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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g Aug 23. 2018

워킹맘의 절대시간

칼퇴근으로는 턱도 없는

보편적이지 않던 일상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들에게 내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처방은 사랑뿐이었다. 훈육보다 포용이 필요했던 아이들. 무제한의 사랑과 절대적 지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치료제라고 생각했다. 퍼도 퍼도 또 풀 것이 남아 있는 것 또한 그것 뿐이었으므로 나로서는 가장 풍부하고 구하기 쉬운 자원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회사 상황과 맞물리면서 일이 줄어 야근을 거의 하지 않고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업무량만 주어졌기에 가능했다. 반대로 야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출근 직후부터 곧바로 고밀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리고도 남은 일은 오늘 할 일이 아닌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퇴근을 감행했다. 욕심껏 일을 맡아 제대로 해내고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고, 굳이 안해도 됐을 야근을 자처하거나 그래도 못다한 일을 원칙대로 마감하기 위해서 집으로 싸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 시절 애 엄마였던 선배들이 무거운 엉덩이로 눌러 앉아 있는 내게 퇴근 인사를 하며 나갈 때마다 가능한 못들은 것처럼 모른 체를 하면서 모니터에 고개를 묻곤 했다. 체면상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들을 ‘적당히 일하는 사람’으로 분류해 속으로 무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멍청한 논리가 또 없다. 사회적으로도 몰매 맞고 남을 일이다. 


과정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나 역시 그 시절의 선배들만큼이나 칼퇴근이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 되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데스크를 제외하고는 내가 편집팀 최고참이라 티 나지 않게 요령도 피울 수 있었고, 업무 강도 역시 조절할 수 있었다. 물론 후배들의 눈치가 보이긴 했다. 나 역시 내가 한 일에 만족할 리 없었다. 아무리 선배이기로서니 전력을 쏟지 않는 것은 일단 내가 알고 옆자리 동료들이 훤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후배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후배 보다 적게 일하지 않는 것 만큼은 철저하게 지켰다. 아이들과 회사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나는 오랫동안 고민하던 퇴사를 실행에 옮길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으나 명료하게 마침표를 찍지는 못했다. 이 와중에 일마저 없다면 나는 정말 누군가를 위해, 아니면 어떤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한 희생양으로서만 존재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마음을 짓이겨가며 마지막 카드를 꺼내지 않은 것은 그나마 잘 한 일로 해두고 있다. 워킹맘 아닌 워킹맘인 내 상황을 아는 이는 회사 내에 한 사람도 없다.


내 공연 문화의 판도가 이렇게나 바뀌었다. 육아는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다. 2017년 5월 14일. 일요일. 유니버설 아트센터-헬로카봇 뮤지컬.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관계가 유지되던 친구는 딱 둘, 사회 생활을 하며 가까이 지낸 선후배 서넛. 그들에게도 내 상황을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만나는 횟수가 줄고 자연스럽게 연락 두절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나에게 말로 다 못할 애정을 준 이들인데, 내가 지금 죄를 짓고 있다. 영화, 전시, 공연, 여행 등등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하고 싶지 않았다. 책 한 줄도, 하물며 TV 프로그램에 1분 1초 눈을 대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대신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전시를 간간이 찾아다녔다. 그래도 내 취향은 아니다. 2018년 2월 17일. 토요일.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간을 나는 모두 아이들과 함께 했다. 가능한 어디에 가거나 무엇을 함께 하는 데 썼고, 무얼 하지 않더라도 부르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내 존재를 드러내 주었다. 나는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조건 없이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나의 태도도 일반적이지는 않아서 가족들 조차 ‘쟤가 왜 저렇게까지 하나’ 하며 나를 의아해 했다.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당진 삽교호의 J. 고모 껌딱지.


며칠 전 기록적인 폭염이 한풀 꺾여갈 무렵이었다. 그날따라 살갗에 닿는 에어컨 바람이 차가워 거실에서 함께 자던 아이들을 두고 나만 방으로 들어와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 무렵, 방문이 열리고 H가 쏘옥 들어왔다.

아 고모오!


짜증 한번 팩 내고는 옆자리에 바짝 붙어 누웠다. 그래 고모가 혼자만 들어와서 미안해 강아지. 기타 등등의 추렴을 한 뒤에 우리는 꼭 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날이 다 샌 참이었다. 내 왼팔이 팔베개 모양으로 벌어지더니 그 사이로 J가 쏙 들어왔다. 작은 강아지도 왔구나. 하면서 궁둥이까지 마저 꼭 안아주는데, 가슴팍에서 날벼락 같은 울음이 고요를 찢으며 뿜어져 나왔다. 나도 깜짝 놀람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J는 거실에서 홀로 깨 공포에 질려있었고, 형과 나를 발견하고는 안도와 원망이 뒤섞여 그만 목을 놓고 울어버린 것이다. 거실에서 방까지 다시 내 품속까지 찾아들어온 뒤에야 울음을 터뜨린 J가 안쓰러워 나도 또 눈물이 났다.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J의 울음 소리는 천장을 뚫을 듯 기세가 대단했다. 


고오모오 어엉엉 왜에 여기 와있어어엉엉아앙 나빴어엉어어어 


나는 미안해 미안해 하면서 더 꼭, 더 오래 안아주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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