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티의 디지털전환(DX)과 플랫폼화, 그리고 인공지능 전환(AX)은?
힐티의 사례는 비단 건설업계뿐만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모든 기업의 리더와 의사결정자분들께 아주 중요한 힌트를 제공할 것입니다.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AX)은 견고한 디지털 전환(DX)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는 명제를 힐티만큼 명확하게 증명하는 기업은 드뭅니다. 힐티가 어떻게 단계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이루어냈는지, 그리고 자사 제품의 경계를 넘어 산업 전체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로보틱스를 접목해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공구회사 힐티(Hilti)가 디지털 전환(DX)을 통해 비즈니스모델을 혁신하고, AI를 적용하여 건설회사의 운영체계를 꿈꾸고 있습니다. 관련내용은 도서 <AI 빅 웨이브, 기술을 넘어 전략으로>의 내용을 참조하여 구성되었습니다. 인터뷰어 이러닝 사이트에서 저자 직강 강의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위대한 혁신은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힐티의 혁신 역시 그랬습니다. 힐티가 스스로 한 질문은 "우리 고객은 정말로 드릴을 사고 싶어 할까?"였습니다. 이 질문은 힐티를 단순한 공구 제조사를 넘어, 고객의 성공을 책임지는 파트너이자 데이터 기반의 솔루션 기업으로 이끄는 거대한 전환의 서막이었습니다.
힐티의 혁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속한 건설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설 산업은 오랫동안 만성적인 비효율성과 씨름해 온, 그야말로 혁신이 절실했던 분야였습니다.
첫째, 재정적 불안정성이 현장을 지배했습니다. 거의 모든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막대한 예산 초과를 겪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였고, 이는 기업의 수익성을 심각하게 위협했습니다. 부정확한 비용 예측, 잦은 설계 변경, 자재비 상승 등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만연했습니다. 둘째, 고질적인 지연과 낮은 생산성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계획된 공사 기간을 훌쩍 넘겨 완공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이는 수십 년간 정체된 생산성의 직접적인 결과였습니다.
셋째, 자산 관리의 혼돈이 비효율을 증폭시켰습니다. 작업자들은 필요한 공구나 장비를 찾아 현장을 헤매는 데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중복 구매로 이어졌고, 창고에는 먼지 쌓인 미사용 공구들이 가득했습니다. 여기에 값비싼 공구의 도난 문제까지 더해져 재정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넷째, 과도한 초기 투자 비용(CapEx) 부담이 기업의 현금 흐름을 옥죄었습니다. 고가의 프리미엄 공구를 구매하기 위한 막대한 초기 비용은 특히 중소 건설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족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전과 생산성은 양립할 수 없다'는 위험한 통념이 팽배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안전보다 생산성이 우선시 된다는 인식이 만연했으며, 이는 산업 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서로 얽혀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습니다. 열악한 자금 사정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투자에 인색하게 만들고, 이는 다시 낮은 생산성과 안전 문제로 이어져 결국 예산 초과와 프로젝트 지연을 초래하는 구조였습니다. 힐티가 발견한 기회는 단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견고한 악순환의 고리 자체를 끊어낼 수 있는 시스템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산업의 총체적 난국 속에서 힐티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건설 회사의 진짜 목표가 최신 드릴을 소유하는 것일까?" 답은 명확했습니다. 건설회사가 공구를 구매하는 목표는 정해진 예산과 기간 안에 건물을 안전하게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관점의 전환은 힐티가 고객의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재정의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공구 소유 모델은 고객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장애물이 되곤 했습니다. 비싼 공구를 사기 위해 큰돈을 먼저 써야 했고, 공구가 고장 나면 작업은 그대로 멈췄습니다. 수리비는 얼마나 나올지, 언제 고쳐질지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즉, 공구 소유는 예측 불가능한 비용과 다운타임이라는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힐티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고객의 진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아, 고객은 드릴이라는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프로젝트를 문제없이 끝내는 성과(Outcome)가 필요한 거구나!". 이는 제품 중심적 사고에서 고객의 해야 할 일을 해결해 주는 성과 중심적 사고로의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객이 드릴을 사용해서 해결하려는 목표는 구멍을 뚫는 것이 아니라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힐티는 이 더 높은 차원의 과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모든 것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설회사의 문제를 확인한 힐티히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공구 플릿 매니지먼트(Fleet Management)' 서비스를 출시하게 됩니다. 공구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는 공구를 단순하게 판매하는 대신 구독하게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건설사는 매달 일정한 비용만 내고 힐티의 최신 공구를 마음껏 빌려 쓰는 모델입니다.
공구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는 고객(건설사)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비용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공구가 고장 나면 횟수나 비용 제한 없이 무료로 수리해 주고, 수리 기간 동안 작업이 멈추지 않도록 대체 공구까지 즉시 제공을 합니다. 심지어 공구를 도난당해도 손실의 최대 80%까지 보상해 줍니다. 이를 통해 예측 불가능했던 막대한 변동 비용이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고정 운영 비용(OpEx)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최상의 생산성을 유지해 주는 것입니다. 계약 기간(통상 3~5년)이 끝나면 사용하던 공구를 반납하고 최신형 공구로 교체해 줍니다. 고객은 항상 최고의 성능을 내는 최신 장비로 작업하게 되어 생산성이 극대화됩니다. 또한, 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단기간 필요한 공구는 'Tools on Demand' 서비스를 통해 유연하게 대여할 수 있어 불필요한 구매를 막아주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세 번째는 자본 효율성이 증대되었습니다. 건설회사는 고가의 공구를 구매하기 위해 막대한 초기 자본(CapEx)을 투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자본은 비즈니스의 다른 핵심 영역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힐티의 공구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는 기존과는 다른 혁신에 해당합니다. 힐티는 더 이상 공구를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고객(건설회사 등)의 성공적인 프로젝트 완료라는 성과를 보장하는 파트너로 스스로를 재정의한 것입니다. 공구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는 단순히 판매에서 구독으로 판매방식만 변경한 것이 아닙니다. 보쉬(Bosch)와 같은 경쟁사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복잡한 운영 시스템과 물류,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15년 이상이 걸렸으며 , 이를 통해 힐티는 기존 판매 모델 대비 5배나 높은 고객 충성도를 확보하는 강력한 경쟁 우위를 구축했습니다.
힐티와 같이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융합하는 것을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기존 제조업의 가치사슬에 서비스를 융합해서 상품 판매 이후에도 사후 서비스를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소비자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서비타이제이션의 목적입니다.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가능해진 것을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서비스 제공을 위한 시스템 구축 비용이 낮아진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제품 판매에 서비스를 추가함으로써 차별화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힐티의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는 여러 측면에서 경쟁우위를 만들어주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고객관계가 거래에서 파트너십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통상 3~5년의 장기 계약을 통해 힐티는 고객의 업무 프로세스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판매 후 관계(After-service)가 아닌, 고객의 성공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지속적인 관계(On-going service)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객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신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힐티가 고객의 공구를 관리하는 신뢰받는 파트너가 되자, 향후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제안했을 때 고객들은 이를 감시가 아닌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자연스러운 확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만약 힐티가 이러한 신뢰 관계없이 갑자기 고객의 공구 사용 데이터를 수집하겠다고 제안했다면, 아마 큰 저항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즉, 플릿 매니지먼트는 데이터 수집을 위한 '사회적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셋째, 안정적인 재무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구독 모델에서 발생하는 예측 가능한 반복 매출은 힐티가 온트랙(ON! Track)이나 뉴론(Nuron)과 같은 대규모 기술 플랫폼에 장기적으로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재정적 안정성을 제공했습니다. 이처럼 힐티의 디지털 전환은 기술 도입 이전에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 모델 혁신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견고한 서비스 기반 위에서, 힐티는 비로소 건설 현장을 연결하는 거대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로 고객과 신뢰 관계를 구축한 힐티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공구만 관리하는 것을 넘어, 건설 현장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중심이 되려는 것인데요. 힐티를 자사 제품의 경계를 넘어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플랫폼 기업으로 이끄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설 현장 담당자의 고민은 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현장에는 경쟁사의 공구, 고가의 중장비, 사다리나 안전모 같은 자잘한 자산, 그리고 수많은 소모품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힐티는 플랫폼을 개방해서 현장의 모든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경쟁사 제품의 사용을 돕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체의 기록 시스템(System of Record)이 되어 생태계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힐티는 개별 제품 판매 경쟁에서 벗어나, 모든 제품이 활동하는 운동장 자체를 소유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개방형 전략 덕분에 힐티는 특정 브랜드의 공급업체가 아닌, 고객의 모든 자산을 책임지는 필수적인 운영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전 아래 탄생한 것이 바로 클라우드 기반 자산 관리 솔루션 '온트랙(ON! Track)'입니다. 온트랙은 건설 현장의 자산 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온트랙 시스템은 견고한 태그, 스마트폰 앱, 그리고 클라우드 소프트웨어의 조합으로 작동합니다. 작은 태그만 붙이면 사다리든, 경쟁사 드릴이든, 심지어 안전모까지 브랜드와 상관없이 모든 자산을 스마트폰 앱 하나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블루투스 저전력(BLE)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태그는 5초마다 고유 ID를 송신하며, 주변에 있는 작업자의 온트랙 앱이 이를 자동으로 감지해 자산의 마지막 위치, 시간, 담당자 정보를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업데이트합니다. 작업자가 일일이 바코드를 스캔할 필요 없이, 현장을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자산 정보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것입니다. 또한, 창고나 차량에 설치된 게이트웨이는 원격으로 자동 재고 파악을 가능하게 합니다.
온트랙이 해결한 문제는 명확합니다. 매달 90시간씩 낭비되던 자산 탐색 시간을 극적으로 줄이고 , 불필요한 중복 구매와 도난으로 인한 손실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공구의 수리 이력, 안전 인증서 만료일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규제 준수 문제까지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이로써 힐티는 공구 회사에서 벗어나, 고객의 업무 흐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건설 현장의 중앙 관제 시스템으로 위상이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온트랙이 현장의 모든 '자산'을 연결했다면, 차세대 배터리 플랫폼 '뉴론(Nuron)'은 '작업 활동' 자체를 데이터화하는 혁신을 이뤄낸 것입니다. 뉴론은 배터리 하나로 100가지가 넘는 공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업자가 다 쓴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는 일상적인 행동만으로, 그 공구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자동으로 클라우드에 전송된다는 것입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충전기에 내장된 '무선 데이터 모듈(CDM, Cordless Data Module)'입니다. 배터리가 충전되는 동안, 배터리에 저장된 공구 사용 시간, 성능 이상 여부, 마지막 충전 위치, 배터리 상태 등의 데이터가 CDM을 통해 내장된 eSIM으로 Hilti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전송됩니다. 작업자는 데이터를 보내기 위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매일 하던 대로 배터리를 충전하면 끝입니다.
이는 산업용 사물인터넷(IoT)의 가장 큰 난제인 '현장에서의 안정적인 데이터 수집' 문제를 가장 우아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해결한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IoT 프로젝트가 작업자에게 추가적인 행동(스캔, 입력 등)을 요구하다 실패하는 반면, 힐티는 작업자의 기존 행동 패턴을 바꾸지 않고, '배터리 충전'이라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행위에 데이터 전송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통합했습니다. 이로써 힐티는 방대하고 신뢰도 높은 실제 사용량 데이터를 거의 완벽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힐티의 디지털 전환 전략의 핵심인 '데이터 플라이휠'입니다. 힐티의 서비스가 데이터를 낳고, 데이터가 다시 서비스를 강화하며, 강화된 서비스가 더 많은 고객과 데이터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인데요.
힐티의 디지털 플라이 휠은 다음과 같이 작동합니다. 먼저 온트랙과 뉴론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뉴론 배터리가 충전될 때마다 공구 사용량, 성능, 위치 데이터가 자동으로 수집됩니다. 온트랙은 이 데이터에 '어떤 자산이', '누구에 의해' 사용되었는지 맥락을 부여합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사용자에게 제공합니다. 클라우드에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는 분석을 통해 가치 있는 정보로 변환되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특정 공구의 사용 패턴을 분석해 고장 시점을 예측하거나(예지 정비), 특정 고객사의 공구 활용률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유휴 자산을 식별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기존 플릿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고객님의 A 드릴이 곧 고장 날 확률이 높으니 미리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또는 "B 현장의 그라인더가 3주째 사용되지 않고 있으니 다른 현장으로 옮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와 같은 사전 예방적이고 컨설팅에 가까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플라이 휠은 더 크게 확장되어 생태계를 만드는 힘이 됩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고도화된 서비스는 고객에게 엄청난 가치를 제공하며, 힐티 생태계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게 됩니다. 더 많은 고객이 힐티의 통합 플랫폼을 사용하게 되면서, 힐티는 더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고, 이는 다시 플라이휠의 동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경쟁사가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공구를 만들어도, 수년간 축적된 힐티의 독점적인 실제 사용 데이터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지능형 서비스를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됩니다.
견고한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플라이휠을 완성한 힐티의 혁신은 이제 연결을 넘어 지능의 영역, 즉 인공지능 전환(AX)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단순히 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을 넘어, 물리적인 세계의 작업을 자동화하고 최적화하려는 것인데요. 서막을 연 것이 바로 반자동 천장 드릴링 로봇, '자이봇(Jaibot)'입니다.
건설 산업의 디지털화는 건물 정보 모델링(BIM,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의 도입으로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BIM은 건물의 모든 정보를 담은 3D 디지털 설계도로, 설계 단계에서 오류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완벽한 디지털 설계도를 혼란스러운 물리적 건설 현장으로 옮기는 실행 단계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BIM 데이터가 있어도, 결국 사람이 그 도면을 보고, 현장에서 위치를 찾아 표시하고, 직접 공구를 사용해 구멍을 뚫어야 했습니다. 이 디지털-아날로그 변환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위치를 잘못 표시하거나, 엉뚱한 깊이로 구멍을 뚫는 등의 실수는 프로젝트 지연과 재작업 비용을 발생시키는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또한, 천장을 보고 무거운 공구를 든 채 장시간 작업하는 오버헤드 드릴링은 작업자에게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매우 힘들고 위험한 작업이었습니다. 힐티는 바로 이 디지털 설계와 물리적 실행 사이의 마지막 간극을 메우는 것에서 다음 혁신의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자이봇은 단순히 움직이는 드릴이 아닙니다. 자이봇은 BIM(건축정보모델링) 데이터를 직접 읽고 이해하며, 디지털 명령을 물리적 작업으로 완벽하게 전환하는 지능형 실행 에이전트입니다.
자이봇의 작업 흐름은 건설의 미래라고도 평가를 받는데요. 가장 먼저 BIM 모델에서 추출한 드릴링 계획(구멍의 3차원 좌표, 직경, 깊이 정보)을 힐티 클라우드에 업로드합니다. 그러면 현장에 배치된 자이봇은 토탈 스테이션(정밀 측량 장비)을 이용해 건물 전체 좌표계 내에서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스스로 파악합니다. 위치 인식이 끝나면, 자이봇은 클라우드에서 내려받은 설계 도면을 따라 자율적으로 이동하며, 단 ±5mm의 오차 범위 내에서 정확한 위치에 구멍을 뚫습니다. 작업 깊이 또한 프로그래밍된 값으로 정밀하게 제어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이봇이 작업을 완료한 구멍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다시 클라우드에 전송하여 BIM 모델에 실행 완료(as-built) 데이터를 업데이트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프로젝트 관리자에게 현장 진행 상황에 대한 완벽한 가시성을 제공합니다.
자이봇의 도입은 건설 현장에 측정 가능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힐티에서 제시한 데이터에 따르면 수작업으로 개당 270초가 걸리던 드릴링 시간이 자이봇을 통해 72~86초 수준으로 단축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수를 원천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재작업 비용을 없애고, 작업자들을 위험하고 힘든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입니다. 자이봇은 힐티가 공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건설 프로젝트의 실행 자체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자이봇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힐티의 궁극적인 목표는 개별 로봇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건설 현장의 모든 데이터와 장비, 로봇들을 하나로 묶고 조율하는 건설 현장의 운영체제(OS)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힐티는 공격적인 투자, 파트너십, 인수를 통해 자사의 로보틱스 및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전략적 투자 및 인수 측면에서 힐티는 기업 벤처 캐피털인 '힐티 벤처'를 통해 AI, 로보틱스, 소프트웨어 분야의 유망한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장 관리 소프트웨어 분야의 리더인 필드와이어(Fieldwire)와 건설 ERP 소프트웨어 강자인 4PS를 인수하며 , 현장 작업 관리부터 기업 자원 관리까지 아우르는 강력한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생태계 확장 측면에서는 최근에 석고보드 마감 로봇 전문 기업인 캔버스(Canvas)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파트너십을 통해 캔버스의 마감 로봇은 힐티의 자이봇 하드웨어 플랫폼 위에서 제조됩니다. 이는 마치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양한 PC 제조사에 윈도우 OS를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전략입니다. 힐티는 자사의 하드웨어와 데이터 플랫폼을 표준으로 삼아, 다양한 전문 분야의 로봇들이 힐티 생태계 안에서 작동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종합해 보면 힐티가 그리는 미래가 명확해집니다. 필드와이어 소프트웨어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해야 할지' 지시하면, 온트랙과 뉴론 플랫폼이 '필요한 자원과 공구가 준비되었는지' 확인하고, 자이봇과 파트너 로봇들이 그 지시에 따라 '물리적 작업을 오차 없이 수행'하며, 그 결과는 다시 클라우드로 피드백되어 전체 프로젝트를 최적화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시스템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는 것이 바로 힐티가 꿈꾸는 '건설 OS'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힐티의 혁신 여정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공구회사에서 시작해, 건설 현장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기까지. 힐티의 사례는 디지털 시대, 전통적인 제조업이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세상을 선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정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