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란 헤맸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점이다

<생각의 기쁨> 유병욱 저

by 짱고아빠


기본기란 헤맸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점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었는데, 보면 볼수록 그의 세계 안에 빠져들었다. 16년 차 카피라이터의 내공은 깊었다. 비슷한 연차의 다른 직군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부럽기도 했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덕분에 나도 내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훨씬 더 커졌다.(내 책 써야지...)


'나는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라는 스피노자의 문장을 소개하며 시작하는 책은 사고와 마음, 그리고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깊이와 넓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실 지금이 내가 이 깊이와 넓이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어서 일게다. 십수 년을 한 가지 일을 하며 나는 내 일에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는가? 혹은 얇더라도 어느 정도의 넓이를 가진 사람인가?


스스로 크리에이티브 한 사람은 아니라고 자평하는 편이다. 뭔가 반짝이는 건 아무래도 내 안에 없다. 그럼에도 이따금 동료들로부터 크리에이티브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 책에서 그 이야기의 단서를 얻었다. 창의력은 스퀴즈 아웃(squeeze out)이 아니라 스필오버(spill over)란다. 쥐어 짜내는 것이 아니라 흘러넘쳐야 하는 것. 그래 그런 거라면 나도 어쩌면 크리에이티브 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월하다 말하기 애매한 사람이기에, 무언가를 잘 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꾸준히 할 수는 있다. 모름지기 깊이란 반드시 어느 정도의 시간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나도 그 깊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야기할 자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십수 년의 깊이에서 배어 나오는 사고들이 누군가 이야기하는 크리에이티브의 동력이 아니었으려나.


자신의 틀이 정립된 사람만이 그 틀을 깰 수 있다. 기존의 틀을 파괴하는 것도 일단 틀을 만든 다음에나 가능하다. 틀을 만들고 이해하는데 우리는 또 얼마의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저자는 말한다. 광고에서 재치보다 중요한 건 광고주가 맞닥뜨린 상황에 대한 이해와 사람들이 움직이고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의 각도라고. 번뜩이는 재치가 한 번의 문제는 해결할지 몰라도 그것에 의존할 수는 없다고. 늘 크리에이티브 한 일이라고만 여겨졌던 광고도 이러할진대 루틴 한 업무에 시달리는 일련의 직장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혁신은 오래 고민하고 궁리한 이들로부터 시작된다. 슈퍼맨은 없다.


결국 기본을 다시 생각한다. 누가 봐도 중요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깻잎 하나를 튀기는데도 정성을 기울이는 누군가의 정성처럼 들여다보면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다시 나와 내 일, 아니 내 삶을 생각한다. 일이란 결국 기획자가 가진 것만큼을 세상에 내놓는 일일 테고, 그가 가진 깊이만큼의 그릇에 그의 경험과 세계관을 통해 만들어진 생각이 담길 것이다. 비영리 마케터, NGO 활동가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 계속 내 마음이 뛰었으면 좋겠다.



생각의 기쁨 / 유병욱 저 / 북하우스 /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