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전히 괜찮다면 (1)

by 서효봉




땡볕의 공사장에 어설프게 안전모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눈살을 찌푸리던 그는 여기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거친 기계음을 토해내던 중장비들이 멈췄다. 마지막까지 꿈틀대던 포클레인마저 땅에 고개를 박았다. 작업반장은 현장소장에게 뛰어갔고, 현장소장은 공무원에게 날아왔다. 나머진 오래된 식당 부엌의 바퀴벌레들처럼 그늘로 숨어들었다. 기탁은 작업복 조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정달은 현장 사무실에서 등받이 없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꺼내와 내려놓았다.

“앉아, 오래 걸릴 거 같은데.”

기탁은 의자에 앉아 땀에 젖은 각반을 풀었다. 흙투성이 안전화도 벗었다. 다리를 들어 발바닥 박수를 두어 번 치고 발을 말렸다.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아, 형님도 한 대?”

“아니, 난 끊었어.”

“이 좋은 걸 왜?”

“너도 끊어, 담뱃값도 비싼데.”

기탁은 담배를 세게 한 모금 빨고 꽁초가 수북한 식용유통에 던져 넣었다. 도면을 살피던 공무원은 한 시간 넘게 어딘가로 전화했다. 사진도 찍었다. 현장소장은 건설사 직원과 함께 공무원 뒤에 붙어 있다가 뭐라고 물어보면 재빨리 대답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인부들이 수군거렸다. 묘한 말이 돌았다. 사람이 죽었다, 부실시공을 조사하러 왔다, 삼국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같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종료되고 작업반장이 돌아왔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파트 공사 대지 한가운데 있는 느티나무 때문이었다. 대충 봐도 예사롭지 않은 보호수였다. 원래 건설사는 보호수를 인근 공원으로 옮겨 심을 예정이었다. 관할 구청에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으나, 갑자기 산림청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될 뻔했다. 그래도 다행히 잘 넘어갔다. 작업반장 덕에 고정으로 일하던 기탁과 정달은 공사가 중단됐다면 또 어딘가로 파견되거나 한동안 쉬어야 했을 것이다.

일이 다 끝나고 사무실에 안전 장비를 반납했다. 저녁 먹으러 근처 닭갈비 집으로 갔다. 식당 문에 ‘임시휴업’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른데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십니까?”

“아, 신 기자님?”

이 년 전, 기탁과 정달이 주방용품 공장에서 일할 때 알게 된 기자였다. 그때 공장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석 달이나 월급을 못 받고 있었다. 우연히 사정을 알게 된 신 기자가 신문에 특집 기사를 실어 주었다. 덕분에 노동청에서 현장 조사를 나왔고 밀린 월급이 바로 나왔다. 기탁은 신 기자와 악수하며 물었다.

“신 기자님이 여기 어쩐 일이요?”

“저녁 먹으러 왔어요.”

“혼자요?”

“후배 놈이 갑자기 못 온다고 해서요.”

“근데, 임시휴업이랍니다.”

“허, 참. 하필 오늘.”

“여전히 술 좋아하시죠? 오랜만인데 한잔?”

“그럴까요?”

“형님은?”

기탁과 신 기자의 시선이 정달을 향하자, 그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빈속인데, 소주는 그렇고 맥주나 한잔합시다.”

셋은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시원한 캔맥주를 사서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신 기자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더니 크으으 소리를 냈다.

“근데, 두 분 다 공장은 관두셨습니까?”

“말도 마요.”

십 년 동안 일했던 공장이 화마에 휩싸여 하루아침에 문 닫았다. 기탁은 그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떠들었다. 정달은 줄곧 맞장구만 치다가 신 기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기자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맨날 똑같죠. 지겨워요. 뭐 재밌는 거 없습니까?”

신 기자의 물음에 기탁이 시동을 걸었다.

“오늘 좀 황당한 일이 있긴 했는데….”

보호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자 정달이 테이블을 정리하며 일어났다.

“아이고, 이만 들어갑시다. 벌써 여덟 시가 넘었네.”

그렇게 다들 각자의 집으로 갔다.

일주일 후, 공사 현장에서 두 사람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작업반장이 사무실로 호출해서 가보니 현장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들, 기자 만났다며?”

기탁은 소장의 질문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달은 눈을 감았다.

“저희 뒷조사도 하시나요?”

“본 사람들이 많아.”

“근데, 그게 왜요?”

소장은 지난주에 찾아온 공무원에게 선물과 돈까지 몰래 쥐여줬다. 건설사도 최대한 빨리 보호수를 옮겨 심을 예정이었다. 근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산림청에서 전화가 왔다. 그때 그 공무원이 불같이 화를 내더니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다고 통보했다. 어떤 기자 놈이 보호수에 관한 기사를 터트리는 바람에. 기탁은 소장의 말에 기가 차서 대꾸했다.

“아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됐고, 둘 다 그만 나와도 돼.”

“예?”

소장은 할 말 다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작업반장을 한 번 째려보더니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번엔 작업반장이 입을 열었다.

“거, 황 씨, 임 씨, 둘 다 왜 그랬어?”

기탁은 누명 쓴 사형수 같은 표정으로 항변했다.

“아니라니까, 오해라니까요.”

“나까지 곤란해. 지금. 어?”

“아, 정말로.”

얼굴이 벌게진 기탁은 작업복 조끼를 세차게 흔들며 열을 식혔다. 정달은 반장에게 그 기자가 신 기자가 맞냐고 물었다. 반장은 기자가 누구든 이제 나올 필요 없다며 나가버렸다. 기탁은 휴대폰을 꺼내 신 기자에게 전화했지만 ‘전원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라는 안내 음성만 듣고 고개를 떨궜다.

두 사람은 일을 마치고 편의점으로 갔다. 소주를 사서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담배를 꼬나문 기탁이 종이컵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어쩐지, 그 나무 싸늘하더라.”

“왜?”

“왜 그 있잖아, 형님. 마을 지키는 당산나무 같은?”

정달이 테이블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되물었다.

“당산나무?”

“그래, 동네 수호신 같은 나무. 저게 화가 났는지 근처 가면 오싹해.”

“하기야, 마을을 싹 밀어버렸으니.”

“아, 한동안 일하겠나 싶다. 형님.”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달은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다른 일이라도 찾아봐야지.”

“인력사무소에도 벌써 소문 다 났을걸.”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으니까.”

“쯧, 기분 더럽네.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소주 네 병을 마셨다. 집으로 걸어갔다. 비틀거리며 걷고 또 걸었다.




기탁은 공사 현장에서 잘린 후 한동안 푹 쉬었다. 그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길 기다렸다. 쉬고 싶어 쉰 건 아니었지만 쉬니까 편했다. 한 달 정도 지나 다시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그 좁은 공간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불경기로 폐업한 곳이 많아져서일까?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지금 신청해도 다음 주쯤에 자리가 날 것 같단다.

할 수 없이 인력사무소에서 그냥 나왔다. 원룸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길거리 푸드 트럭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게 보였다. ‘타코야끼’라는 일본식 문어빵을 파는 푸드 트럭이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장사가 꽤 되는가 보다. 트럭 한쪽에 붙은 ‘천만 원으로 시작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이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기탁은 한참 동안 그걸 바라봤다. 원룸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서 천만 원이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철없이 뛰어다녔다.

다음 날 오전, 현수막에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했다. 젊은 아가씨가 받았다. 그녀는 본사에서 상담 후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며 주소를 알려줬다.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클로버 오피스텔이었다. 널찍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갔다. 양 부장이라는 사람이 나와 맞이했다. 그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꽉 끼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사장님, 잘 오셨습니다.”

“부장님, 진짜 천만 원이면 되나요? 트럭값도 안 나올 것 같은데.”

“아, 물론 차와 시설은 임대해 드리는 거고요. 보증금 명목으로 천만 원만 받는 겁니다. 사업하시면서 돈 벌면 그때 사시면 되고요.”

좀 더 고민해 보려고 했지만 딱 하나 남은 푸드 트럭을 누군가 계약하러 온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졌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천만 원을 계좌이체 했다. 주방용품 공장 다닐 때 만들어 둔 신용카드로 급하게 대출받은 돈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푸드 트럭을 인도받기로 한 날이었다. 기탁은 하루 종일 휴대폰만 노려보고 있었지만, 곧 국지성 호우가 쏟아질 거라는 재난 문자만 받았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다음 날, 양 부장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젊은 아가씨에게 전화했다. 없는 번호였다. 본사 사무실이 있던 클로버 오피스텔로 뛰어갔다. 사무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굳게 닫힌 문에 걸린 임대 표지판이 기탁을 비웃었다. 상황을 직감하고 경찰서로 달려갔다. 사건 접수는 했지만, 이런 형태의 사기는 잡기 어렵다는 이야기와 집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그게 다였다.

원룸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천장만 삼십 분 넘게 노려봤다. 기탁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등신 같은 새끼. 나이 사십에 사기나 당하고. 그냥 죽어라. 천만 원이면 몇 달을 꼬박 공사판에서 뒹굴어도 만지기 힘든 돈인데. 양인지 소인지 그 부장 새끼 가만 안 둔다. 그는 양 부장을 때려눕히고 발로 짓밟는 상상을 했다. 때렸던 데를 때리고 또 때렸다. 피가 튀었다. 근데 덩치가 커서 되려나. 어딘가에 묶어 놓고 돈 내놓을 때까지 각목으로 패는 걸로 하자. 내장을 꺼내 줄 넘기를 한 다음 전골을 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양 부장, 이 개새끼. 방바닥이 서서히 꺼지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회전하고 다시 왼쪽으로 회전했다.

대출금 상환 독촉 전화를 세 번째 받은 날, 기탁은 덜컥 겁이 났다. 그들은 무슨 법 조항을 들먹이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가압류, 강제집행 같은 단어가 목을 졸랐다.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누구한테 빌리나. 고민 끝에 공장 다닐 때 함께 일했던 시덕에게 전화했다.

“덕아,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아, 예, 형님. 잘 계시죠?”

“사업한다는 소리 들리던데?”

“뭐 작게 하고 있어요.”

“잘 돼?”

“요즘 경기 안 좋은 거 알잖아요.”

“알지, 알아. 그래도 넌 수완 좋으니까.”

시덕이 목소리 톤을 바꿨다.

“형, 부탁할 거 있죠? 분위기 보니까 딱 나오네.”

“눈치는 여전하네. 형이 급해서 그러는데….”

“네.”

“천만 원만 빌릴 수 있을까?”

“천만 원? 뭐 때문에 그러는데요?”

“카드 대출 때문에 전화가 자꾸 온다. 몇 달 바짝 일하면 금방 갚는데.”

“카드요? 형이 뭐 한다고 카드 대출까지 써요?”

시덕의 말에 이번엔 기탁이 목소리 톤을 바꿨다.

“뭐, 그런 거는 몰라도 되고.”

“지금은 좀 바쁘고, 있다가 알아보고 문자 보낼게요.”

시덕은 W파이낸셜이라는 회사의 전화번호를 보내줬다. 아는 사람이 운영하고 깨끗한 곳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문자와 함께. 시덕을 믿고 돈을 빌렸다. 그 돈으로 카드 대출금을 상환했다. 속이 후련했다. 기탁은 앞으로 카드 대출은 절대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달 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중견 건설사 줄폐업까지 이어져 한 달에 겨우 네다섯 번 정도만 일을 할 수 있었다. 생활비가 모자라 오전까지도 잘 썼던 체크카드가 오후엔 잔액 부족으로 결제되지 않기도 했다. 신용카드는 정지된 지 오래였다. 원룸은 보증금에서 월세를 제하고 있었다. 그 원룸으로 불청객들이 찾아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초인종을 눌렀다. 기탁은 원룸 비디오폰으로 그들을 봤다. 쾅, 쾅, 쾅, 쾅.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건물 전체에 사내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소란은 십 분쯤 지나서야 겨우 사그라들었다. 처음 그들이 찾아왔을 땐 시덕에게 전화해 돌려보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덕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집에 아무도 없는 듯, 죽은 듯이 있었다. 밖에 나갈 땐 비디오폰으로 문밖 상황을 살펴야 했다. 집에 들어갈 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편의점에서 사 온 소주를 입 안으로 털어 넣으며 멍하니 벽만 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정달이었다. 기탁은 술에 취해 말했다.

“아, 씨. 사는 게 왜 이런지 모르겠다. 형.”

“많이 마셨네.”

“그래, 형. 내가 좀 마셨다.”

“왜 혼자 마시고 그래.”

“내가, 안 마시고 싶은데. 내가, 진짜로.”

술주정을 부리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정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탁아, 오늘 저녁에 밥이나 같이 먹자. 솔빛식당으로 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