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리언 픽토그램
말 잘 안 통하는 외국에서 살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좋은 취미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말 안 해도 되는(적게 하는) 운동과, 역시 말 안 해도 되는 예술작품 감상이다. 둘 다 본질적으로는 입 벌릴 필요 없이 눈과 두 발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취미이다. 그래서 나는 브라질 사는 동안 운동으로는 주짓수를 배웠고, 취미로는 미술관과 공연장을 다녔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브라질에 살면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인 픽토그램에 대해 써 볼 생각이다. 브라질 디자인 감성이 내 눈에는 어찌 그리 재미있는지. 브라질 사는 내내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사진 중 상당수가 표지판류이다. 당시에는 뭘 그런 걸 찍고 다니냐고들 했지만 굴하지 않은 내게 박수를. 덕분에 좋은 추억거리를 챙겨 올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이 정말 많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 있는 것들만 추려 보았다.
빠라나(Paraná) 주 주도이자 인구 180만의 도시인 꾸리치바. 동유럽계 이민 후손 인구가 많으며 환경·도시정책의 도시이자 대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꾸리치바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만감이 교차할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삶이 살아지는 개성 넘치는 도시.
차고. 견인차 부를 거니까 앞에 차 세우지 말라는 무서운 문구를 귀여운 서체로 적어 두었다. 내가 살았던 Praça Rui Barbosa 근처에서 촬영.
(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 방향) 화재 경보 / 위험 - 전기 충격 / 소화전 / 소화기. 나는 저 노란색 전기 충격 딱지가 마음에 든다. 그냥 보면 조심하라고 해 놓은 건지 잘 모를 것 같다. 뭔가 해리포터 같지 않은지? 자주 놀러 갔었던 Paço da Liberdade 건물 내부의 표지판들이다.
사실 영국 손이 아니고 영국식 방향이라는 뜻이다. 영국에서는 차량들이 좌측통행을 하기 때문이다. Praça Santos Andrade 부근.
복잡하다. 무슨 뜻일까? Avenida Visconde de Guarapava에서 촬영. 근처에 있는 '마네끼 라멘'은 주변에서 그나마 일본식에 가까운 라멘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위의 E는 통상적으로 주차장(Estacionamento)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택시 정류장 표시이다. Praça Rui Barbosa에서 촬영.
사실 이것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버스 전용이라는 것 같은데 길바닥을 봐야 뭔지 알 것 같다. 저 뒤에 택시 정류장 표지판이 작게 보인다. Praça Santos Andrade에서 촬영. 바로 뒤에 남미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라는 과이라 극장(Teatro Guaíra)이 있다.
정말 급해 보인다. 입체적인 것이 참 재미있다. 프린트는 아니고 데칼인 것 같은데, 누가 했는지 재치 있는 디자인이다. 입을 그린 것이 화룡점정이다. Shopping Estação 내부에서 촬영.
경적 울리지 말라는 표지판. 모양이 애매한 것이 장식 달린 트럼펫인지 아니면 못생긴 뷰글인건지 헷갈린다. 어찌 됐건 귀엽다. 장소 불명. 집 근처 어딘가인데 못 찾겠다.
두 개 다 켜면 어쩌라는 건지. 어느 한가한 일요일 낮에 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
보도블럭에도 멋들어진 모양이 있다. 빠라나 주의 상징 아라우까리아 나무를 형상화 한 모양. 대칭된 나무 모양 사이에는 꽃 두 송이가 그려져 있다. 왼쪽 하단에는 히우데자네이루에서 볼 수 있는 보도블럭과 비슷한 파도 모양이 그려져 있는데, 여행사가 있는 건물이어서 그랬는지 짐작만 해볼 뿐이다.
조심하라는 얘기인데 왜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의문이다. 장소 불명. 지도 열심히 찾으면 어딘지 알 수도 있겠다 싶지만 굳이.
자전거와 사람이 나란히 있는 것이 신기해서. Centro Cívico에서 촬영
내가 브라질에서 처음 발견한 귀여운 모양이다. 맨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정말 작은 차이점도 의미 있게 보였었다. 지금 다시 가라고 하면 정말 별생각 없는 사람의 시각이 되어 있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다. Praça Tiradentes에서 촬영.
상파울루에서는 살 때보다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 더 많다. 막상 살 적에는 직장에 잡혀 있다 보니 돌아다닐 일이 별로 없었다. 여기도 정말 재미있는 도시이다. 다시 보내준다고 하면 흔쾌히 갈 수 있을 것 같은 도시. 상파울루 신호등 시리즈를 소개한다.
한국인 관광객의 상파울루 1호 방문지, 쎄(Sé) 성당 앞이다. 여기만 보고 브라질을 판단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데 제발 그러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브라질은 상상보다 훨씬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인 만큼 볼 것도, 느낄 것도 많다.
브라질 독립공원 앞. 독립공원에는 역사박물관이 있다. 운영시간이 짧기 때문에 방문 시 오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공원 크기가 매우 크고 경사가 져 있어서 동네에서 스케이드보드 타는 브라질 청소년들의 집합 장소이기도 하다.
일본인 마을인지 동양인 마을인지 호칭으로 의견이 분분한 리베르다지(Liberdade) 지역 신호등. 신호등만 보면 본질은 일본 마을이다. 실제로 브라질로의 일본 이민은 100년이 훨씬 넘었다. 상파울루 도시 곳곳에서 고급 일식집을 찾을 수 있으며, 예약 손님만 받는 오마카세도 있다. 최근에 급증한 중국계 이민자로 인해 리베르다지 마을의 정체성이 조금씩 흐려지는 추세라고 한다.
상파울루 미술관 앞. 나중에 상파울루 살게 될 때는 미술관 바로 옆에 살았는데도 한 번도 다시 안 갔다. 바로 앞에 더 좋은 FIESP 전시랑 공연이 있었던 탓이라고 하자. 외국인 관광 코스 필수 방문 장소이다. 이름값은 하는데 별로 브라질스러운 느낌은 없다. 건물의 특이한 무게 지탱 방식 때문인지 건축 공부하는 친구들은 좋아했었다.
삐나꼬떼까(Pinacoteca)에 갔을 때 설치미술 작가들 전시가 많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는 진짜 미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냥 재미있게 봤다. 그래서인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마지막은 상파울루 시립극장이다. 미리 신청하면 포르투갈어나 영어를 사용하는 가이드가 해 주는 극장 투어를 해볼 수 있다. 시에서 가장 오래된 몇몇 건물들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하에 어떤 건축 방식이 적용되어 통풍 구조가 특별하다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상파울루에는 꾸리치바에 없는 지하철이 있다. 노란 선 넘지 말라는 말이다. 어느 지하철 역에서 촬영.
깜삐나스 공항의 센스 있는 문구. KISS AND GO! 비행기 타기 전의 입맞춤이 행운을 주는 의미인 것 같더라. 물론 나한테 키스해 줄 사람은 없었다.
브라질리아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긴 여정 중 두 번째 휴식인 관계로 슬슬 다리가 불편해 주위를 돌아다니던 중 노란색 표지판이 눈에 띈다. '당신의 베스트 프렌드를 버리지 마세요' 라는 의미이다. 밑에는 동물 유기는 범죄라며 관련 법령에 관한 안내문이 적혀 있다. 한국에서 보고 배워야 할 점이다.
횡단보도 건너는 사람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표지판. 걸을 때 모습 약간 엉거주춤하게 그려놓은 것은 사실 브라질 사람들이 속으로는 성미가 급하다는 표시 아닐까 생각해본다. 땅이 커서 그런가 이 사람들 걷는 속도도 엄청 빠르다. 빨리 걷다 보니 상체가 앞으로 쏠린 것일까?
담배 피우지 마세요. 북동부 바이아(Bahia) 주 고원지대인 샤빠다 지아만치나(Chapada Diamantina)에서 만난 돌로 만든 표지판. 판매용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한 것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상파울루 주에는 도자기 굽는 도시가 있다. 컵 사러 갔었던 도시인데, 주로 만드는 것이 도기인지 자기인지는 모르겠다. 길거리에 도자기 조각이 많았던 것이 기억난다. 새끼돼지 통구이(Leitão)를 하는 식당이 동네 유명 식당이라고 해서 가봤던 기억이 있다.
히우에서 찍은 유일한 신호등. 가는 건 사람 모양인데 멈추는 건 손바닥이다. 잘 보면 손등 같이 생기기도 했지만 아마 손바닥이겠지. 시내 중심부 어딘가에서 찍었다.
아는 형님 댁에 놀러 갔을 때 복도에서 본 초대형 소화기. 표지판에 알기 쉽게 물(AGUA)이 들은 소화기라고 적혀 있다.
무덤에 한 발짝(Pé na cova) -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뜻을 가진 브라질식 동네 펍.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밤새 얘기를 나누는 브라질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중간쯤부터는 글을 나눠서 써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했지만 결국 이어서 완성했다. 예전부터 꼭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는데 해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의미가 크다. 이런 식으로 쓰다 만 글들이 많은데 좀 더 힘내서 다 완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