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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저 달을 보고 있다 (2)

by 서효봉

그 인간은 늘 그렇다. 모든 게 불만이다. 도저히 투덜거릴 게 없으면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라도 수집해 떠들어 댈 것이다. 나는 그를 싫어한다. 아니 좋아한다. 아니 모르겠다. 어떨 땐 조금 좋고, 어떨 땐 너무 싫은데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는 약간의 장점과 엄청나게 많은 단점이 조화롭게 깃든 작가다. 작가 맞나? 작가겠지? 책이란 걸 썼으니 아마 작가일 테다. 근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가 작가님이라고 부르면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그게 재미있어서 몇 번 놀렸다가 진심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인간은 늘 그렇다.

오늘은 내가 쉬는 날이라 혼자 집에 남겨졌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컴퓨터를 켰더니 오후 두 시다. 단톡방에 줌 링크를 올렸다. 나의 동지들이 하나둘씩 접속하기 시작했다. 모니터가 8등분 되어 용사들이 얼굴이 들이미는데 참 제각각이다. 이제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는 아저씨도 있고, 아기를 품에 안고 몸을 흔드는 아줌마도 있다. 고등학생 여자, 안경 쓴 할아버지, 츄리닝 차림의 청년, 눈썹 화장을 하는 젊은 여자까지. 일주일 두 번, 용사들은 모여 각자가 제출한 기획서를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들 피곤한 얼굴이지만 곧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왜냐하면 작가님께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이 작가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삼십여 편이 넘는 동화를 집필하고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오른 대단한 분이다. 우리 집에 사는 그 인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작가다. 작가님은 인사와 함께 안경을 쓰셨다. 용사들이 제출한 기획서를 하나씩 살펴보았다. 각자 자신이 제출한 기획서가 언급될 때마다 귀를 쫑긋하는 분위기였다. 작가님은 말씀하셨다. 내 기획서가 가능성이 있다고. 물론 전부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니고 그중 일부분만 따로 떼서 새로 써 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다른 용사들도 작가님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작가님은 제출한 기획서 중 두 개를 골랐다. 그 기획서를 출판사에 내보여 출간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고 하셨다. 우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모임은 끝났다.

다음 날, 그 인간이 연차 휴가를 냈다.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나 사람을 불러 수리했다. 보일러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아랫집 천장까지 젖었다. 그는 보험사에 전화해 일상생활 배상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 확인해 봤다. 다행히 가입되어 있었다. 천장 수리 업체에 전화해 일정을 잡았다. 할 일을 마친 그 인간은 저녁 무렵에 고등학교 동기들 모임이 있다며 나갔다. 쫄래쫄래 나가는 그를 배웅하고 나는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 검사받은 기획서를 불러왔다. 좋다는 부분만 추려 새로 기획서를 작성해 메일을 보냈다. 작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출판사에서 관심이 있다는 콜을 받았고 다음 주에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단다. 순간 이게 꿈인가 싶었다. 일단 그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같이 회의했던 용사들에게도 자랑했다. 용사들은 열렬히 축하해 주었다. 선물이라며 치킨 기프티콘과 커피 쿠폰을 보내주는 용사도 있었다. 고마웠다. 그 인간은 답이 없었다. 밤 11시쯤 답장이 왔다. 축하한다는 말은 없었고 계약금이 얼마냐, 언제 계약하냐고 묻기만 했다. 베란다로 나가니 하늘에 뜬 달이 보였다. 노란 달이 아니라 검붉은색을 띤 보름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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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지구별 여행을 했어요. 어느 날, 책을 써서 작가이자 여행교육전문가로 살았어요. 지금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며 글을 쓰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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