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나는 차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다. 꽉 막힌 신천대로에 갇혔다. 걷는 것보다 느린 속도로 나아갔다. 도청교 아래를 지나니 신천 자전거길 주변으로 벚꽃이 만발해 있는 게 보였다. 평일인데도 라이딩 복장으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그 아래를 꾸준히 지나고 있었다. 팔자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요즘 매일 야근이었다. 언제부턴가 집과 회사를 오가며 꼼짝 못 하고 있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 쌓아둔 이야기를 하고 술도 마셨지만 소용없었다. 탈출을 꿈꾸며 산 로또 복권은 항상 꽝이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봄이 온 세상에 피어났다가, 여름으로 휩쓸려 가고, 가을로 물들어, 겨울에 내리는 것처럼.
어제는 부고 문자를 받았다. ‘K병원 장례식장으로. 꼭 참석 바람.’ 살면서 겪은 죽음은 항상 한 다리 건너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그땐 검은 양복을 입고 무심히 절했다. 그들의 슬픔을 조용히 보기만 했다. 어제는 달랐다. 부고에 심장이 아팠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소식을 알린 친구에게 전화했다.
“야, 이게 뭐냐?”
“뭐긴, 얼른 오기나 해.”
“진짜라고?”
“그래….”
빈소는 조용했다.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깡마른 제수씨와 중혁의 아들 앞에서 덤덤하게 절을 했다. 친구들은 먼저 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그 옆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장례식장을 나왔다. 중혁은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사라졌다.
2003년. 개미. 개미가 기어 온다. 보던 책을 계속 본다. 젠장. 신경 쓰이는 개미. 개미를 다시 본다. 저기 있던 녀석이 언제 여기까지? 순간 이동한 것처럼 내 발밑에 와 있다. 덩치 그 녀석은 이리저리 더듬이를 움직이며 바쁘게 발을 놀린다. 종잡을 수 없이 이리저리 분주하던 놈은 결국 사고 친다. 내 다리 위로 기어오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난 기어다니는 건 다 싫다. 아니 기어다니는 게 싫다. 인제 그만 기고 싶다.
엄지와 검지를 모아 조준. 발사. 개미가 날아갔다. 살아 있겠지. 충격에 잠시 멍해질 테고 좌우 분간 못 하고 이리저리 발작하며 돌아다닐 테지만 죽진 않았을 거다. 어쩌면 복수심에 불타올라 다시 이리로 진격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혼자 오려나? 아니, 동료를 불러올지도. 여왕에게 보고하고 특명을 얻어 군대를 이끌고 올지도. 갑자기 온몸이 간지럽다. 내 등에 개미 수십 마리가 들러붙는 장면이 강제로 상상된다.
책을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침 중혁이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왔다. 손에 장갑까지 끼고 애지중지 모셔 나온 그놈 자전거. 로드 자전거. 아팔란치아. 나와 함께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털어 넣어 산 귀한 녀석. 역시 비싼 자전거는 때깔부터 달라 보였다.
“오, 귀한 몸 나오셨네?”
“귀하신 몸이라고 해라.”
“지랄, 챙길 건 다 챙겼냐?”
“배낭에 다 있음. 자전거는?”
“이제 사러 가야지.”
그놈과 그놈 자전거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포즈를 취했다. 자전거도 없이 자전거 여행 가자고 했니? 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수신됐다. 나는 자전거 가게가 모여 있는 칠성시장으로 가자고 답했다. 내 말이 농담이길 바랐던 중혁은 아닌 걸 알고 한숨을 쉬었다. 찍찍찍지그지그거리는 아팔란치아를 옆에 끼고 20분쯤 걸어 칠성시장 구석에 자리 잡은 자전거 가게에 닿았다. 아디다스 츄리닝 차림의 주인아저씨가 물었다.
“자전거 사러 왔나베?”
“자전거 여행 가려고요.”
“아이고, 장하데이, 시간이 남아도나?”
“이거 얼마예요?”
“그거는 23만 원. 그거 하면 자물쇠는 그냥 줄게.”
“10만 원대 중에 쇼바 있는 거 없어요?”
“싼 거 타면 무릎 다 베린데이, 여기 이거하고 저거하고 요까지 쭈욱 봐라.”
앞바퀴를 갸웃거리며 일렬횡대로 늘어선 자전거들. 제군들, 중국 어딘가의 공장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온다고 수고가 참 많았다. 오늘 특별히 요원을 한 대 선발할 예정인데 지원자 앞으로. 역시 반응이 없다. 오호, 군대는 튀는 순간 괴롭다는 걸 니들도 아는가 보군. 선착순 오리걸음으로. 닦달하는 듯한 아저씨의 눈빛에 군대놀이를 관뒀다. 다 똑같아 보이는 자전거 가운데 빨간색과 검은색이 섞인 자전거 한 대를 꺼내 올라탔다. 프레임에 NEXT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싸구려 티 나긴 해도 뭐 이 정도면 좋지 아니한가. 내 무릎이 나갈지라도. 피 같은 돈 13만 원을 현금으로 건네는데 중혁이 거들었다.
“아저씨 아까 자물쇠 준다고 안 그랬어요?”
“저거 하면 준다 안 그랬나. 이거는 팔아도 얼마 안 남아.”
“에이 제가 여기 몇 번짼데요. 올 때마다 똑같이 말하네. 전엔 자물쇠 큰 거 줬는데.”
“니, 내 아나?”
“나 몰라요? 어제 사모님 있을 때도 왔다 갔는데? 사모님 아닌가?”
“어험! 사모님은 무신, 큼, 흠. 저거 작은 거 하나 들고 가라 저 끝에 있는 거 저거.”
역시 이놈과 오길 잘했지. 공짜 자물쇠 하나를 챙겨 들고 세팅을 마쳤다. 시험 운전에 나선다. 페달을 밟으며 공기를 가른다. 자전거 타기 좋은 신천 자전거길 쪽으로 내달려 본다. 새 자전거라 뻑뻑한 느낌이 좀 들지만 밟으면 밟는 대로 정직하게 앞으로 쑥쑥 나간다. 그래, 첫 마음이란 이런 거지. 누구나 초심은 정직하다. 하는 만큼의 결과를 약속한다고나 할까? 좀 지나 먼지를 덮어쓰고 비를 맞으면 여기저기 삐걱거릴 테지만 시작은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처럼 싱싱하고 힘차다. 중혁도 아팔란치아에 몸을 싣고 재빠른 몸놀림으로 따라온다. 신천 자전거길을 10분쯤 달리다 도청교 다리 밑에서 잠시 멈췄다. 중혁이 참았던 말을 내뱉는다.
“대책 없는 놈.”
“뭐가?”
“자전거 여행 가자던 놈이 자전거도 없이 오냐?”
“이제 있잖아? 자전거.”
“어디로 갈 건데?”
그러게. 참 대책 없다. 어디로 갈 건지도 정하지 않고 지금껏 내달렸군. 어디로 갈까? 자전거 타고 산으로 가는 건 영 아닌 것 같다. 그래, 그럼, 바다지. 대구 촌놈은 본능적으로 바다에 이끌린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바다. 일단 동쪽으로 계속 가 보자. 포항까지 가서 그때 다음 일을 생각하자. 심각하게 한심한 얼굴로 아팔란치아를 닦아대는 중혁의 궁둥이를 때리며 목적지를 선포하고 자전거에 올랐다. 아팔란치아는 내가 새로 산 자전거보다 5배는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비싸니까 가볍다. 비싸니까 잘 나간다. 비싸니까 중혁이 애지중지 닦아댄다. 그 자전거를 사기 위해 중혁은 이번 여름방학 두 달 가운데 한 달을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물론 나도 같이.
그 공장은 화학약품 냄새가 나는 공단의 한쪽 구석에 자리한 작은 이불공장이었다. 아침 7시면 승합차가 나타나 나와 중혁을 납치하듯 픽업해 공장 앞에서 풀어주었다. 우린 주 6일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공장 구석에 산처럼 쌓여 있는 이불 뭉치들을 들고 와 이불 기계를 돌렸다. 이불 기계는 우리가 죄수처럼 형틀에 고정한 이불 뭉치를 사정없이 두드리며 바느질 해댔다.
‘다따다따타타타타 타타타타 타다타다타.’
기계가 미친 듯이 누비 바느질을 끝내면 우린 이불을 예쁘게 접는다. 이불 가방에 담는다. 지퍼를 닫는다. 다른 구석으로 던진다. 다시 죄수 같은 이불 뭉치를 들고 와 형틀에 고정한다. 버튼을 눌러 다다다 소리를 듣는다. 예쁘게 접는다. 담는다. 닫는다. 던진다. 다시 죄수를 데려온다. 그렇게 하루에 80~100개 정도 작업한다. 작업을 마치면 손아귀가 아프다. 가방에 결과물을 쑤셔 넣고 지퍼를 닫는 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고 문 닫는 것과 같다. 말은 쉽지만, 해보면 욕이 절로 나온다.
그 와중에 중혁은 공장장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불 기계 돌리는데 소질이 있단다. 처음엔 나도 중혁도 똑같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포장 일을 맡았지만, 공장은 역시 분업화다. 중혁은 주야장천 기계만 돌려대며 죄수를 괴롭혔고, 나는 주야장천 코끼리만 냉장고에 넣어댔다. 이 대목에서 가장 짜증 났던 건 내가 중혁을 부러워했다는 사실이다. 똑같이 돈 받는데 누군 편하게 기계 버튼 누르고 누군 코끼리 때문에 손아귀가 아프다니. 나중엔 중혁이 공장장으로 빙의해 나에게 빨리 빨리하라고 재촉까지 한다. 뭐, 하라면 해야지. 망할 놈의 코끼리. 아니 죄수. 아니 이불.
그래도 중혁과 나의 공장 생활은 할 만했다. 아침 6시 기상, 7시 승합차 탑승, 8시 작업 시작, 점심 먹고 작업 또 시작, 오후 3시쯤 빵과 우유도 먹는다. 6시 퇴근. 갈 땐 승합차가 없다. 알아서 집에 간다. 그렇게 꼬박 보름을 하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신입 장교처럼 FM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중혁은 이제 콧노래를 불러가며 기계를 돌렸고 난 몇 번의 손길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었다. 일이 익숙해지니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비밀 이야기하듯 주변 눈치를 살핀 후 중혁에게 속삭였다.
“야, 근데 좀 이상하지 않냐?”
“뭐가?”
“우리 출근하면 작업한 이불들이 왜 이렇게 많이 쌓여 있냐? 한 300개 넘겠는데?”
“아직 몰랐냐? 저거 외국 애들이 밤에 작업한 거잖아.”
“외국 애들? 우리 퇴근할 때 교대하러 오는 사람들?”
“그래, 공장장 말로는 게네들 우리 오기 1시간 전까지 작업하다 간대.”
“그럼, 몇 시간이냐? 12시간? 근데 300개씩 해?”
“그러니까 빨리빨리 좀 해라. 공장장 온다.”
술 냄새 풍기며 나타난 공장장은 중혁에게 작업 상황을 보고 받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퇴근 10분 전, 기계를 멈추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맥주나 한잔하자고 중혁을 꼬시고 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페이’라는 필리핀 여성이 울면서 뛰쳐나왔다. 작업복 상의가 다 뜯어진 채로 공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중혁이 혀를 찬다.
“쯧쯧, 공장장 사고 쳤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신고하면 저 사람들 다 추방될걸.”
“불법 체류?”
“그르니까 술 처먹고 저런 짓까지 하지.”
“쓰레기네. 아주.”
쓰레기 공장장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을 연출했고, 한낱 아르바이트생인 우린 뒤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만 토했다. 날마다 죄수는 바느질 당하고 코끼리는 냉장고에 갇혔다. 그렇게 한 달을 버텨 80만 원을 받았다. 난 50만 원을 생활비와 데이트비로 남겨두고, 중혁은 아팔란치아를 샀다. 나머지 30만 원 가운데 10만 원은 동아리 후배들에게 허세를 부리며 탕진했고, 20만 원으로 자전거 여행을 결정했다. 우리의 산수는 그렇게 단순했다. 공허했다. 수천의 죄수, 수천의 코끼리, 수만의 욕설을 쏟아부으며 아르바이트했던 우린 어딘가로 떠나야 했다. 구멍을 메우기 위해.
달린다.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고 땀이 흐른다. 자전거 여행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비실비실한 청년 둘이 세 시간째 자전거를 타고 있다. 도청교에서 출발해 대구를 벗어나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국도를 타고 하양을 지나 영천 쪽으로 가는 중. 날이 어두워졌다. 자전거를 살 때가 이미 네 시쯤이었으니 어두워질 때도 됐다. 출발할 때만 해도 앞장서 가던 나는 많이 뒤처졌다. 역시 비싼 자전거와 싸구려 아니 보급형 자전거는 성능 차이가 크다. 게다가 운전자의 성능도 중혁 쪽이 좀 낫다. 난 두 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 사타구니가 아파 괴로워하고 있었다. 젠장. 잠시 쉴 때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자전거 안장을 감쌌다. 그러고 나니 잠시 탈만 했는데 또 아프기 시작했다. 자전거 여행은 ‘사타구니 통증과의 결투’라는 동아리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땐 그저 복학생의 썰렁한 농담인 줄 알았는데 결투가 시작되니 그 말의 진실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야, 좀 쉬었다 가자.”
“벌써?”
“사타구니 안 아프냐?”
“불쌍한 중생이여, 난 패드가 달린 속바지를 입어주었지.”
“뭐? 패드? 설마 너?”
“설마 뭐?”
“누나 꺼 훔쳤냐?”
“불쌍한 짐승이여, 자전거용 속바지라는 아이템이 있다네. 쯧쯧.”
“그런 건 또 언제 샀대?”
다시 출발이다. 내 자전거엔 후미등이 없어 중혁이 내 뒤에서 달리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주변 풍경이 묘했다. 어두컴컴한 산, 줄줄이 이어지는 가로등, 가끔 보이는 마을 불빛 그리고 쌩하니 옆구리를 통과하는 차들. 가끔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의 사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 흘리며 한쪽 구석에 버려진 노루도 있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눌려 납작해진 이름 모를 동물도 있었다. 나도 저렇게 될까 두려웠다. 차에 치이고 길에 쓰러지면 나도 저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구급차 정도는 와서 날 데려갈 테지만 죽고 나서는 아무렇거나 간에 다 쓸모없는 일이다. 어둠 속을 달릴수록 자꾸 페달이 헛도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가고 있는데, 가는 느낌이 드는데 사방은 어둠이었다. 어둠을 계속 뚫으며 달려 봐도 돌아오는 건 통증뿐. 사타구니는 쓰리고 허벅지와 무릎에 무리가 왔다. 배도 고프고 둘 다 지쳐 영천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 김밥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더니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더 이상의 야간 주행은 무리일 듯해 맞은편 찜질방에서 밤을 보냈다. 배 나온 아저씨의 지독한 코골이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발 냄새가 나는 찜질방 바닥에 얼굴을 붙인 채 잠이 들었다.
눈 감고 1초 후 눈 뜨니 아침이 되어 있었다. 놀라운 타임슬립. 침 흘리는 중혁을 흔들어 깨우고 찜질방을 나서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사타구니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아무래도 처음이라 좀 놀랐나 보다. 오늘은 잘 버텨주길. 중혁이 먼저 출발하고 난 뒤따라 출발했다. 찜질방 아래 편의점에서 사 먹은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의 힘으로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아침 공기는 적당히 시원하고 맑아 자전거 타기 딱 좋았다. 어제와 달리 희망의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종종 새소리도 들렸다. 이대로 달리면 포항까지 가는 건 금방일 듯했다. 그래, 이 맛에 자전거 타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발을 놀렸다. 앞서가는 중혁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놈은 내가 페달 열 번을 밟을 때 일곱 번 정도로 해결하는 듯 보였다. 조금 밟아도 쑥쑥 나가는 아팔란치아. 아직 이름도 정하지 못한 내 자전거는 그에 비해 무겁고 둔했다. 중혁과 나란히 달리려면, 마음먹고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줘야 했다. 뭐 갓길이 좁아 그럴 일은 거의 없었지만.
중혁과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이놈은 옛날부터 돈 모아서 뭘 사는 걸 좋아했다. 컴퓨터도 그렇고 CD플레이어, PC게임, 잡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같은 걸 사들였다. 마치 물건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듯이 사는 데 집착하는 놈이었다. 물론 쇼핑 중독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동차 회사에 다니시고,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시는 평범한 집의 평범한 아들인데 쇼핑 중독이 가당키나 한가? 그저 용돈 열심히 모아 사고 싶은 걸 사는데 인생의 목표를 둔 놈이었다.
그런 중혁에게도 비범한 능력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거래 능력이다. 마치 상인의 후예처럼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없었다. 주변에서 수완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중학생 때 친구들에게 사채를 빌려주고 이자로 매점 간식들을 얻어먹은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난 거래 능력이 부족해 늘 중혁을 데리고 가 내 문제들을 해결했다. 때론 중혁의 사채를 쓰고 이자로 간식을 지급하는 고객이 되기도 했고.
쉬고 달리길 반복한 지 4시간쯤 지났다. 이제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길바닥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너무 더워서 잠시 그늘에서 쉬기로 했다. 경주를 지났으니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포항이다. 물론 바다를 보려면 포항이라는 행정구역이 얼마나 넓은지 몸소 체험해야겠지만 어쨌거나 포항이 코앞이란 말. 그늘에 앉았다. 점점 거지꼴이 되어가는 서로의 행색을 확인했다. 미지근해진 콜라를 나눠 마셨다. 역시 콜라다. 갑자기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혁이 마지막 한 모금을 처리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2시간쯤 달렸을까? 갑자기 숨 막힐 것 같은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그동안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 있었지만, 이번만큼 긴 오르막은 없었다. 페달을 아무리 밟아대도 좀처럼 오르막이 끝나질 않았다. 시지푸스 신화처럼 자전거를 오르막의 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 중이었다. 꼭대기에 오르면 다시 내려가야 할 터인데. 아무튼 온몸의 에너지를 짜내어 기나긴 오르막 코스를 끝내고, 이제 내리막을 즐길 차례다. 나보다 땀을 세 배쯤 더 흘린 중혁은 오르막이 끝나자, 해방감에 어쩔 줄 몰라 정신을 놓았다. 페달에서 발을 떼고 소리를 지르더니 쌩하니 내려갔다. 미친 듯이 내려가던 아팔란치아는 아스팔트와 갓길 사이의 턱에 절묘하게 바퀴가 걸렸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아팔란치아가 넘어지고 중혁이 잠시 날았다. 추락했다. 뒤따르던 나는 겨우 브레이크를 밟아 자전거를 세운 뒤 중혁에게 달려갔다.
“야! 괜찮아?”
“젠장. 괜찮아. 괜찮아.”
“피 나는데?”
“어디?”
내려가던 자세 그대로 날아 앞으로 꼬꾸라진 중혁은 피를 질질 흘렸다. 얼굴 한쪽과 한쪽 팔 그리고 한쪽 무릎에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중혁을 그늘에 앉혀두고 아팔란치아를 수습해 세워뒀다. 국도 중간이라 택시도 없었다. 119에 전화하는 수밖에. 사고 신고를 하고는 갖고 있던 손수건으로 중혁의 피를 지혈했다. 20분쯤 지나니 포항 119 구급대의 구급차가 도착했다. 응급처치를 끝내고 중혁과 나는 구급차에 실려 포항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선 중혁의 부상이 심한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얼굴에 상처가 나 흉터 없이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란다. 드레싱을 하고 약과 연고를 처방받아 병원을 나왔더니 밤이었다. 얼굴과 팔, 무릎에 하얀 천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절뚝거리는 중혁을 보니 미안함이 올라왔다. 멀쩡한 놈을 괜히 자전거 여행 따위에 끌고 와서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중혁은 병원 앞 풍경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차 타고 편하게 왔네. 내 덕인 줄 알아. 인마.”
“또 지랄한다. 구급차 타고 왔는데, 좋냐?”
“배고프다. 밥이나 먹자.”
그래, 다친 건 다친 거고, 일단 배고프니 뭐라도 먹자.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도로를 목마르게 달려와서 그런지 시원한 게 당겼다. 중혁이 물회 콜을 외쳐 나도 콜콜콜을 외치며 물회 집으로 가 한 그릇 시원하게 먹었다. 먹고 나니 중혁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거지 같은 얼굴로 잘도 후루룩댄다고 쪼아댔다. 난 한마디만 하고 계속 후루룩거렸다.
“자네도, 거울 한번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