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밤 11시가 되어 집에 돌아오니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니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듯하다. 개운하게 나와 TV를 튼다.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하다. 내일은 휴일이니 한잔쯤이야? 이럴 땐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이미 냉장고에 쟁여둔 맥주 한 캔을 꺼내 입에 대고 있다. 시원하게 들이키고 TV를 본 지 20분쯤 지났을까? 정신이 아득해진다. TV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움찔하며 눈을 떠 보니 휴일 아침이다. 그것도 아침 10시. 뭔가? 이 애매한 시간은? 누운 채로 손을 더듬어 스마트 폰을 찾는다. 이게 다행인건지 씁쓸한 건지 몰라도 아직 전화나 문자, 카톡은 평화롭다. 인터넷에 들어가 기사를 잠시 검색하고 페이스북과 블로그들을 돌아다녀본다. 누구 생일이라는 알림에 와 있어 축하의 댓글을 남기고 어제 찍어둔 봄꽃 사진을 블로그에 살포시 올려본다. 이웃들의 반응을 기대하며 스마트 폰을 손에 놓으니 벌써 12시다. 휴일의 시간은 LTE급으로 빨리 지나간다. 아침 겸 점심으로 즉석 북어국과 즉석 밥 조합을 선택한다. 맥주 한 캔도 술이니 해장을 겸한다. 전자레인지로 돌린 북어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TV를 켠다.
앗싸! 타이밍 좋다. 일주일동안 못 본 드라마가 연속 방송을 한단다. 밥을 먹고 후식으로 과자를 바스락거리며 드라마 삼매경에 빠진다. 스마트 폰에 문자가 왔다. 누가 자길 국회의원으로 뽑아달란다. 스팸메시지로 등록한다. 좀 있으니 무슨 이벤트, 무슨 할인정보 같은 게 문자로 온다. 짜증이 좀 난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계속 스팸메시지로 등록. 그러는 사이 드라마는 다음 편으로. 화장실을 잠시 갔다 와 이어서 본다. 마침내 드라마가 끝났다. 한창 몰입 중인데 궁금하게 끝나버리니 공허하다. 뭔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느낌이다. 시계를 보니 3시 반이다. 이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면 영화를 봐야겠다. 컴퓨터를 켜고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를 한편 다운 받았다. 불도 끄고 완전 집중해서 본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쥐포를 꺼내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본다. 첫 장면이 잔인하다.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긴장감 때문에 쥐포를 못 씹겠다. 좀 지나 분위기가 반전되니 이제 좀 안심이다. 그런데 방심하고 쥐포를 씹다 혀를 깨물었다. 죽을 맛이다.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영화는 계속된다.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듯 쳐다보다 영화는 막을 내렸다. 요즘 영화 참 잘 만든다. 자막 올라가는 순간이 정말 아쉽다. 정신을 차리니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쯤이면 S씨가 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 사실 어제 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급박한 일은 아니지만 나 자신과 약속했던 일이다. 하지만 난 할 일을 내팽개치고 그저 되는대로 살았다. 어제 마신 맥주 한 캔과 늦은 귀가를 이유로.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갑자기 화가 났다. 난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매일하기로 했던 일도 물거품이 되고 새벽에 일어나자던 굳은 맹세는 거짓이 되었다. 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다. 이 생각이 나를 화나게 했다. 내 마음 속에 목소리가 나에게 속삭인다.
이상한 죄책감마저 든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니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속삭인다.
조금 위로가 되었다. 잠시 마음의 부대낌을 경험하다 생각해보니 늘 그랬던 것 같다. 우린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때 가장 화가 난다. 생각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외치는데 몸은 저렇게 할 때 그 모순을 견딜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내 모습과 현실 속의 내 모습이 다를 때 힘이 빠지고 좌절한다. 몇 번 나에게 실망하고 나면 난 스스로를 포기한다. ‘내가 그렇지 뭐’하고는 노련한 현실주의자로 살아갈 것을 선택한다. 이건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뭔가 해야 하는데 같이 해야 하는 사람 또는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불쑥 화가 난다. ‘넌 왜 이러니?’하고는 공격을 퍼붓고 뒤돌아서 후회한다. 화를 내도 통하지 않으면 ‘내가 성질이 더럽구나’하고 생각하거나 그 사람을 포기한다. 상대방을 통제할 수 없어 화가 나고 화가 난 내 자신 때문에 상처 받고 포기한다.
‘셀프토킹’이라고 하는 우리 마음속의 목소리 말이다. 우리가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마음속의 목소리들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하고 자기 멋대로 합리화하고 변명하길 좋아한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나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을 때 마음속에 ‘아니 자긴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왜 이런 걸 나한테 시키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마음속에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상황이 달라져 내가 직장 상사가 되어 후배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는데 후배가 불만을 표시하면 ‘아니 나는 저 때 직장 상사들 커피 심부름을 수없이 했는데 앤 왜 이래?’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느 드라마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물론 자기 커피는 자기 손으로 타 먹어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마음속의 목소리다. 우리가 흔히 ‘나’라고 여기는 그 목소리 말이다. 어떤 일에 대한 반응이 일어날 때 우리 마음속에 혼잣말처럼 나오는 그 놈(?) 목소리. 이 목소리를 나라고 여기는 순간 불행해진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는 내가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린 통제할 수 없음에 분노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짜증을 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뭔가 일이 생기고 그 일에 대한 반응으로 내 마음 속에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 목소리를 그대로 두자. 그 목소리 때문에 화를 내거나 포기하는 건 그게 나라는 착각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 목소리는 내가 아니다. 난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존재이고 그 목소리를 초월한 곳에 내가 서 있다. 그렇기에 같은 상황에도 시간차를 두고 조금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목소리는 목소리일 뿐이다. 이 사실이 우릴 마음속의 상황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난 하루를 보내고 잠시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난 힘이 솟았다. 어제의 쉼이 나에게 에너지가 되었다. 더 열심히 뭔가를 하고 싶다. 내가 첫 목소리에 힘이 빠져 포기했다면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흘러가는 대로 나를 놓아주자. 인생을 즐기는 자세로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그렇게 쉬고 나면 그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이 주어질 테니까. 그리고 잊지 말자. 우린 우리 내면의 목소리 때문에 화낼 필요가 없다. 그 목소리는 나의 생각이 낳은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