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의 발견

by 서효봉

‘삐비비빅, 삐비비빅’


인재는 알람 소리에 움찔했다. 살아 있다. 가까스로 시계까지 기어가 터치다운. 달콤한 정적이 흐른다. 5분 후, 다시 고막 테러 알람이 독촉한다. 정확한 조작으로 알람을 해제하지 않으면 일정 간격으로 울린다고 해서 구입한 스누즈 알람시계는 봐주는 법이 없다. 안 일어나면 이 저주스러운 소음으로 평생토록 고막을 괴롭혀주겠다는 듯 울어댄다. 그래, 정확한 조작. 눈을 감은 채 아주 확실하게 손톱을 세워 건전지를 빼 버렸다.


딱풀 붙여놓은 것 같은 눈꺼풀을 개방하고 드디어 빛을 맞이한다. 그래 봐야 보이는 건 천장밖에 없다. 천장엔 인재가 붙여둔 명언 종이들이 난잡하게 붙어 있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린다. 미국 대통령 링컨 형님은 ‘늘 명심하라. 성공하겠다는 너 자신의 결심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이라 하셨고, 영국 총리 처칠 형님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필요한 일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라고 하시었다. 눼. 눼. 명심 또 명심합죠. 근데 진짜 성공이라는 게 있긴 합니까? 형님? 요즘 따라 생각이 통제가 안 된다.


이불이란 걸 접고, 세수란 걸 한 다음, 머리란 걸 감았다. 가방에 참고서와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섰다. 방학이지만 빨리 가야 한다. 동네 도서관은 늘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 하잖아. 문 열기 전부터 도서관 입구에서 줄 서야 한다니. 오늘도 늦었다. 예감이 좋지 않다. 달리고 달려 도서관 입구에 도착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줄은커녕 아무도 없다. 뭐냐. 이 분위기는? 설마? 그래. 설마다. 설마는 현실이 됐다. 빨간색 두 글자가 도서관 입구에 가지런히 붙어 있다. 휴. 관. 이란다. 입이 저절로 움직인다.


“망할….”


목적지 없이 터덜터덜 걸었다. 집에선 집중이 안 되고, 카페를 가자니 커피값이 부담스럽다. 어디 마음 놓고 공부할 만한 데 없나?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데도 당최 도와주질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딘지 모르는 길로 와 버렸다. 너무 골목길로 들어와서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실행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은 맞는데, 너무 많이 와 버렸다. 조용한 주택가 쪽 어딘가에 들어온 것 같다. 큰길로 나가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공장에서 찍어 낸 것처럼 똑같이 생긴 개인 주택들이 양옆으로 가득하다. 주택들 사이로 유일하게 하얀 간판이 하나 보였는데, 그 간판은 얼마 전에 설치한 듯 깨끗했다.


‘소설가의 서재’라는 글자가 진지한 궁서체로 적힌 그 간판은 어떤 주택 대문 앞에 달려 있었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가 보았는데 개인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동네 책방인 듯했다. 일반 가정집에다가 카페를 차린 이모네 가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대문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유리문을 달았다. 그 안으로 아담한 정원과 카페용 테이블 2개, 의자가 4개쯤 보였다. 건물은 얼마 전에 리모델링을 한 것처럼 세련된 감각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1층 벽면 전체를 통유리로 만들었고, 2층도 절반 정도는 유리로 디자인한 듯하다. 언뜻 보기에도 돈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인재는 휘파람을 불며 혼자 중얼거렸다.


“휘이익, 무슨 동네 책방이 이렇게 고급지냐?”


유리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소설가의 서재는 오로지 소설책만 파는 동네 책방입니다. 책 구입을 원하시면 누구나 들어오시면 됩니다. 들어와서 둘러보고 가세요. 서재 안 작업실은 소설가 지망생이거나 소설가라면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재 주인장에게 물어보세요.

소설책만 파는 책방이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게다가 소설가 지망생이면 작업실을 무료로 쓸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인재는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라 그냥 고등학생이다. 다만 공부할 공간이 없다는 게 고민인 가련한 고등학생. 이 가련함은 용기로 환원되었고, 이 자리에서 바로 소설가 지망생이 되기로 했다. 물론, 무늬만.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을 지나 건물 출입문을 열었다.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서재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풍경이 나타났다. 벽면이 온통 책장으로 되어 있고, 그 책장에 책이 가득했다.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은 곳까지 책이 단정히 꽂혀 있었다. 이게 정말 다 소설이란 말인가? 공간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천장은 높았고, 고급스러운 원목 인테리어는 깔끔해 보였다. 책방 가운데에 자리 잡은 계산대에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손님이 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만 본다. 인재는 그 남자 그러니까 선재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작업실을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책을 내려놓고 일어선 선재는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 혹시 소설가세요?”

“소설가는 아니고, 소설가가 되어 볼까 생각중입니다만….”


선재는 종이 한 장과 볼펜을 인재에게 내밀었다. 종이에는 <작업실 사용 신청서>라는 제목과 함께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어 넣는 표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 신청서 하나 작성해 주세요. 뒷면에 주의 사항도 읽어보시고요.”


신청서에 이름, 주소, 나이를 차례로 적고 나니 직업이 문제였다. 직업이 뭐더라? 그래, 뭐, 학생이지. 이것도 직업이라 쳐준다면 말이다. 미성년자는 안 된다고 할 것 같아 대학생이라 적었다. 직업 바로 아래에는 소설가인지 아니면 지망생인지 묻는 칸이 있었다.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글자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곤 뒷면을 대충 훑어보았다. 작업실을 이용하는 조건으로 매주 무슨 모임에 참석하라는 내용과 연애 금지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무료라는데 까짓 모임 정도는 참석할 수 있다. 연애는 하라고 해도 못 하니 뭐 걱정할 바 아니고. 나머진 뭐 그냥 일반적인 주의 사항이었다. 조용히 하라는 둥 먹는 건 안 된다는 둥 그런 뻔한 것들. 인재는 선재에게 신청서를 건네주며 물었다.


“작업실은 언제부터 쓸 수 있나요?”

“바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쓰시겠어요?”

“예. 그러고 싶습니다.”


선재는 잠시 노트북에 뭔가를 입력하더니 나에게 No.7이라고 적혀 있는 카드키를 줬다.


“2층으로 올라가시면 작업실이 있어요.”

“아, 네.”

“7번 방에서 작업하시고, 카드키는 나가실 때 반납해 주세요.”

“네. 끝인가요?”

“예. 주의 사항만 잘 지켜주시면 됩니다. 운이 좋으시네요.”

“네?”

“이게 마지막 남은 작업실이었거든요.”

“아, 네.”


생각보다 쉬웠다. 공부할 공간을 이렇게 쉽게 구하다니. 도서관 자리를 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카드키를 손에 쥐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1층 천장이 높아서 그런지 2층까지 한참 걸리는 것 같았다. 2층이라지만, 3층쯤 되는 높이다. 넓은 복도 양옆으로 번호가 적힌 문들이 늘어서 있고, 복도 끝에는 탁 트인 공간이 있었다. 가정집 거실처럼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 있었는데 아마 모임 공간으로 쓰는 모양이다. 인재는 배정받은 7번 작업실 문에 카드키를 꽂았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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