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육아 | 정지우 저
세상에는 매일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오늘 태어난 아이도 그 수많은 아이 중 하나 일 것이다. 이것이 남의 아이일 경우는 그러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아이일 때는 좀 다르다. 새로운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진다. 아기의 작은 숨소리, 젖 달라는 울음소리, 채 눈을 뜨지 못한 채 아등대는 작은 손과 발은 신비하고 경이롭다. 살면서 몇 번은 봤을 풍경이지만 이 풍경은 또 다른 우주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부모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우리 앞에 펼처질테고 때로는 속상하기도 때로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하기도 할 것이다. 그랬다. 나는 지난 주 새로운 우주를 만났고, 아이도 아내도 잠든 까만 밤, 병실 한 켠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클래식하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이가 누구냐 물을 때 나는 정호승 시인이라고 답한다. 물론 세계로 넓히면 더 멋진 글을 쓰는 이가 왜 없겠냐마는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 정호승 시인만큼 마음을 울리는 글을 사용하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람. 예전부터 관심 있게 팔로우하고 지켜보는 작가인 정지우 작가의 글 또한 그러하다. 마음을 담아 한자 한자 꾹꾹 눌러쓴 듯한 글은 힘이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은 마음을 꽤 깊고 넓은 곳으로 데려간다.
신이 있다면, 신은 우리에게 잠시 온 영혼을 고갈시키듯이 사랑하라고 아이가 있는 한 시절을 주는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사랑할 시절을 가지라고, 삶의 가장 깊은 정수를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오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 다. 삶이 어려운 것은 그만큼 가치 있기 때문이라고,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어렵다고 말이다. 삶의 어려움이 아이와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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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굳이 갖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이야기하지만 누구나 이야기하듯 대한민국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온 집안이 달라붙어야 겨우 가능한 최악의 환경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 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의 희생 또한 어느 정도 요구되고 이것이 거부될 때 또 다른 불화가 야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그것은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경험이라고 말한다. 온 영혼을 고갈시키듯이 사랑하는 것. 신이 인간을 그토록 사랑했던 것처럼, 삶의 가장 깊은 정수를 한 모금 마시고 돌아오라는 것. 그렇다. 모든 가치 있는 것은 어렵다.
자신은 없지만 이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