구두로 정보를 제공받은 것이 아님에도 그 어떤 궁금증이 없었다. 그의 꼼꼼함은 곧 나에게 배려와 존중으로 느껴졌고, 나는 한 마음으로 경기를 뛸 수 있었다. 협업 시에 동료를 예측하고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여 말끔하게 일을 끝내는 법은 배우자의 말에 앞서 그에게 한 수 먼저 배운 것 같다.


승패의 요인 - 팀 플레이에서 찾기

배우자와의 축구 대화는 흥미롭게 이어졌다. 내 다음 궁금증은 세트피스와 같은 전술과 능력치의 상관관계였다. 호날두, 메시처럼 능력치가 높은 선수들이 있다면 세트피스도 수월한 것인지. 아니면 능력치 너머의 무언가가 필요한 건지. 배우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질문을 축구 게임에 비유해 볼까? 경기가 끝나고 나면, 내가 플레이한 팀 선수들의 체력 소모치가 나오거든. 결과가 몇 대 몇이든 협력이 잘 이루어진 팀이라면 전체 선수들의 체력치가 골고루 줄어들어있어. 다들 열심히 뛴 거지. 반대의 경우, 호날두나 메시 같은 탑 플레이어 한 두 명만 체력이 무지막지하게 깎여있고 나머지는 쌩쌩해. 내가 그 한 두 명만 데리고 플레이했거나 팀 활용을 잘 못한 거야."

좋은 리더는 개인 능력치가 높고, 훌륭한 업력을 지닌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좋은 리더는 스포츠 감독처럼 선수들을 두루 이해하고 그들 스스로가 최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물리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선수와 감독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경기를 보는 시점이다. 선수는 1인칭 시점에서 경기를 이끌어가지만, 감독은 3인칭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경기를 직관한다. 따라서 선수와 선수 간의 협력도 중요하겠지만, 그 협력의 힘을 불어넣고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은 감독이다. 짜임새 있고 촘촘한 조직력을 만들기 위해 리더는 팀원들의 능력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적절한 포지션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감독이 손흥민, 호날두, 메시 같은 탑 플레이어 한 두 명만 믿고 다른 선수들에게 한 치의 관심도 없다면 그 팀은 과연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업무 태도는 곧 스포츠 정신

즐거웠던 축구 대화의 끝은 조금 서글펐다. 회사에서의 팀 워크가 좋은 축구팀처럼 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우리 둘 다 말 끝을 흐렸다. 배우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프로 선수처럼 적절한 정보를 내 발 밑에 쓱 꽂아주고, 잘 맞는 업무 세트플레이를 바라는 것 자체가 회사에서는 이상적인 바람인 것 같다고 일침 했다.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 글을 쓰는 내가, 나와 대화를 나눈 배우자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스포츠 정신을 생각하며 업무의 작은 부분부터 바꿔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팀이 만들어지는 시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함께 일하는 동료와 나는 같은 지점에 서있고,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 갖기. 서로의 좋은 퍼포먼스를 위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기. 협업자의 상황을 예측하여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기. 좋은 결과의 요인을 서로의 존재에서 찾기. 생각보다 별 것 아니고, 어렵지 않다. 나부터 시작한 작은 행위는 실이 엮여 내구성 좋은 옷이 만들어지듯 훗날 좋은 조직 문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하면, 다음 사람들은 그것을 잘 지키고 이어가기만 하면 된다. '원래 그런 문화'인 곳도 없고, 앞뒤 가리지 않고 '까라면 까야' 하는 문화가 좋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상명하복의 문화가 짙게 깔린 제조회사에 다니고 있는 배우자. 대화를 마치며 그는 대표님이 귀가 아프도록 외치던 한 마디를 기억해 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원 팀(One-Team)'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코웃음으로 받아쳤을 '라떼' 스러운 말이었는데, 그날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그들의 세월 속에서 같은 마음으로, 스포츠 팀처럼 즐겁게 일했던 시절이 있었겠지. 경험해 보았기에 외칠 수 있는 말이겠지. 엄마의 말처럼 어쩌면 으른들이 하는 말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생각의 흐름이 점차 라떼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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