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 추적기 | 박준용, 손고운, 조윤상 저
아프리카에서 만난 뜻밖의 장면 중 저 옷이 왜 여기?? 했던 장면이 있다. 2002년 한국을 휩쓴 Be the Reds 티셔츠 그리고 이회창 대통령이라고 쓰인 옷(그는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옷이 돌고 돌아 그곳에 도착한 것일게다. 그렇게라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저 옷들을 바라보는 마음 한쪽이 묘하게 불편했다.
헌 옷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너ㅏ는 깨끗한 옷은 아름다운 가게에 버려야 할 옷들은 의류 수거함에 넣는다. 응당 그냥 그래왔다. 마치 공공의 의류 쓰레기통 같았던 그곳이 민간에서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류를 처리할 딴 방법을 모르는 나는 계속 그곳에서 헌 옷을 버렸다.
이 책의 이야기는 그렇게 버려진 헌 옷들이 진짜 어디로 향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재활용이라는 말에 어떤 안도감을 배워왔다. 입지 않는 옷을 넣으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 하지만 버려진 옷에 달아둔 GPS 추적기는 그 믿음 뒤의 세계가 얼마나 어둡고 혼란스러운지를 말해준다.
한국에서 해마다 버려지는 헌 옷은 공식 집계만 10만 톤이 넘지만 수출되는 양은 30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집계되지 않은 20만 톤이 어디선가 들어와 편법과 불법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옷들은 대부분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태국, 볼리비아 등 중고 의류 수입을 금지한 나라로 들러들어간다. 그리고 이 옷들은 그곳의 쓰레기 산을 더욱 높게 쌓아 올린다.
인도와 태국, 필리핀 등도 마찬가지다.
의류 수거함을 통해 우리가 재활용된다고 믿었던 옷들은 개발도상국으로 향했다. 의류가 아닌 쓰레기가 돼서 말이다.
H&M, 자라 같은 패스트패션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하면서 친환경,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의류 수거함을 매장 내 비치하기 시작했다.
H&M은 수거된 옷의 92%를 재활용한다고 말했고, 자라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하지만 헌 옷 추적 결과 H&M 매장 수거함에 넣은 7벌 중 4벌은 아프리카, 동남아로 흘러갔고 자라의 헌 옷은 튀니지에서 발견되었다.
우리가 동네 의류 수거함에 넣는 옷과 이들은 별밥 다르지 않은 운명을 걸었다.
이를 책은 '그린워싱'이라고 부른다.
이은 소비자를 두 번 속이는 행위다. 더 많이 사게 만들고 버린 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친환경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정부는 제도의 빈틈을 방치한다. 유럽은 이미 생산자 책임재활용제를 통해 의류의 생애 주기를 관리하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수십조 원 규모의 의류산업이 내는 이익은 있지만 그로 인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추적기가 멈춘 인도 파니파트의 표백, 염색 공장에서는 아직도 폐수를 별도의 정화장치 없이 방류한다고 한다. 마을 사람 4,000명 중 400명이 중증 질환을 앓고 있고 노동자들은 맨손으로 화학 용수를 다룬다.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은 독성 물질이 묻은 옷더미 속을 놀이터처럼 뛰어다닌다.
남의 일 같지만 이 일들은 어쩌면 우리가 짧게는 수십 년 전에 이미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공장폐수를 강에다 버렸고, 그 물질들은 각종 질병을 일으키며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했다. 아직도 이 일들이 법정에서 다뤄지고 있으며 이제 선진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 더 이상 이런 일을 벌이는 이는 없다.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가 아니라면 괜찮다는 말인가?
내가 버린 옷이, 내가 신던 운동화가, 누군가의 몸을 병들게 하고 있음에도 개도국의 이들이 선택한 일이니 그것이 괜찮은 일이 되는가?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구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생산자는 대량 생산을 멈추지 않고 정부는 관리하지 않으며, 소비자인 우리는 재활용한다는 이야기에 거리낌 없이 소비한다.
티셔츠 한 장이 종이컵 수백 개의 탄소를 내뿜고, 폐의류의 20%가 불법 폐기될 때 매년 소나무 수천만 그루가 필요하다.
프랑스는 2028년까지 중고 섬유 재활용률을 90%까지 높이겠다고 선언했고, 네덜란드는 2050년 완전한 지속 가능 직물을 목표로 삼았다.
기술도 조금씩 진보하고 의류업계 종사자들 또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이런 변화의 출발은 정부나 기업을 움직일 수 있게 우리의 눈이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할 때다. 의류 수거함이라는 블랙박스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는 것. 편리함 뒤에 누군가의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행사를 위한 일회용 티셔츠는 이제 모든 기관에서 지양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