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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언니 Jul 13. 2022

첫 36시간 단식 후기 -7월 12일 22년

돼지 같은 사람은 바로 나다.

벌써 첫 단식을 한 지 얼추 2주가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 다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먹지만, 집에서 있는 경우에 아이들 음식만 차려주고 먹지 않았다.



그러니 스케쥴은 이렇다.

주일에 교회에서 점심, 교회 친구들과 저녁을 맛있게 먹는다.

월요일부터 점차 시작하는데, 보통 전날 오후 9시부터 안 먹는다고 치면 이때 수요일 저녁 전까지 36시간 단식이 가능하다.


일요일 오후 9시부터 수요일 오전 9시까지만 안 먹어도 이미 36시간.

수요일은 수요 기도회가 있기에 안 먹기 어렵다, 그럴 경우 차라리 화요일 저녁 5시까지 안 먹으면 20시간 단식이 된다. 그 후에 수요 기도회까지 굶고,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에 가정교회 모임까지 안 먹으면 얼추 36시간이다.


내가 숫자에 매우 약해서 단순한 숫자 계산이 안되는 건 양해 부탁드린다. 하지만 요즘에는 핸드폰 앱으로 간단히 목표 시간을 설정할 수 있으니 그런 걸 사용하길 권장드린다.



처음 내가 느낀 30시간 이후의 단식은 매우, 묘했다.

웃긴게 처음 12시간까지는 배가 엄청 소리를 냈다. 배고프다고 이년아!!!! 하지만 물을 주었더니 잠잠해졌다. 커피나 녹차는 오히려 입맛을 돋구는 느낌이었다. 물만 먹자니 토할 것 같았다 (원래 맹물, 생수는 잘 못 마신다.)


그리고 하루가 지날 무렵, 저녁에는 배에서 꾸루룩 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잘 정도였다. 그리고 새벽에 의외로 일찍 깼다. 배고프다- 라는 느낌이 날 때마다 차를 마셔주었다. 이때는 오히려 HIIT 운동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아이들과 레고나 보드게임도 하며 평소처럼 지냈다. 


아이들이 물을 쏟거나 뛰거나 소리치고 때리고 싸워도, 예전처럼 화내지 않고 단호하게 하면 안된다는 것 정도만 말할 수 있었다. 몸에 든게 많아서 그동안 어지럽고 화도 나고 그랬던 것 같다.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풍족한 식단이, 우리를 망쳐놓은 게 아닐까... 하고 슬퍼졌다.


30시간에 가까워지자 오히려 입맛이 사라져갔다. 웃긴 일이지만, 그 전까지 과자의 유혹이나 그런 먹을 것만 눈에 밟혀서 이게 참 내가 육체에 머물러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감정이나 육체가 느끼는 오만가지 감각들은 정말 다 하잘데기 없는 거구나. 한낱 ... 그래 한 30분도 못 가는 그냥 '기분' 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허탈했다. 


이 주에는 수요 기도회가 있기 전에 먹기가 싫어서 화요일 점심 즈음에 먹고 단식을 했는데, 그런 빈 마음으로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니, 기도 시간이 짧아도 마음에 충족되는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는 기도 시간도 늘리고 싶은데 남편 혼자 아이 둘을 보는 것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그리고 36시간이 되고, 몸에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하고 손이 덜덜 떨려왔다. 굉장히 신기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어서, 나는 그렇게까지 몸이랑 싸우고 싶진 않았기에 밥에 사골국을 말아서 조금 먹었다. 와... 진짜 개 꿀맛...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설렁탕을 먹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정말 이게, 부족해야 행복하고, 비어야 비로소 원하고, 갈구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나는 정말 바보같은 육체에 갇힌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이 들어서 너무 웃겼다. 나는, 지금까지는 그래도 나는 육욕에 빠진 사람이 아닐거라며 자위했는데, 그게 다 허무한 일이었다. 그냥 나는 짐승같은 인간이었다.


그렇게 36시간 단식을 끝내고 나니 더 반성하고, 더 단식을 계속해서 나의 인간 됨됨이를 뜯어 고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도 사람의 몸으로 40일간 단식하셨는데, 와 나는 대체 36시간. 고작 하루 반 단식하고 그렇게 힘들었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비워내기. 진짜 뭐가 중요한지 생각하기.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기, 감정 비워내기.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흘려보내기. 물건, 사람, 마음, 감정. 이런 것에 휘둘리지 않기. 이게, 나의 반 남은 2022년을 향한 목표가 되었다.



욕망이 차고 넘치는 이 시대에, 단식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좀 더 해보고 견디는 훈련, 나태해진 나를 조금 더 밀어붙이는 단련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2주차인데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는 금토일은 원없이 먹고 있으니 건강에 무리도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혈당이 낮아진 게 느껴진다. 달콤한 과자, 국수, 디저트, 흰쌀밥을 먹고도 잠에 빠지지 않는 다는 점. 밥을 먹고 힘들지 않다는 점이 나를 기쁘게 한다. 이건 정말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회고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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