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의자의 무게는 침묵으로 버틸 것
왜 튀는 게 싫어요? 뽕을 넣어야 이쁘지.
덥수룩한 커트 스타일의 중년 여자 머리를 고데기로 매만지는 미용사가 친절을 가장하며 핀잔주는 걸 나는 말없이 지켜본다. 한사코 수수하게 해달라는 여자의 뒷머리는 이미 붉게 달궈진 고데기의 열기에 장미꽃처럼 말려 있었다. 나는 마스크 안에서 마음껏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조카 결혼식에 간다지만 저렇게 한껏 부풀린 머리를 요즘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며칠 전 이마를 두어 바늘 꿰매는 처치를 하느라 할 수 없이 남의 손을 빌려야 했기에 샴푸를 하러 모처럼 동네 미장원을 찾았던 길이다.
미용사의 입은 손보다 더 바삐 움직인다.
아저씨도 우리집에서 머리 깎는데 손님은 이제야 오셨네.
(놀람)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저번에 요앞에 아저씨랑 지나가는 걸 봤어요. 아저씨가 착하시죠?
(무덤덤) 그쵸. 서로 일하니까 많이 도와줘요.
무슨 일 하시는데?
(뜸들임) 그냥 어디 좀 출근해요.
무슨 일요? 어디로 출근하는데?
(멈칫) 요양보호사예요.
아항. 이 근처 요양센터 많잖아요. 어디? 이 근처로 다니세요?
(마지못해) ** 요양원이요.
여자는 침착하고 꽤 과묵해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으로 미용사의 질문 앞에 피고인처럼 대답하는 순간 나는 속으로 갈등했다. 잠시 후 저 의자에 앉게 될 나의 운명이 공포영화 예고편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이에 내 차례가 되었다.
예상했던대로 미용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 사는지, 몇 살인지, 결혼했는지, 아이가 있는지..하다 못해 바지는 어디서 샀는지 같은 깨알질문을 철벽답변으로 막아낸 후 방심한 사이에 미용사가 허를 찌르며 다가왔다.
그럼 나는 몇 살로 보여요?
미장원 의자에 앉으면 미용사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두 가지이다.
머리스타일과 신상 털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