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쯔잉 Dec 26. 2021

 이웃집에 산타가 산다

아이들이 크고 난 후에는 간혹 알전구가 달린 트리나 하얀 생크림을 올린 케이크, 빨간 리본을 매단 선물 중에서 한 두개를 빼먹기도 했지만 올해처럼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특별히 행복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사라진 지 오래일 뿐더러 코로나 거리 두기의 단계 강화와 연일 수천 명에 달하는 확진자 숫자로 인해서 왠만하면 외출을 자제하는 중이었다.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늘어진 추리닝 차림으로 서로 낯간지러운 성탄절 축하 인사따위는 생략한 채 늦은 아침을 먹으려던 중이었다. 마트에 급주문한 배달생수를 들여놓으려고 밤새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여는 순간 큰딸이 탄성을 질렀다.


"우아. 이렇게 귀여울 수가!"


현관 손잡이에는 앞집 이웃이 걸어놓은 선물 꾸러미가 있었고 양말 두 켤레와 손장갑, 간단한 메모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성탄의 즐거움을 함께 나눕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행복하세요.


이사온 지 2년이 되어가지만 이웃집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현관문에 교회 스티커가 붙어있어서 크리스챤일 거라는 짐작과 쿠팡을 이용해서 대량으로 생필품을 사고 현관문을 가릴 정도로 생수가 몇 박스씩 쌓여있는 걸로 봐서는 낮시간에는 아무도 집에 없다는 사실말고는 이웃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웃집 사람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끔 마켓컬리를 이용하고 한 달에 두어 번 택배를 이용하지만 그 중의 한 번은 꼭 반품하고 고양이 사료와 모래 박스로 보아 반려묘가 있다는 정도 말고는 그들도 우리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을 텐데 말이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은 물론이고 특히 낯선 이에게 마음을 내보이는 일이 점점 더 불필요해지고 쑥쓰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타인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나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21세기 인류의 에티겟이 되버린 시절에 이웃간의 정을 나누고 온기를 주고받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되었다.

영하의 세밑에 깜작 선물을 받고 보니 문득 코로나 직전인 2019년의 크리스마스 이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가 얼마나 삭막한 사람이 되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그날 쇼핑몰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화려한 진열장 사이를 기웃거리다 지친 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덜한 기둥 뒤의 한적한 벤치에 앉아있는데 뒤에서 계속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었기에 미화원이겠거니 생각했으나 벤치에서 일어날 때 보니 어느 젊은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줄 커다란 선물 상자를 포장하던 중이었다.

사과 상자 두 배의 크기인 장난감 박스를 두 장의 포장지로 덮느라 긴 팔을 서툴게 휘적거리며 낑낑 대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 몰래 선물을 사고 깜짝 파티를 위해 은밀하게 준비하는 것 같았다. 낯선 젊은 아버지의 등짝이 어릴 적 내 아버지의 등처럼 넓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과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조명 사이로 선물과 케이크 상자를 손에 들고 총총히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어쩐지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마음 하나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잠에서 깨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물을 받아들었을 젊은 남자의 아이를 떠올리니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2년이 흘러 크리스마스 아침, 이웃집 사람이 걸어놓고 간 선물 꾸러미를 받고 보니 그 날의 따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웃에 천사가 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린 설국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