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게 내뱉는 말이 있다. 어떤 게 정답인진 모르지만 잘 가고 싶다.
10년 만에 마주한 친구들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10년 동안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 온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선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잊을만하면 엄마 아빠는 내가 대학 전형을 어쭙잖게 넣은 것에 대해서 아쉬워한다.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왔기에 수시전형으로 잘 갈 줄 알았던 대학이 나를 배신할 줄은 나도 당황스러웠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시전략을 짜주었는데 고집과 욕심을 부렸던 건 사실이었고, 오만했던 것도 맞다.
나와 지원을 같이 한 다른 애들은 전략을 바꿔서 낮은 과를 지원하면서 그 대학에 합격했다.
부모님은 잊을 법할 때쯤 그 이야기를 꺼내어 나를 타박하고, 수시전형을 준비했던 애들은 미안한 마음이 여전하게 남아있다.
내 인생이 조금 희미했을 때 내 인생이 바보 같다며 자신의 인생을 따르라며 제안을 해준 친구가 있었다.
당시 친구는 나와는 달랐다. 대학생활이며 취업준비며 앞으로 다가올 사회생활에 대해서 무지한 나보다 훨씬 능숙하게 사회에서 자신만의 생활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애는 '4년제 나온 애들도 내 밑에서 일해'라며 내가 가고 있는 길들에 대해서 의미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돈이 없던 나는, 활동 반경이 넓지 않았던 나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제안받는 일들에 대해서 흔들렸다.
결국 난 내 인생이 조금 희미하고 앞으로 선택해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며 그렇게 살았다.
그 시절 종종 그 친구를 따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내가 있었다.
영향이 있더래도 영향받지 않으려 노력한다. 왜냐 어떤 선택을 하더래도 각자의 삶이니깐.
후회하면 거기서 다시 일어서서 재정비하면 되니깐.
10년이 지나고 나니 우리의 선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에 했던 모든 선택들에 발목이 잡힌 친구도 있고, 뜻하지 않게 잘 사는 친구도 있다. 원치 않았던 삶으로 흘러가버리는 친구도 있고 계획하지 않던 일을 마주하며 혼란을 겪는 친구도 있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들에 내가 백점을 맞은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내 선택에 대해서 수정하고 바로잡고 방향을 만들어준 10년이었다.
노력으로, 운으로 마주한 선택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 거기서 다시 시작인걸 지난 10년 동안 배웠다. 예전 같으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단면적인 부분에서 '부럽다'라며 사촌이 땅산 것에 배 아파하듯 아파했는데 내가 선택하지 못한 문항들을 선택한 친구들도 그곳에서 다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노력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기에 과거에 내가 선택하지 못한 문항들은 현재에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단 걸 배운다. 내가 과거를 붙잡으며 미련하게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10년 뒤에도 우리의 10년을 툭 하니 이야기할 수 있게 살자'라며 이야기했다.
요즘 드는 생각이었다. 길었던 10년의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방향으로 흘러간 우리를 보니 그렇게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