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혁과 준수

by 서효봉

동혁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이봐,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끌고 가면 안 되지.”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는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준수가 동혁의 입에 물려 있는 담배를 낚아채며 한마디 한다.


“여긴, 금연이오. 친구. 주의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쫓겨나는 거 모르는가?”


라이터도 못 찾고 담배까지 뺏긴 동혁은 상실감에 중얼거린다.


“그래, 근데 담배도 마음대로 못 피는 게 무슨 작업실이야. 감옥이지.”

“이보게. 이만하면 좋은 감옥 아닌가?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지.”


소파에 등을 기대고 늘어져 있던 동혁은 고쳐 앉으며, 준수의 소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준수가 쓴 소설의 허점을 찾아 비판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준수는 동혁의 그 어떤 비판도 다 논리적으로 막아낸다. 동혁은 창으로 계속 찔러 대지만 준수는 방패로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그 특유의 도인 같은 말투를 뽐내며.


그렇다고 해서 항상 이야기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오고 가는 건 아니다. 때로는 흥분한 동혁이 테이블을 내려치고, 열 받은 준수가 입을 꾹 닫고 대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상대방이 분통 터지는지 자동으로 알게 된다. 물론 일상적인 이야기라면 요령껏 피해 가며 이야기하겠지만,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둘 다 고집불통이다.


오늘은 준수가 쓴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위암에 걸렸다는 게 문제다. 동혁은 술도 못 마시고 채식만 하는 남자 주인공이 위암이라는 건 기만이라 역설했다. 주인공이 사실 담배와 마약을 일삼았고 폐암에 걸린 걸로 하는 게 어떻겠냐며 준수를 쿡쿡 찔렀다. 준수는 위암의 상징성이 소설의 주제를 형상화한다며 맞섰고, 담배와 마약은 용납할 수 없다고 철벽을 쳤다. 동혁은 술 안 먹고 채식해도 위암 걸리는 세상을 상상하더니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를 찾으며 입을 연다.


“폐암이 아니라면 내가 암에 걸릴 것 같아서 그래.”


준수가 다시 담배를 낚아채려 했으나 이번엔 실패했다. 절묘하게 피한 동혁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세게 빨려는데 어디서 손이 하나 날아와 담배를 낚아챈다. 동혁은 두 번째 상실감에 눈을 치켜들었다가 꾸벅 인사했다. <소설가의 서재> 주인장이었다.


“동혁씨 실내에선 금연이에요.”

“예, 미안합니다.”

“이번이 두 번째네요. 한 번 더 주의 사항을 어기면 알죠?”

“예, 예”


<소설가의 서재> 주인장인 영래는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 좋은 웃음은 너그럽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들어 있다. 직접 이야기해 보면 절대 말랑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지만, 나이를 가늠하자면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경계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영래 옆엔 동혁과 준수 둘 다 처음 보는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경고를 먹은 동혁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묻는다.


“근데 이 청년은 누구죠?”


영래는 동혁과 준수에게 인재를 소개했다. 소설가 지망생으로 오늘부터 이곳 작업실을 사용할 예정이란다. 동혁과 준수는 인재와 악수했다. 영래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말했다.


“오늘 좀 바빠서 그런데 동혁씨, 준수씨가 서재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동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예, 예. 영감님. 걱정 마세요.”


영래가 떠나고 동혁과 준수는 인재와 마주 앉았다. 동혁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긴 어떻게 알게 됐어요? 사람들 잘 모르는 곳인데”

“그냥 길 가다, 우연히 봤어요. 간판이 눈에 보여서요.”


동혁과 준수가 동시에 말했다.


“운이 좋았구만!”


인재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두 번이나 운이 좋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동혁은 세 번째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말했다.


“우린 여기서 작업한 지 6개월쯤 됐죠. 이만한 곳이 없지. 공짜에 시설도 좋고.”


준수가 동혁의 담배를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지며 말했다.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인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 주인분은 어떤 분이세요? 왜 이런 걸 하시는지….”


동혁과 준수는 아주 장황하게 자신들이 소설가의 서재에 오게 된 과정을 인재에게 설명했다. 인재가 그 주인장의 정체가 뭐냐고 다시 물었지만, 차차 알게 될 거라는 말만 했다. 등단한 지 5년쯤 되었다는 두 소설가는 반강제로 인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설이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한바탕 강의를 하다 또 자기들끼리 토론에 불이 붙었다. 흥분한 동혁이 담배를 꺼내고, 도인 같은 말투의 준수가 담배를 빼앗았다. 쓰레기통엔 멀쩡한 담배가 쌓여 갔다. 인재는 슬그머니 자기 작업실로 향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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