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이 확실해지는 순간의 기쁨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조금 길치'에 속한다. 길을 찾는데 아예 재능이 없는 건 아니어서, '아주 길치'가 아닌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또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다양한 지도 앱이 있어 전혀 헤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처음 가보는 여행지에서도 앱이 알려주는 대로 움직이고 현지인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걷다 보면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다. 심지어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몇 번이고 어디에서 언제 출발하는지도 알려준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도대체 어땠을까?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오래전 어느 여름날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나는 론리플래닛 한 권, 그리고 좀 더 자세하게 나온 지도책 얇은 것 하나, 그리고 나침반을 하나 챙겼다. 사람들에게 어느 쪽 방향이냐고 묻는 대신, 나는 가만히 서서 나침반과 지도로 방향을 확인하고 다녔다. 눈에 띄는 랜드마크 없이는 버벅대기 일수라 꼭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거기에 여름옷 몇 가지, 우비와 작은 우산을 챙겨서 이름도 생경한 ‘네팔’이라는 나라로 떠났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국제공항에 내린 날, 나는 난생 처음보는 풍경이 놀라웠다. 공항 활주로 외에는 아스팔트로 된 길이 전혀 없고 황톳빛 길과 벽돌로 된 집들이 보였다. 수백 명의 택시 기사들이 자기 차에 타라고 외치는 전쟁통 같은 그곳에서 나는 눈이 마주친 택시기사의 차에 홀린 듯이 타고 행선지를 말했다. ‘타멜’이라고 하는 여행자 거리로 가는 동안 나는, 이 곳이 한국이라면 1950년대쯤의 풍경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백하건대 당시의 나는 매우 어리고 매우 무지했다).
나는 이미 한 10년은 충분히 달린 것 같은 낡은 택시에서 내려 미리 알아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이 여행자 거리에는 며칠이나 머물면 좋을지, 다른 지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묻고 또 물었다. 타멜은 굉장히 번화가여서 말 그대로 카트만두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 자전거, 릭샤(인력거), 택시, 오토바이가 좁은 길을 한꺼번에 다니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심지어 중앙선도 없이 양방향으로 다니고 있었다) 나는 카트만두의 가장 유명한 유적지인 더르바르 광장으로 가면서 이번 여행이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풋내기에게 네팔 여행이란 매운맛에 가까웠지만 나는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있었다. 타멜에 며칠 머무르면서 스와얌부나트 사원에 갔다가 '인간보다 신성한' 원숭이들의 습격도 받아보고, 보더나트 사원에서는 신비로운 사리탑도 보면서 이런 게 여행이구나,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카트만두에서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이를테면 종합터미널 같은 곳으로 아침 일찍 서둘러 갔다. 몇 시에 버스가 출발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 곳이었다. 아무 때나 가도 버스가 있을 거라는 아리송한 말을 듣고 터미널로 출발했다. 터미널에서 묻고 또 물어서 ‘헤떠우다(Hetauda)’로 가는 버스를 찾아내고 나는 내가 왜 이 버스를 보고도 모르고 지나쳤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한 버스라는 것은 15인승이나 45인승 정도 되는 차량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어떤 종류의 자동차든지, ‘버스’라고 이름 붙이면 다 버스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주 낡은 지프차의 운전기사와 헤떠우다에 가는지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언제 출발하는지 물어보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6명이 다 타면 그때 출발해요
아, 나는 그때까지 네팔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기다리고(당연히 에어컨은 안 틀어준다) 2시간 정도 지나 인원이 다 채워지자 기사는 유쾌한 네팔 음악을 틀며 출발했다. 그리고 산이 많은 네팔의 특성상 높은 산을 오르고 내리고 하며 이동하는 동안 나는 멀미를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던 것 같다. 이런 비포장 도로 말고 다른 길은 없는 건가, 하는 불평을 속으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멈췄다. 아니 급정거했다. 내려서 보니 갈림길에서 오토바이가 갑자기 나타나 살짝 부딪쳤는지 오토바이는 옆에 쓰러져있었다. 배달 오토바이보다 조금 작은 오토바이였지만 사람이 4명 정도 타고 있었고,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는데 오토바이 옆에 다들 서서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을 떠올리며 ‘이제 아주 큰 싸움이 나겠구나’ 싶었고, 이렇게 또 일정이 늦어지는 건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에 우리 차의 운전기사와 오토바이 운전자가 뭔가 이야기하더니 다 같이 크게 웃고 각자 출발하더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옆에 앉은 여행객에게 지금 다들 무슨 얘기를 했고 왜 웃은 건지 물어보았다. 그 사람이 통역해주기로는, ‘다친 데는 없냐', ‘그냥 살짝 넘어져서 괜찮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다', '그러게요’, ‘그럼 조심히 가요, 다들’ 이렇게 말하며 웃다가 헤어진 거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여행 기간 동안 내가 겪은 ‘진짜 네팔’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그때 '실수'를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를 배우게 된 것 같다. 시간은 재료일 뿐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고,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얼마의 시간을 들이더라도 가고 싶은 곳은 결국 가게 되고 하고 싶은 것은 하게 된다고, 그때부터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잘 모르겠다. 길이 깨끗하고 넓게 잘 다져있고, 그 위를 45인승 버스를 타고 에어컨 바람 아래 숙면을 취하면서 이동했더라면 더 쾌적하고 즐거운 여행이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헤떠우다로 가는 경로’를 검색해서 터미널의 위치를 확인했더라면 좋았을까? 지금이라면 자신이 없지만, 그때의 나는 그 여행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그 이유는 쾌적함이나 편리함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찌야(인도식 차이를 말하는 네팔어)를 손잡이도 없는 유리컵에 찰랑 일정도로 가득 담아 배달해주는 곳, 후후 불어가면서 다 마시고 컵을 돌려준 후에야 주인도 손님도 자리를 떠날 수 있었던 그곳을.
이 글은 글쓴이가 마케팅의 일환으로 작성한 글을 편집하여 연재하는 에세이입니다. 어디선가 보셨다면 표절이 아니고 당신은 저의 소중한 고객님.
*커버 사진은 캄보디아 여행자 거리 사진입니다. 네팔 사진은 싸이월드 추억과 함께 사라짐.