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보낸 결혼과 임신
브런치를 잊고 있었다.
1년여간 주 1회 연재했던 시간도 있었는데 그 일 년이 지나고 간간히 글을 쓰다가 인스타로, 쓰레드로 장소를 옮겨가며 더 이상 긴 글을 쓸 이유나 여유가 사라졌다.
예전의 글이 7천 회나 읽혔다는 알림을 받아 다시 나의 글을 읽어보니 오호, 꾀나 재밌는걸? 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참 철없구나 싶었는데 과거의 글들을 보다 보면 생각보다 어른스러워서 놀랍기도 하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자긍심이 생긴달까.
그래서 글을 남기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뭘 써야 할지 고민은 늘 많은데 막상 긴 글은 부담스럽게 여겨진다. 내 글을 보니 최근에 작성했던 글이 결혼에 관한글이었다. 결혼하기 전, 결혼 이후에 사랑이나 결혼관에 대해서 모호하게 여겨지며 마무리했는데 결혼 1년이 훌쩍 지난 오늘, 이제는 10월 출산까지 앞두고 있다.
짧은 시간 결혼을 결정하고 결혼해서 상대에 대한 불확신, 나의 인생에 대한 혼란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왜 결혼을 진행했는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편과 나는 의아해하고 있다. 나는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 걸 좋아하는데 나의 결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아함' 가득이다. 하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엔 설명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음을.
사랑이란
사실 나는 제대로 된 연애,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사랑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게 또 사랑을 받았다고 여긴 적이 없이 당연스레 자랐다. 그런 내가 결혼당시에 사랑에 대해서 '네! 사랑해요!'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지 못했던 건 경험의 부재와 상대를 100프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확신의 말을 해? 사랑은 그저 단어, 언어 아니야?라는 마음의 양심으로 인함이었다.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사랑에 대해서 구체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사랑함을 넘어서는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벅차오르는 충만함으로 기쁨의 눈물도 흘린다. 생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데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고, 넘실거리며 넘치는 사랑의 감정의 벅차오름으로 인해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눈물을 훔치면서도 '어머머, 나 F형 인간 됐나 봐'싶었다.
1년을 살다 보니 사실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나는 기준과 주장이 강하고 답정너 스타일이다. 물론 다양하게 생각을 열어두고 의견을 청취한다지만 내 안에 이미 답을 정해놓는 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남편에게 나의 기준을 많이 요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요구들이 맞는 말이고, 남편 잘 되라고 하는 소리들이어서 가스라이팅 시키려고 부단하게 애썼지만 남편은 들을 건 듣고 아닌 건 아닌 지조를 지켰다.
남편은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다. 나는 결혼 전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나르시슴적인 생각을 지녔는데 결혼해 보니 나 같은 사람은 정말 힘든새럼. 못된 새럼. 독재자에 불과했다.
조용하게 나를 인내하는 남편 덕분에 나를 많이 깨닫게 되었고 남편이라는 존재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서로의 다름을 채워줄 사람이란 걸 알아서 그런지 사랑의 충만함은 넘실댔다. 그 충만함이 언제 사그라들지 모를 일이지만 사랑을 알려준 사람이 곁에 있어서 너무너무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 사람이 내 곁에서 행복하게 함께해 주었으면 좋겠는 바람이 가득하다. 이기적인 내가 누군가의 안녕을 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사람들에게 결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진 않지만 이왕이면 사랑은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좋은 사람을 만나 깊은 사랑을 하는 건 너무나 스스로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일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조금 보류였는데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남편이 꾀나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게 엿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직했던 '임신은 추후'라는 마음이 '준비'로 굳혔다.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를 부지런히 다녔다. 처음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남편에게 내지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실 임신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생명이 찾아왔는데 막상 임신을 하니 세상 불편하다. 눈치도 보게 된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여자는 자유함을 잃는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젤리 같은 녀석이 점점 사람태를 갖춰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여전히 불투명한 존재로 우리 사이에 자리 잡아있다. 처음엔 낯설었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과연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참 많이 들었다. 내가 모성애가 없으면 책으로라도 모성애를 배워서 실천해야겠다 싶어 임신초기엔 육아책도 많이 읽었다.
그러나 남편이 주는 신뢰와 남편을 향해서 느낀 사랑이라는 충만함으로 인해 나는 아이를 낳아서도 사랑의 충만함을 더 느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인데 태어날 아기는 내 뱃속에서 낳았으니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감정들을 더 깊고 더 크게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이 글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지만 성숙한 생각을 작성했던 브런치에라도 나의 근황을 작성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떠들러서 잊혀진 감정을 돌아볼 수 있을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