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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Apr 14. 2023

눈떠보니 유부녀

결혼의 이유, 나쁘지 않은 결혼

브런치에 글을 오랜만에 써보는데, 하락하는 혼인율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4월 1일 나는 기혼자가 되었다.

남들은 결혼준비기간이 최소 6개월은 잡았다는데 나는 온 우주가 나의 결혼을 기다려왔단 듯이 3개월도 채 안 되는 시간 만나고 결혼까지 완성했다.


결혼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믿지 못할 소릴 들었다며 놀라워했고, 날짜를 알리니 기절초풍하다며 놀라워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이렇게 빠른 결혼엔 어떤 숭고한 사고가 있었으리라 여기겠지만 그런 사고는 없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 혼자 즐겁게 잘 살던 결혼에 관심 없던(관심은 있었지만 아주 먼 이야기라 여겼던) 두 남녀가 서로 어떤 이유 모를 이끌림에 눈떠보니 서로의 배우자가 되었다는 게 우리로써도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묻어 나온다.


나의 결혼준비기간엔 온통 질문 투성이었다. 진행은 되는데 점점 더 모르겠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느라 진땀을 뺐다. 그 와중에 여전히 왜 결혼을 해야 하죠?라는 물음에 적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미 결혼한 선배들에게도 물었지만 '사랑'만으로 결혼의 수많은 난관을 넘기엔 그들도 갸웃 이었으니까. 내가 그런 질문들을 마음에 품고 입밖에 내뱉었을 때 많은 이들이 짧은 기간 결정하여 진행하는 나의 결혼에 우려했다. 여전하게 확신 없으면서 욕심처럼 결혼을 하려 하느냐는 우려 말이다.


그런데 그런 우려와는 다르게 온 상황이 나의 결혼을 성원하고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체감하고 있었기에 섣부르게 결혼을 한다 안 한다로 깔끔하게 맺을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 남편과 대면했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전과는 다른 나의 이타적인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나를 만난 이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낭만적인 마음.


그래서 왜 결혼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수 차례로 내뱉었는데 어물거리는 말속에서 다들 타이밍이라는 공통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결혼할 시점에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한 건지 결혼할 시점에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한 건지. 옥신각신하는 서로의 시점에 이끌려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들.


내게 지금의 남편을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여태껏 모르던 사랑을 결혼했다는 이유로 사랑한다고 답하는 건 좀 웃긴 거 같아 망설였다. 사랑이란 게 뭘까.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인데 조금 익숙해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묘해진다.


결혼을 하고서 느낀 건 피로함이다. 나만 생각했던 나의 삶에서 이제는 배우자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피로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 피로함이 건강한 피로함임을 깨닫게 된다.

남편을 뭘 먹일까,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이불을 걷어차는 남편이 걱정돼 밤새 몇 번이나 깨서 이불을 덮어주는가 하면,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에 대해서도, 비염이나 알레르기가 있는 남편에게 약이나 홍삼 등을 챙겨주는가 하면,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물어보며 맞춰보려는 생각도, 안 좋은 건 하지 않았으면 하는 애정 어린 잔소리 폭격들도.


나 혼자 살았다면 그냥 살았을 인생인데 같이 사니 조금 더 나아져야 함을 느끼는 피로함. 꼭 결혼을 해야 해? 왜 결혼을 해야 해?라는 물음에 부정적인 답을 내놓다가도 꼭 부정적이지 않은 속내를 상기하게 된다.


결혼을 전제로 몇 번의 만남을 가졌던 와중에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이 있다. '난 최선을 다할 거예요.', '난 지금까지 내 가치를 많이 올려놨는데 그걸 끌어내리는 사람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다소 오만하게 들리는 나의 말을 아니꼽게 듣지 않고 동의해 줬던걸 생각하면 정말 웃기다. 나라면 조금 괘씸하다 여겼을 텐데.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생각하면 남편이 나에게 온건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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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곱씹어하는 말이 있다. Happy Wife, Happy Life. 그리고 남편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조언이 있다. '넌 틀렸고, 아내는 항상/무조건 옳아' 나와는 다른 의미로 피로하지만 행복한 남편ㅋㅋㅋㅋ 잘 살아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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