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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g Aug 30. 2018

능소화와 배롱나무의 계절

무엇으로든 기억될 여름의 끝자락에서

여름에 피는 꽃 중에서 능소화와 배롱나무에 유독 애정이 간다. 꽃이나 나무의 우리말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능소화와 배롱나무는 특히 더 그렇다.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 맞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되고, 혼잣말로라도 마른 입술을 떼어 불러본다.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능소화는 검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아름다움이, 배롱나무는 지체 높은 양반이 격의 없이 다감한 농담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름만으로 기억되는 인상이 그렇다. 말만으로도 그러니 눈앞에서 실견하는 감상이야 말로 다 하기 어렵다.


2013년 8월. 경주 배롱나무 군락.



여러 일들을 겪다 보니 작년이고 올해고 눈에 드는 꽃도 나무도 만나지 못했다. 올해는 아마 너무 더웠던 탓도 있을 것이다. 활동 반경이 넓지 않은 내가 부러 찾지 않아도 소복소복 탐스러운 주홍빛, 분홍빛 꽃타래가 어느 집 담장에서, 강변 둑길에서, 공원 잔디밭 한편에서 나를 온통 사로잡아버리곤 했는데 올해는 아니었다. 마음이 분주했던 탓일 게다. 늘 지나는 청계천변에는 그나마 능소화 덩굴이 군데군데 많이 살고 있지만 꽃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고, H의 등굣길에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동네에 몇 그루 있는 배롱나무는 절정을 보지 못하고 홀홀 다 팬 뒤에야 비로소 다가가 보았다. H와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여 다가간 것이었다. 가지 끝 마저 지고 말 꽃잎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서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절정은 지났으나 그래도 괜찮았다. 어쩐지 어둠 속으로 더 길게 손을 뻗치려고 하는 것 같았다.



2018년 8월. 우리 동네.


2018년 9월 14일의 회사 정원 능소화. 뒤늦게야 발견했다.


볼품없을지언정 그나마 남아 있던 능소화도 지난 이틀간의 폭우에 생채기가 났겠다 싶었는데 오늘 아침 H 등교길에서 보니 아스팔트에 송이송이 짓이겨지고 있는 중이다. 빗줄기가 두들겨대는 소리에 J가 잠들지 못한 밤이었다. 뜨거운 여름으로 뜨겁게 회자될 계절이 마저 다 지나고 있다.



2017년 7월 30일. 아산 공세리성당. 배롱나무와 J.



2018년 7월. 열대야 속 꽤 여러 밤을 옥상 텐트에서 보냈다. 덥기는 마찬가지였지만 H와 J가 더위도 잊을 만큼 즐거워했다. 아사히베리도 더위에 열매를 맺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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