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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Jan 15. 2023

중력가속도

자유낙하 하는 물체는 질량에 상관없이 일정한 가속도로 떨어진다.

9.8m/s²                              

나는 갑자기 중력가속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중력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므로, 자유낙하 하는 물체는 질량에 상관없이 일정한 가속도로 떨어진다.

     

사전에 나와 있는 설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중력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에 비례한다. 무거우면 중력이 크겠지. 그럼. 그럼.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근데 그러므로 질량에 상관없이 일정한 가속도로 떨어진다고?

     

비례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상관없다고 말 바꾼다. 뭐지? 내가 바본가? 과학에 대해 잘 몰라 미안하긴 하지만 저게 나만 이해가 안 되는 소리인가? 이해가 안 되면 그냥 포기하면 된다. 사전이 맞겠지.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 안 되는 일에 대해서는 뭐라도 하고 싶어진다.  

   

포기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조금 더 읽었다.

     

약 9.8m/s²의 이 가속도를 중력가속도 G라 한다. 그러나 정확한 중력가속도는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것은 지구 자전에 따른 원심력이 위도에 따라 다르고, 지구가 완전한 구체가 아니라 약간 평평한 타원체이며, 지구 내부의 지질 구조가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군. 더 읽는다고 앞의 이야기가 이해되는 건 아니네. 젠장,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가? 누가 나 좀 이해시켜 줄 사람? 나는 하나가 이해 안 되면 더 전진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결국 어린이 백과사전에서 해답을 찾았다. 일찍이 갈릴레오 선생님께서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을 통해 밝히셨다. 그 유명한 실험으로 중력가속도는 질량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작용한다는 걸 증명했다.  

   

질량에 따라 작용하는 중력이 다르다는 말이지 가속도가 다르다는 말은 아니라는 거다. 그래. 그렇네. 이제 이해가 되는데… 화가 나네. 대체, 사전 이거 누가 쓴 거야?

    

그래서 그놈의 중력가속도는 약 9.8m/s²라고 한다. 근데 이게 또 장소마다 다르다고? 이봐, 그러면 9.8m/s²가 무슨 의미가 있는데? 대충 이 정도니까 그리 알고 있으라는 말?

     

불평과 불만이 눈 내리듯 쌓여갈 때 문득 한 가지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 세상에는 대충 이 정도가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지만, 그게 또 다 그런 건 아니지. 뭐라고 단정 지어 이야기해도 그게 꼭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건 아니니까.

    

납득의 과정이 참 어렵다. 나는 왜 이럴까?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왜 자꾸 물고 늘어져서 피곤하게 할까? 그러니까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겠지. 사전에도 시비 거는, 불평불만 가득한 나를 겨우 위로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평한 게 몇 가지는 있나 보다. 첫 번째는 왜 태어난 건지 모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왜 죽는지 모른다는 것, 세 번째는 왜 사랑하게 된 건지 모른다는 것이고, 네 번째는 떨어질 때는 누구나 똑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구를 탈출해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간 몇몇을 제외하곤 다들 땅에 들러붙어 태어나고 죽고, 사랑하고 떨어진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노트북을 덮었다.  

   

주방으로 가 녹차 티백을 하나 꺼냈다. 머그잔에 넣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차를 우렸다. 서재 의자에 앉아 녹차를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15층이라 아파트 앞 상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가 내린 것인지 길바닥이 축축했다. 아니다. 아직도 내리고 있나 보다. 우산을 쓴 사람 두세 명이 거리를 지나는 게 보인다. 비상등을 켠 차들이 마트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마트 옆 코너에는 새로 들어온 정육점에서 오픈 기념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비가 내렸던 아니 비가 내리고 있는 와중에도 일요일 정오의 상가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갑자기 상쾌한 공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창틀에 오른발을 올리고 조금 있다 천천히 왼발을 올렸다. 아래를 보진 않았다. 먼 곳에 시선을 둔 채로 머그잔에 담긴 마지막 한 모금의 녹차를 마셨다. 몸을 천천히 앞으로 기울였다.

    

머그잔과 나는 약 9.8m/s²로 떨어지고 있었다. 자유낙하 하는 물체는 질량에 상관없이 일정한 가속도로 떨어진다.


아이를 잃었다.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야근이라 늦으니 먼저 자란다. 오늘이 목요일인데 이번 주만 네 번째 야근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갔다. 답장을 보냈다.

    

‘응. 저녁 챙겨 먹고.’

     

빨래거리로 가득 찬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켰다. 거실과 안방, 작은 방과 주방을 돌며 구석구석 청소했다. 싱크대를 가득 채운 설거지와 전쟁을 벌이고 나니 세탁이 다 되었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세탁기에서 탈수가 끝난 옷과 수건들을 꺼냈다. 서로 얽히고설켜 큰 덩어리가 되어버린 세탁물을 겨우 해체해 건조기에 넣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휴, 좀 쉬자.”  

   

집안일을 끝내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공기를 채웠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이 공간의 정적이 싫어 리모컨을 찾았다.

    

어디 있니? 평소엔 그렇게도 잘 보이던 녀석이 찾으면 꼭 보이지 않는다. 소파에서 일어서지 않고 탐색할 수 있는 모든 곳을 찾았지만 없었다. 나는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모든 게 귀찮다. 정말.”


순간,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 다 귀찮아. 다 귀찮아.”

“지우야, 뭐해, 학원 가야지. 빨리 일어나!”

“엄마아, 오늘만, 오늘만 봐주면 안 돼? 나 아직 초등학생이야.”

“그게 얼마짜리 수업인데, 안 돼!”

“얼마짜린데?”

“뭐?”

“나보다 비싸?”

“애 봐라.”

“나 오늘은 진짜 진짜 가기 싫어.”

“지우야, 오늘만 참고 가자. 내일 주말이잖아. 응?”

    

사흘 동안 내린 눈에 도시 전체가 얼어버린 금요일 오후였다. 지우는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갔다. 난 밀린 집안일을 마저 끝냈다. 남편은 그날도 야근이었다. 저녁 8시가 되었지만 지우는 오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내 앞에는 피투성이로 변한 지우가 누워있었다. 오열하는 나를 두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지우를 수술실로 데려갔다. 너무 무서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전화기를 꺼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가 남편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남편 대신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당황해 아무 말도 못 했다. 전화를 끊었다. 오해이길 바라며 다시 전화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기를 꼬옥 손에 쥐고 병원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아이를 잃었다.   

                                  

축 늘어지는 날                              

효민에게서 톡이 왔다.

    

‘지우지우’

‘왜왜’

‘뭐해뭐해’

‘학원가학원가’

‘난난학원학원’

‘근데근데’

‘응응’

‘왜두번씩?’

‘그냥그냥’

‘장난하냐?’

‘몰랐냐?’

‘GN은?’

‘GN도 왔지. 웃고 떠들고 있다.’

‘GN은 아프지도 않나? 코로나나 걸려버리지.’

‘악마면역력?’

‘ㅋㅋㅋ’  

   

GN은 ‘그년’의 이니셜로 나와 효민이만의 암호였다. 톡을 끝내고 학원으로 들어갔다. 기다란 학원 복도를 지나 강의실로 갔다. 효민이 손을 흔들었다. 난 효민이 옆자리에 앉아 문제집과 노트를 꺼냈다. 그때 그림자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이.”

“응? 나?”

“그럼 너 말고 누구겠냐?”

“왜?”

“밑에 편의점 가서 샌드위치 좀 사 와.”

“곧 시작인데?”

“누가 모르냐? 그러니까 니가 사 오라고! 킹 받게 하지 말고!”  

   

내가 뭐라고 대꾸하려고 하자 효민이 내 팔짱을 끼며 GN에게 말했다.

    

“갈게, 갈게. 금방 가.”    

 

우린 학원 옆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진열대에 샌드위치가 하나도 없었다.

    

“저기, 샌드위치 없어요?”

“응, 오늘은 다 팔렸네. 햄버거는 있는데.”  

   

효민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쩌지?”

“어쩌긴, 그냥 저거 사 가자. 햄버거. 곧 수업 시작할 거야.”  

   

햄버거를 사서 학원 계단을 후다닥 올라간 우린 GN이 앉아 있는 책상에 햄버거를 올려놓았다. GN은 햄버거 껍질을 보란 듯이 벗겨 효민이 얼굴에 문지르며 소리쳤다.

    

“야! 내가 샌드위치 사 오랬지, 이딴 햄버거 사 오랬어? 이게 샌드위치야? 샌드위치냐고? 어?”

    

학원 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얼굴이 햄버거 범벅이 된 효민은 울기 시작했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GN의 뺨을 때려버렸다. 때마침 학원 선생님이 들어와 소리 질렀다.  

   

“뭐 하는 짓이야?”

“네?”   

  

GN은 고개를 돌리며 아픈 척 연기를 시작했고 나는 학원 선생님에게 끌려갔다. 기나긴 잔소리는 결국 부모님 모셔오라는 말로 끝이 났다. 학원 출입구에는 GN과 친구 셋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효민이 앞을 막아섰다.

    

“이야, 드디어 나왔네. 맞은 건 갚아줘야지?”

     

GN이 내 뺨을 후려쳤다. 순간적으로 귀에서 소리가 나고 앞이 깜깜해졌다. 내가 비틀대자 GN의 친구들이 옆에서 히죽대며 날 골목으로 끌고 가려했다. 그 순간 뒤에 있던 효민이 소리 질렀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여기 깡패들이 괴롭혀요!”

    

주변이 술렁이자 GN과 친구들이 멈칫했다. 그 틈에 난 손을 뿌리치고 효민이와 내달렸다. 일단은 집으로 가야 했다. 제일 안전한 곳이니까.

     

하지만 GN 일당은 끈질겼다. 달리는 우리 둘을 무섭게 뒤쫓아왔다. 거리는 며칠 전부터 내린 눈 때문에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 길을 미친 듯이 달리는데 찬 바람에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잡히면 끝장이니까.

     

뒤도 보지 않고 달리고 달려 드디어 집 앞 정육점 사거리에 도착했다. 효민이와 나는 헉헉대며 숨을 골랐다.   


“효민아, 이제 다 왔어! 좀만 더 가면 우리 집이야.”

“으아, 저거 봐. 아직도 쫓아와.”  

   

맹렬하게 달려오던 GN 일당은 다행히 마트 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 가로막혀 조금 지체되었다. 순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나는 출발 준비를 했다. 장갑 낀 효민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 위를 냅다 뛰었다. 근데 뭔가 손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벗겨진 효민의 장갑을 들고 횡단보도를 반쯤 건넜다.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고음의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미끄러져 와 부딪혔다. 내 몸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더니 땅이 눈앞에 다가왔다. 몸이 축 늘어졌다.               


자유 낙하하는 삶

그녀를 만나고, 두 번의 장례식을 치렀다. 지우가 교통사고로 죽은 날, 난 그녀와 함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즐겼다. 그녀의 집에 휴대폰을 두고 와 다시 찾으러 갔던 그날이었다.  

   

병원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지우의 손을 붙잡고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른다. 장례식 내내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 지우 엄마에게도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우 엄마는 지우를 잃은 충격으로 정신이 나갔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지우 엄마는 이미 말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고 울음의 끝에 서서 이렇게 물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나는 딸이 죽고, 아내가 미쳐버린 집의 가장이었다. 한 달 후 아내는 15층 아파트 지우의 방에서 뛰어내렸다. 나는 딸과 아내가 죽어버린 집의 가장이 되었다. 그래서, 그래도, 그렇지만, 그럼에도 돈을 벌어야 했다. 직장에 퍼진 소문은 나와 그녀를 괴롭혔다.

    

“둘이 바람나더니 딸 죽고 아내까지 잘못됐다지 뭐야. 둘이 어떻게 한 거 아냐?”

“네? 어떻게 하다뇨?”

“왜 영화 못 봤어? 바람나면 자식이고 아내고 눈에 안 보여. 사랑의 힘이란 게 그런 거야.”

“에이, 무슨. 영화 같은 소리를 하고 그러세요. 사랑의 힘? 웃기네, 정말.”

    

회사 탕비실에서, 화장실에서, 식당에서 소문은 점점 가속도를 붙여 퍼져나가고 있었다. 회사 내 거의 모든 사람이 우릴 드라마 주인공으로 둔갑시켜 막장 연출을 시도했다.

    

그녀는 나를 찾아와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며 소리 질렀다. 나도 마찬가지라며 화를 냈다. 우린 많은 직원이 보는 앞에서 개싸움을 벌였고 그 사실이 사내 게시판을 도배했다.   

  

그녀는 다른 지사로 전출되었고, 난 해고되었다.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자 집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거실과 주방, 냄새나는 화장실, 안방은 폭탄 맞은 것처럼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주방에서 컵을 찾다가 머그잔 하나를 발견했다. 신혼 시절 커플로 산 머그잔이었다. 하나만 남은 그 잔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담아 지우의 방으로 갔다. 그 방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것뿐이었다.

    

이 방만큼은 청소하고 싶었다. 물에 적신 걸레를 들고 와 바닥과 책상을 닦았다. 열심히 걸레질하다 머그잔을 엎어 책상 위로 커피가 쏟아졌다. 서랍 안까지 흘러내린 커피를 닦다가 지우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에는 희한하게도 GN이라는 글자만 가득했다. 다른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GN이라는 글자만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이게 뭐지? GN?”

     

나는 갑자기 생각이 나 중력가속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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