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경과 루키

by 서효봉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던 희경은 눈을 감았다. 오랜 시간 모니터만 바라보니 눈이 뻑뻑해졌다. 심한 안구건조증. 손으로 비비면 묘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게 내 눈 맞나? 양 손바닥을 맞대고 빠르게 비비다 눈에 갖다 댔다. 이렇게 하면 잠시나마 눈에 피로가 풀린다나? 양손을 눈에 갖다 댄 채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소파에 늘어져 있던 희경은 입술에 뭔가 와 닿는 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눈을 뜨니 코앞에 루키의 얼굴이 보인다. 희경이 얼른 고쳐 앉으며 말했다.


“놀랐잖아!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루키가 희경 옆에 앉으며 말했다.


“들키면 들키는 거지 뭐. 우리의 사랑을 세상에 공개할 절호의 기회?!”


희경은 자신의 일본인 남자친구가 태연한 척하며 허세를 부리는 게 미웠다. 그 허세가 왠지 나약한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운 좋게 소설 공모전에 입상해 등단한 지 10년이 지났다. 등단작 말고는 제대로 된 소설 하나 건지지 못한 채 소파에 늘어져 있다. 루키는 손에 든 캔 커피를 희경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이번 건 잘 돼가요?”

“음, 너무 잘 써져서 문제야. 도대체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어.”

“와우! 뮤즈가 오셨나?”

“그래, 이번엔 미친놈이 왔나 봐! 통제가 안 돼.”

“오~ 스고이네요. 나 그런 타입 좋아하는데!”


루키는 커피 캔을 손으로 우그러뜨려 농구하듯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골인. 희경도 따라해 보려 쓰레기통을 조준해보지만 영 어설프다. 루키가 희경의 자세를 고쳐주며 말한다.


“어이, 어이, 이렇게 하면 안 되고 팔을 좀 더 높이!”


희경은 루키가 시키는 대로 팔을 좀 더 높이 들어보았다. 기회를 잡은 루키는 희경의 허리를 팔로 감싸 끌어당긴 후 키스했다. 입술끼리 맞닿는 그 순간 바로 옆 작업실 문이 벌컥 열리며 인재가 나왔다. 인재는 갑작스러운 풍경에 놀라 도로 작업실로 들어갔다. 놀라기는 희경과 루키도 마찬가지였다. 하던 일을 관두고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희경이 말했다.


“아까 그 사람 누구야? 도로 들어갔어?”

“주인 영감님이 마지막 작업실에 새로 들어온 사람 있다고 했어요.”


인재는 문 뒤에서 벌어지는 요상한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선 연애 금지라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루키가 인재의 작업실 문을 노크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나오세요.”


인재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민망한 표정으로 나왔다.


“아, 죄송합니다. 못 본 걸로 할게요.”


희경이 소파에서 일어나 인재에게 말했다.


“뭘요?”


인재는 루키를 한번 보고, 희경을 한번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러니까, 방금 전 본 장면 말이죠.”


희경은 틈을 주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방금 전에 뭘 봤는데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인재는 이번엔 희경을 한번 보고, 루키를 한번 쳐다봤다. 루키는 어깨만 한번 으쓱해 보이더니 인재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인재씨 맞죠? 잘 부탁합니다.”


인재는 엉거주춤하게 두 손으로 악수하며 말했다.


“아, 네.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루키는 인재에게 남은 캔 커피 하나를 건네며 자신과 희경을 소개했다. 루키는 작년에 등단한 신예 소설가로 일본에서 꽤 인지도 있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온 이유는 한국과 일본을 무대로 하는 연애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인재는 ‘아, 저는 고등학생’이라고 무심코 말하려다가 말고 ‘소설가를 꿈꾸는 지망생’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는 소설 제목과 소설가 이름은 다 갖다 붙이면서 결정적으로 헤밍웨이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되었다며 소설을 썼다.


희경과 루키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인재의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자신감이 붙은 인재는 어린 시절 자기가 쓴 소설이 상을 받아 자극을 받았다며 허풍을 떨었다. 타고난 재능은 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망설이다 마침내 결심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일대기 같은 걸 말이다. 인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속으로 ‘어랏? 내가 거짓말을 이렇게 잘했나?’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소설을 쓰면 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10분 정도 진지한 표정으로 인재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희경과 루키는 저녁 약속이 있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먼저 나갔다. 인재는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었다. 빈 캔을 우그러뜨렸다. 쓰레기통을 향해 슛. 노골.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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