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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Jun 09. 2020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최근에 느낀 무기력

최근에 무척 당혹스러운 시선을 받았다.

내가 그 전에도 그런 시선을 어디에서 겪었었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도'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시선 강간'에 대한 내용이다.


흔히들 인도는 배낭여행을 말리는 나라의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한다.

그런 나라에 나는 뭣도 모르고 혼자 덜컥 떠난다고 20대 초에 말했다. 아프리카를 경험했던 나는 그 보다 더 험한 곳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있었기에 인도도 사람 사는 곳인데! 하며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좋은 동행자들을 만나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즐겁고 안전하게 다닌 건 맞다.


뉴델리에 도착해서 빠하르간지라는 여행자 거리를 걷다 보면 내 몸을 훑는 시선들을 느낄 수 있다.

온몸을 바람막이며 모자며 운동복이며 배낭이며 각종 짐들로 둘러싸도 내 몸을 투영하며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게 사람들은 대놓고 훑어본다.

길에서 뿐만 아니라 버스를 탈 때도 지하철에 있을 때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이미 아프리카에서 동양인에 대한 신기함을 담은 시선들을 느꼈기에 인도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고, 당시에 나는 혼란하고 정신없는 인도 여행에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기에 '기분 나쁘다'라는 생각이 들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인도 사람들이 나를 봤던 시선은 '신기함'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선 강간'이라는 말이 더 맞는 듯했다.


둔한 나조차도 그런 시선들을 구분했는데 하물며 다른 이들은 구별 못할까.

가장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었던 건 네팔로 넘어갔을 때 네팔에서의 사람들은 동양인 여행자인 내가 뭘 하든 시선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인도에서 느꼈던 불쾌한 시선에서 확실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 시선을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최근에 받는 경험을 했다.

인도에서의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당시에는 '시선 강간'이라는 말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들은 불쾌한 시선에 대해서 함구하는 편이었다.

몇 년 사이에 여성의 사회적인 요구의 물결이 진행됨에 따라 여성들도 목소리를 높이며 더 이상 함구하지 않고 사회에 자신들이 느낀 불편함과 불쾌함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런 주장들이 없었다면 난 여전하게 함구하는 편으로 남아있었으리라.




그 남자를 우연하게 두 번 만났는데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평소에 보지 못한 눈에 영혼이 없는, 목적 없이 어디만 응시하는 눈을 가졌고 얼굴에 수염은 관리되지 않았으며 말랐다.

처음 본 인상은 몰골이 너무 폐인 같았고 저런 사람을 마주한 적이 없던 나는 외면만 보고 '컴퓨터계열 종사자나 IT계열 쪽에서 일하는 사람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나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볼 때 인도에서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더 큰 소름 끼침을 느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노골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 사람이 조금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긴 한데 교육으로 본능과 이성을 어느정도 구분하며 사회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근데 그 사람은 눈빛부터가 욕구불만에 가득 찬 눈이었다. 퀭 한 눈. 목적이 그뿐인듯한 눈을 가졌다. 인도에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훑던 그 눈보다 더 말이다. 


사실 그 시선을 받은 날 너무 찝찝해서 건물 관리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하니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정신이 조금 아픈 사람인거 같고, 본능이 조금 더 크게 작용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일단 관리인이 그 사람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나와 동일한 느낌을 느꼈다는 것에 대해 안도감과 더불어 불안감이 생겼다.

안도했다는건 나 혼자 민감하게 설레발치면서 있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면서 '너무 불안한데요? 뭐라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라며 말했지만 사실 그 말에 어떠한 답이 오지 않을거란걸 나는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도 '근데.. 우리나라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어떤 조치도 일어나지 않아서요. 별다른 방법이 없네요.' 하며 곤란한 말로 이야기했다.


그 말이 조금 이해가 되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어졌고 화가났다.

이해가 된건 무턱대고 개인적인 생각의 판단에 치우쳐 신고자수가 많아지면 진짜 범죄에 대한 집중적인 일도 흐지부지 될 수 있으니깐.

억울한건 혹시나 혹시나 그 사람이 돌아서 혹시나 범죄를 저지르면 그럼 누군가의 희생이 이뤄질 수 밖에 없는데 그 범주 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건 반박불가였다. 

화가 난건 내가 여자고, 여자는 사회적 약자이고 그래서 그런 시선이나 불쾌한 것들에 내가 쉽사리 노출이 될 위치라는 것. 하물며 정신이 이상한 사람도 여자를 약자로 느껴서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분노감이 올라왔다.


그런 생각을하니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점인데 똥도 똥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똥을 쥐고 있는 사람, 똥을 싼 사람이라는 주체들이 없이 그냥 똥은 더러우니깐 피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일들을 마주하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그리고 생각하기 싫지만 상황이 발전된다면 나는 어떻게 대치를 해야 할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 남자에게 날을 세우며 말 한마디 했다면 내 마음이 조금 대담해졌으려나? 우스개 소리로 얕보지 못하게 몸을 불려야 하나? 아니면 화장을 개빡씨게 하고 다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여자로 태어나서 크게 불편하다거나 불안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생각지 않은 걱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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