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생각이 전부라는 착각으로 인한 괴로움 때문이었고, 수행을 통해 그것이 착각임을 명백하게 깨달았으며, 그 이후 심신에 배어있는 오래된 무의식적 습관들의 인과에 밝아짐으로써 불필요한 괴로움을 겪는 빈도와 심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요즘 들어 가장 조심하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생각을 부정하려는 생각이다. 더 심하게 표현하면 생각을 말살하려는 결벽적 의도다. 생각으로 인해 고통받아온 것은 맞지만 궁극적으로 생각 자체는 아무런 죄가 없다. 생각은 호모사피엔스를 먹이사슬 피라미드 정점에 오르게 한 사회화의 강력한 도구일 뿐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다시 깊은 잠에 드는 순간까지 깨어 있는 모든 순간 생각은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생각이 발생하는 원인과 생각의 내용을 떠나 생각은 끊임없이 작용한다. 생각이 전부라는 착각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생각의 작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의 또 다른 측면인 메타인지를 통해 생각의 일어남과 생각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관조하게 됨으로써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고, 생각 바탕의 실상에 대한 감을 잡게 된다. 메타인지의 이러한 작용을 통상 '알아차림'이라고 부르는데, 이 '알아차림' 하나가 이 길의 알파이고 오메가이다.
부작용은 늘 과함에서 비롯된다. 생각을 알아차리니 놓이고 물러나게 되어 편안해진다. 작은 생각들의 알아차림과 그로 인한 편안해짐의 밀월이 지나고 나면, 오래되고 힘이 센 무의식적 습관들과 만난다. 도깨비방망이 같던 알아차림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되니 징글징글한 생각을 없애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생각은 죄가 없다. 생각 또한 해가 뜨고 지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숨이 쉬어지는 것과 같은 아주 자연스러운 연기적인 현상일 뿐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 같은 감각작용처럼 전두엽의 지극히 정상적인 작용일 뿐이다. 다시 말해 생각의 오고 감 역시 일어날 일이 때가 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알아차림의 검을 휘둘러 강력한 생각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편안해져야 한다는 숨어있는 미세한 생각의 내용에 속은 것이다. 잘 당한다는 것은 힘이 센 생각들과 맞서 싸워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저항 없이 흘려보내는 것이다. 생각은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