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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Sep 19. 2023

다정함 속에 머물기
<오리진 스페이스>

@OrigInn Space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당장 문 열어…!”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한 첫날 밤. 문밖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숙소 스태프들도 모두 퇴근해 버린 늦은 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당황한 나는, 카펫 위에 흩어두었던 짐을 황급히 치우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보니 오판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찾은 <오리진 스페이스>


코비드 시기를 지나,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타이베이였다. 온갖 설렘의 연속이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오리진 스페이스>에 다시 간다는 사실이었다. 


<오리진 스페이스>의 주인으로 만나,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린 위리 Wille에게 다시 타이베이에 간다고 알렸을 때, 그간 전하지 못했던 소식을 들려주었다. 코비드 시기를 거치는 사이, 그동안 가꾸어 온 <오리진 스페이스>를 친구들에게 넘겨주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것. 너도나도 다사다난했던 시기였던 만큼, 그리 놀라운 소식도 아니었다. 


그렇게 소개받은 위리의 친구, 하비Harvey와 아코Aco. <오리진 스페이스> 1층에서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이미 알고 지낸 친구인 양 나를 반겨주었다. “너구나! 위리가 네가 올 거라고 이야기했었어!” 그렇게 밝은 미소로 나를 반기던 하비와 아코 곁에, 심드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 오판이 있었다.



위풍당당 고양이 보안관, 오판


그렇게 심드렁하던 오판이었는데. 이 늦은 밤, 계단을 오르고 올라 3층에 있는 내 방까지 친히 찾아와 준 것이었다.


내가 문을 열자, 오판은 좁은 문틈을 비집고 순식간에 방안으로 들이닥쳤다. 반가운 마음에 자세를 낮추어 손을 내밀었지만, 오판은 나를 본체만체. 꼬리를 치켜들고 방안을 휘-둘러보더니 곧 내가 놓아둔 짐과 가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뻔뻔하게 내 물건을 살피는 오판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였다. 나는 뭐라도 잘못한 사람인 양 쭈뼛대며 오판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바탕 순찰이 끝난 후에야, 나는 오판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 그러더니 곧 다시 문 앞으로 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오판과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의 당당한 기세에 눌린 나는 다시 한번 순순히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하비에게 “어젯밤에 오판이 내 방에 왔었어!”하고 이야기하자, 하비는 크게 웃었다. 새로운 손님이 오면 종종 밤에 찾아가 방 안을 살핀다는 것. 뻔뻔하고 오지랖 넓은 고양이인 줄 알았던 오판은, 사실 <오리진 스페이스>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안관이었던 것이다.




다정함에 다정함 더하기


처음 <오리진 스페이스>를 찾은 건 위리가 이곳을 운영하던 2019년 봄. 체크인 후 방을 둘러본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많은 한국어 책이 놓여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서뿐 아니라 에세이집과 소설까지, 분야를 막론한 책들이 선반과 서랍 위, 책상에 비치되어 있었다. 마치 그곳이 원래 자리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의아함에 방에서 내려와 곧장 위리에게 물어보았다. 


“예약 정보를 보니 네가 한국인이길래! 네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한국어 책을 가져다 놓았어.” 귀여운 배려에 감사 인사를 했더니, 늘 하는 일이라며 여러 언어로 된 책을 구비해 놓고 손님의 국적에 맞게 미리 비치해 둔다는 것이었다. 프로페셔널한 호텔 운영자의 면모이기도 하지만, 웬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고선 하기 어려운 발상이기도 했다. (이후, <오리진 스페이스>를 떠난 위리는 거짓말처럼 멋진 책방을 열었다.)


마침 내가 쓴 책이 막 출간된 무렵이었고, 친구들에게 주려고 몇 권 챙겨갔던 터라, 그중 한 권을 건네주었다. “실은 내가 쓴 책이 나왔거든. 이 책도 그렇게 써줘.” 그 이후로 한국인 손님이 오는 방엔 늘 내 책이 놓이게 되었다.


이렇게 사소하고 다정한 배려는 <오리진 스페이스> 곳곳에 스며있었다. 방마다 비치된 턴테이블과 언제든 빌려 갈 수 있는 LP들. 추운 밤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대만산 차와 다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다정한 스태프들의 미소. 그 다정함 속에 있노라면, 낯선 도시에 혼자 있다는 걸 금세 잊을 정도로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오리진 스페이스>에서 숙박 경험을 하는 사이, 이 공간과 이곳 사람들과의 추억이 다채롭게 쌓여갔다. 굳이 먼저 사람을 찾는 성격이 아닌 나에게 이렇게 자연스러운 교류는 드문 일이었다. 


아무런 연 없이 오게 된 타이베이라는 도시를, 이토록 편안하게 여기게 된 데에는 <오리진 스페이스>의 다정함이 분명 큰 몫을 했다. 여행자로 이곳을 찾은 나를 이토록 다정하게 맞아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든든해지곤 한다. 여행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이 다정함의 힘. <오리진 스페이스>가 부디 그곳에 오래 머물러주길, 바라고 또 바란다.








오리진 스페이스 OrigInn Space

No. 247號, Nanjing W Rd, Datong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3 ‣ Goole map


100년 전 지어진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오리진 스페이스>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숙소.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늘어선 디화지에를 걸으며 ‘저 건물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하고 궁금했던 여행자에겐, 그 속을 들여다보고 체험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오리진 스페이스>에서 운영하는 모든 객실은 각기 다른 구조와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다. 멋진 취향을 가진 하비와 아코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있는 만큼, 여러 번 방문해 다양한 객실에 머물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테리어는 다르지만, 모든 방엔 턴테이블과 LP 앨범이 비치되어 있다. 복도에 있는 책꽂이에서 원하는 LP 앨범을 빌려서 들을 수도 있으니 늦은 밤 시간을 피해 꼭 이용해 보자.


방 안에 욕실이 없어 공용 욕실을 이용해야 하는 방도 있으니 예약 전 미리 확인할 것! 물론 공용 욕실도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고, 2 객실 당 하나의 욕실을 공유하는 구조라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리셉션이 있는 1층은 공용 공간이자 카페를 겸하고 있어 커피나 차와 함께 쉬어가기에도 적격. 대만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와 공예가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쇼룸이기도 하니, 시간을 내어 구경해 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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